역사속에 오늘, 6월/6월 5일

제3차 중동전쟁(6일 전쟁) 발발

산풀내음 2017. 5. 1. 07:26

1967 6 5,

3차 중동전쟁(6일 전쟁) 발발

 

제2 중동전쟁에서 압도적인 패전을 당하고도, 정치적으로 승리를 거둔 이집트가말 압델 나세르는 아랍세계의 주도권을 쥐고 이스라엘에 대한 복수의 칼날을 갈며, 야심 차게 전쟁준비에 나선다. 소련의 군사고문단과 최신 장비를 들여와 전쟁준비에 나서며, 한편으론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을 물밑 지원하면서 전쟁준비를 착착 진행한다. 한편, 예루살렘 서안지구를 두고 충돌을 계속하던 요르단 및 골란고원을 거점으로 이스라엘과 무력충돌을 벌이던 시리아 역시 이집트와 동조하고 있었다.

 

3차 중동전(Third Arab-Israeli War, 1967 Arab-Israeli War, Six-Day War)의 원초적 동기는 시리아와 이스라엘간의 빈번한 충돌에서 찾을 수 있다. 시리아의 바아스당은 가장 강력한 반유대주의 및 반서구주의적 색채를 띠고 있었는데, 바아스당의 실권을 장악한 아민 하페즈는 이스라엘에 대하여 강경정책을 취하였다.

 

1966 10월 이집트와 군사동맹을 맺은 시리아는 대이스라엘 강경책을 더욱 촉진시키게 되었다. 당시 시리아-이스라엘 간에는 골란고원을 둘러싸고 긴장이 고조되고 있었는데, 1967 4월 제1차 중동전쟁의 정전협정에서 비무장지대로 설정된 골란고원 일대에 이스라엘이 농작물을 경작한다는 일방적인 조치를 발표하여 대 시리아 감정을 격발시켰다. 이것이 이스라엘-시리아간의 무력충돌을 유발시킨 원인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리아요르단은 이집트의 개입을 요청하게 되었고 나세르는 이스라엘이 시리아를 공격한다면 이집트는 이스라엘을 공격할 것이라고 천명하게 된다. 나세르는 요르단 및 이란과 동맹관계를 맺어 대 이스라엘전에 대한 준비를 서둘렀다. 이러한 사실은 이스라엘측에 미리 포착되고 있었는데 이스라엘은 1967 5 29일에 전시체제에 돌입해 있었다.

 

1967 6 5일 새벽, 사전에 철저하게 조사한 레이더 기지의 교대시간을 노려, 이스라엘 공군은 아랍 연합군 중 최대 전력을 자랑하던 이집트 공군에 대한 기습폭격을 가했다. 3시간에 걸친 폭격으로, 이집트 공군은 450여대의 항공기 중 300여대를 상실하고, 공군기지와 레이더 기지 등을 모조리 잃는 엄청난 피해를 입는다. 3시간 만에 이집트 공군력의 80%를 격파한 것이다. 이 때 이스라엘의 비행기 손실은 19대 밖에 되지 않았다. 이후 이스라엘 공군기들은 이집트 영토를 오가며, 그야말로 이집트군을 초토화시키며 돌아다니게 된다. 그 이후 벌어지는 일련의 전투에서, 이스라엘은 최종적으로 자국영토의 3배에 달하는 영토를 점령하는 기염을 토해 현대전사(現代戰史)의 전설을 만들게 된다.

 

이집트는 아랍국가들의 맹주격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기습 공격의 주대상은 이집트가 되었다. 이스라엘은 전쟁 발발과 동시에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이스라엘군은 시나이 반도를 지나 수에즈운하까지 진주하였다. 이스라엘의 기습공격으로 이집트의 군장비가 거의 파괴되어 전쟁 시작 4일만에 UN의 정전 권고를 수락하게 되는 상황이 되었다. 시리아는 제3차 중동 전쟁의 기본 동기를 부여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전과 동시에 대 이스라엘전에서 적극성을 띠지 않았으며 이집트와의 협조체제도 미약했다.

 





A truck full of captured Egyptian soldiers cross a convoy of Israeli troops near El Arish, Egypt, during the the Six-Day War, June 8, 1967.

 

이스라엘은 이 전쟁으로 요르단강 서안 지역과 시리아와 접경 지대인 골란 고원까지 손에 넣었다. 예전의 영토보다 3.5배나 되는 땅을 획득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전쟁으로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자 유엔은 정전을 촉구했고 결국 6 9일 전쟁이 중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