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12월/12월 14일

아문센, 인류 최초로 남극점 도달

산풀내음 2016. 11. 5. 15:12

1911 12 14,

아문센, 인류 최초로 남극점 도달

 

로알드 아문센(Roald Amundsen, 1872-1928))은 선원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시절부터 북극탐험을 꿈꾸었다. 오슬로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했지만, 아문센은 극지 탐험에 대한 열망으로 항해사의 길을 걸었다. 그는 1903년부터 1906년까지 대서양에서 북극해를 거쳐 태평양에 이르는 북서항로 항해에 사상 처음으로 성공했다. 그러나 19099월 로버트 피어리(Robert Peary)와 프레데릭 쿡(Frederick Cook)이라는 미국인 두 명이 북극점에 도달(1909.4.6.) 하였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아문센은 북극 원정을 연기하기로 하는 한편 대규모 원정대의 대장으로 이미 남극으로 향한 로버트 팔콘 스캇(Robert Falcon Scott)에 앞서 남극점에 도달해보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나, 1996년에 피어리의 일지가 발견되고 그 일지에 의하면 피어리는 북극점으로부터 40km 못미치는 곳까지만 탐험한 것임이 밣혀졌다.

 

 

당시 남극점에 먼저 도달하기 위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문센이 이끄는 노르웨이 탐험대와 영국 해군 소속 로버트 스코트의 영국 탐험대가 그 경쟁의 주인공들이었다. 그들은 영하 40도의 추위와 초속 30미터의 강풍을 견뎌 내며 한 발 한 발 극점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었다.

 

1) 아문센은 고래만(Bay of Whales)에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그곳은 스캇의 출발지인 맥머도 해협(McMurdo Sound)보다 남극점에 100km 정도 가까웠다. 하지만 고래만에서 남극점까지의 지형은 알려지지 않았었던 반면 스캇은 조국 동포인 셰클턴(Shackleton)1908년에 개척하였던 경로를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다.

 

2) 남극에서 아문센은 유럽탐험대의 기존 방식을 버리고 자신이 탐험하면서 살펴본 에스키모의 생존 방식을 따랐다. 아문센은 에스키모인들이야 말로 오랜시간동안 추위를 이기는 법을 잘 깨웃쳤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방한복은 순록가죽으로 준비하여 추위에 철저하게 대비하였고, 썰매를 끄는 수단으로는 에스키모인들의 허스키라는 개를 이용하였다. 또한 아문센은 허스키가 끌고 가는 썰매를 타고가다가 약해진 개들은 차례로 식량으로 이용했다. 잔인하긴 하지만 덕분에 식량의 무게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어서 속도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스콧은 기존의 탐험 방식을 따랐다. 통상적인 모직으로 된 유럽식 방한복을 입었고, 썰매는 만주산 조랑말을 이용해 끌도록 하였다. 방한복은 추위에는 강했지만, 습기에는 너무나 취약해서 더한 추위를 불러왔다. 추위에 강한 만주산 조랑말이라 하여도 남극의 추위에는 어림 없었고 한두마리씩 얼어 죽게 되었다. 또한 젊잖은 스콧은 죽은 조랑말을 식량으로 사용할 생각조차 못했다. 그 들의 점점 더 무거워지는 무게로 속도는 시간이 갈수록 늦어지게 되었다.

 

3) 아문센은 행군을 하면서 돌아올 길을 생각해 착실히 베이스캠프를 마련하고 식량을 비축해 깃발을 꽂아 두었다. 이 덕분에 속도는 더욱 빨라질 수 있었고, 따라서 남극점에도 빨리 도착했다. 그리고 대원 모두 안전하게 96일만에 귀환할 수 있었다.

반면 스콧의 탐험대는 초인적인 힘을 다해 남극점에 도달했지만, 이미 아문센보다 늦게 도달한 것을 알고 사기도 저하되었고 설상가상으로 돌아오는 표식도 제대로 해 두지않아 결국 그들은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다. 그들은 1912 11월에 눈속에 파묻힌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19111019일 아문센은 네 명의 동료, 네개의 썰매 그리고 52마리의 썰매 개와 함께 베이스캠프에서 출발했고, 19111214일 남극점에 노르웨이 깃발을 게양했다. 출발 당시 52마리의 개를 데리고 떠났는데 돌아올 때는 썰매를 끌 12마리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죽였다. 동력원은 그 자리에서 식량으로 변했다.

 



아문센보다 한 달 뒤에 남극점에 도착한 Scoott (뒷줄 맨 오른쪽)과 그의 대원들. 그들은 전원 돌아오는 길에 실종되었다.

 

아문센은 꼭 해보고 싶은 도전이 하나 있었다. 바로 북극해를 비행하는 것이었다. 1925는 두 대의 수상비행기 N24N25로 대담한 원정을 추진하였다. 두 대 모두 북위88도의 빙판 위에 불시착했지만, 한 대는 다시 이륙시키는 데 성공하여 3주 후에 스발바르(Svalbard)로 복귀하였다.

 

극지방 탐험은 아문센의 인생이었고, 결국 죽음이기도 하였다. 2년 후 노빌레가 '노르게' 호의 자매선인 '이탈리아(Italia)'호로 2차 극지방 비행을 떠났지만 원정대는 사라졌다. 아문센은 노빌레를 찾기 위한 수색대에 합류하였다. 2차 수색대가 비행선과 노빌레를 찾았고, 그는 무사하였다. 그러나 아문센과 그의 동료들은 끝내 복귀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