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7월/7월 1일

소니 워크맨 등장

산풀내음 2017. 5. 28.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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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 워크맨 등장

 

미국과 일본의 경제역전이 고정된 1970년대, 일본 수출품의 특징이 집약된 제품이자 본격적인 개인용 음향기기의 시대를 열어준 것이 소니 워크맨이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을 없을 것이다. 소니는 1997년 애플의 재탄생 전까지는 혁신의 상징이었고, 전자제품의 아이콘이었다.

 

음악은 그 전까지 집에서만 들을 수 있는 문화행위였지만 워크맨이 이것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워크맨 이후로 사람들은 밖에서도 음악을 듣고, 음악을 즐기게 되었다. 워크맨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이들에게는 최고의 선물이 되었고, 사춘기 아이들의 정체성이었다. 워크맨의 또 다른 의미는 비로소 전자제품이 개인소유가 되었다는 점이다.

 

 

1970년대 초반 까지만 해도 어디서나 원하는 음악을 편하게 듣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꿈 같은 일이었다. 당시 음반 시장의 주류를 이루던 LP레코드는 매체 및 재생기의 크기가 워낙 커서 애당초 휴대용으로 만드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1962년에 네덜란드의 필립스(Philips)사가 손바닥만한 크기를 가진 카세트 테이프(Cassette Tape)를 발표하여 주목을 받기도 했지만, 초기의 카세트 테이프는 음질이 떨어지고 고장이 잦아서 음악 감상용으로는 부적합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다만, 녹음이 편하고 휴대가 편하다는 점은 인정을 받았고, 이 때문에 초기의 카세트 테이프는 언론 취재용이나 회의록 녹취용, 어학 교육용와 같은 용도로 주로 쓰였다. 그래서 카세트 테이프를 사용하는 기기들 역시 재생 기능 보다는 녹음 기능을 중시했고, 외부 스피커를 본체에 기본으로 갖춰 녹음한 내용을 곧장 확인할 수 있게끔 한 제품이 대부분이었다. 이렇게 다양한 기능을 모두 갖춘 카세트 테이프 레코더는 당연히 크기가 커질 수 밖에 없었고, 당시의 기술력으로는 제품의 크기를 줄이는데 한계가 있었다. 참고로 헤드폰은 이미 1919년에 발명되었다. 하지만 헤드폰이 밖으로 나올 일은 좀처럼 없었다. 집밖에서는 헤드폰 잭을 꽂을 때가 없었기 때문이다.

 


 

소니는 1979 6 22소니 창립 33주년에 33,000엔짜리 제품을 발표하고 7 1일에 판매를 시작하였다기존 헤드폰의 무게를 1/10로 줄인 헤드폰(MDR-3)과 워크맨(TPS-L2)을 발표한 것이다워크맨은 이전에 나왔던 카세트 테이프 기기와 달리 녹음 기능이 없는 재생 전용 기기였으며자체적으로 소리를 재생할 수 있는 스피커도 내장하고 있지 않아 반드시 헤드폰을 사용해야 했다하지만 그만큼 제품의 크기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으며모든 기능을 재생에 집중한 결과당시의 소형 기기로서는 생각할 수 없었던 고음질의 스테레오 음향을 들을 수 있었다.

 


소니 워크맨의 탄생은 매우 단순한 동기에서 시작되었다. 소니 워크맨은 해외출장을 자주 다니던 음악 애호가이자 소니의 공동 창업자 아부카 마사루의 고민에서 시작되었다. 비행기 안에서의 시간이 너무 심심해좋아하는 음악이라도 들을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사람들을 불러모아 녹음기능을 삭제하고 재생만 가능한 카세트 재생기를 만들어냈다. 그 카세트 재생기를 동료 모리타 아키오에게 보여주며그래도 좀 크고 무거워서 불편해. 걸어 다니면서도 들을 수 있으면 참 좋겠는데……” 라고 말한 대화가 탄생의 시초가 되었다.

 

당연히 워크맨을 출시하고자 했을 때 직원들 반대는 매우 심했다고 한다. 시장 조사 결과도 형편없었단다. 그러나 그 당시 소니의 공동창업주인 모리타 회장은 주장했다. “헨리 포드가 시장 조사를 했던가? 만약 그랬다면 그들은 자동차가 아니라 더 빠른 말을 개발했을 것이다.”

 

까라면 까야 한다. 소니 직원들은 모리타 회장의 지시대로 연구소에서는 개발을 시작했고, 1978 10월부터 개발에 들어가 불과 8개월 만에 출시할 정도로 간단한 제품이었다. 이는 나중에 미국 <포춘>지가 선정한역사상 가장 뛰어난 경영 결단 중 하나로 선정 되었다.

  

워크맨을 들고 있는 소니의 모리타 아키오 사장

 

당시 녹음 기능이 있던 휴대용 오디오들은 기자들이 취재를 위해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이들 제품은 프레스맨(Pressman)이란 애칭으로 불렸다. 이 애칭을 이어 받아 TPS-L2에는 워크맨(Walkman)이란 이름이 붙였다. 걸으며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사실 문법상 틀린 단어였다. 그래서 해외 판매 시에는 문법상 잘못된 영어였기 때문에 다른 이름으로 판매를 했다고 한다. 실제로 워크맨은 미국에서는 사운더바우트(Soundabout), 스웨덴에서는 프리스타일(Freestyle), 영국에서는 스토웨이(Stowaway)란 이름으로 팔렸다. 신통치 않은 판매를 기록하자 모리타 회장은 이름을 워크맨으로 바꿀 것을 명령했다. 그리고, 1981년을 기점으로 거짓말처럼 워크맨은 세계를 휩쓸기 시작했다. 전세계는 워크맨 열풍에 휩싸였고 기존의 모든 판매 기록을 경신한다.

 

 

이후 워크맨은 녹음 기능을 갖춘 모델, 라디오 수신 기능을 갖춘 모델 등 다양한 후속 제품이 추가되며 높은 인기를 이어갔다. 이를 지켜본 마쓰시타(현재의 파나소닉), 산요, 아이와 등의 경쟁사에서도 소니의 워크맨과 비슷한 유사모델을 제조해 판매하기 시작했지만, 소비자들은 제조사와 관계 없이 모든 휴대용 카세트 테이프 재생기를 ‘워크맨’이라고 부르곤 했다. 비록 엉터리 영어이긴 했지만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보편적으로 쓰이는 일반 명사와 같은 위치까지 오른 것이다. 실제로 1986년부터 영국의 옥스포드 사전에는 워크맨(Walkman)이라는 단어가 등록되었다.

 

사람들은 걸어 다니면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워크맨에 열광했다. 그리고 2006 3월 카세트테이프 식 워크맨이 단종될 때까지 약 200종의 워크맨을 내놓고 누계 3 3천만대를 판매하는 대기록을 세우게 된다.

 

다만, 워크맨이 소니의 독자 개발 제품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소니가 워크맨을 출시하기 7년 전인 1972, 독일계 브라질인 발명가인 안드레아스 파벨(Andreas Pavel, 1945 - )이 소니의 워크맨과 유사한 컨셉의 휴대용 카세트 테이프 재생기를 발명해 각국에 특허를 신청한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워크맨 출시 후 파벨은 소니를 상대로 특허권 침해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고, 양측은 20년 넘게 지루한 줄다리기를 해야 했다. 결국 2003, 소니는 파벨에게 일정금액을 지불하는 조건으로 합의를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