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8월/8월 9일

황영조, 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 우승

산풀내음 2017. 7. 2. 16:15

1992 8 9,

황영조, 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 우승

 

1992 8 9일 온 국민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날아온 낭보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올림픽 피날레를 장식한 마라톤에서 황영조(22)가 금메달을 목에 건 것이다. TV를 본 국민들은 황영조가 몬주익 언덕에서 일본의 모리시타를 따돌리는 장면에서 특히 흥분했다. 이를 악물고 오르막길을 달리는 황영조를 보며 덩달아 주먹을 불끈 쥐었다. 메인스타디움 트랙을 돌며 관중에게 두 손을 번쩍 들며 환호하던 그는 2시간1323초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하자마자 쓰러졌다.

 


경기 후반 황영조와 모리시타 둘만 금메달 경쟁을 하게 되었다. 34km 지점부터 몬주익의 언덕에 이르기까지 고도차이가 97m까지 나는 죽음의 코스는 매우 고통스러운 코스였다.

 

황영조의 금메달은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는 자체보다도 지난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손기정이 일장기를 달고 우승을 차지한 '한민족의 한' 56년 만에, 그것도 손기정이 우승한 바로 그날, 일본선수를 통쾌하게 제치고 깨끗이 풀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는 사건이었다. 황영조 이전에도 태극기를 달고 세계대회에서 우승한 적은 있었다. 1947년 보스턴 마라톤 우승자인 서윤복, 1950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우승한 함기용이다.

 

관중석에서 그 현장을 지켜본 손기정 옹은 눈물을 글썽이며 `위대한 후배`와 감격의 포옹을 했다. 그는 우승소감에 대해 자랑스런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1위로 골인한 것이 너무 너무 감격스럽습니다. 이 영광을 한국민 모두에게 드립니다" 라고 밝혔고, 경기에 임한 각오에 대하여는 "나를 위해 불공을 드리며 생활하시는 어머님과 그 동안 성원해준 국민들을 위해 반드시 우승하겠다는 필승의 각오로 임했다"고 답했다.

 

황영조와 손기정 옹

 

풀코스 도전 4번째 쾌거를 이룬 황영조는 명륜고 재학 때 정봉수 코오롱 감독의 눈에 들어 `대기`로 자랐다. 1991년 유니버시아드에서 우승하고 1992년 한국선수론 처음 2시간8분대에 진입, 한국 마라톤의 대들보로 꼽혔다. 그는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을 획득, 명예와 부를 한꺼번에 누렸다. 그의 고향인 강원도 삼척시 초곡리에는 당시 감격을 고스란히 담은 `황영조기념관`이 문을 열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을 4개월 앞두고 은퇴해 많은 이들에게 아쉬움을 남겼던 황영조. 그는 은퇴 후 학업에 전념해 대학을 졸업하고 석사를 거쳐 2004년 고려대 대학원에서 체육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2000년부터 국민체육진흥공단 마라톤 선수단 감독을 맡아 일찌감치 후배 양성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