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6월/6월 19일

경기도 연천군 최전방 부대서 총기난사 사건, 8명 사망, 503GP 사건

산풀내음 2017. 5. 11. 20:47

2005 6 19,

경기도 연천군 최전방 부대서 총기난사 사건, 8명 사망, 503GP 사건

 

2005 6 19일 새벽 2 36, 수류탄 폭발음에 이어 40여발의 요란한 총성이 경기도 연천군 중면 중산리 비무장지대 내 최전방 530 소초 (GP, Guard Post)를 뒤흔들었다. 육군 28사단 81연대 수색중대 1소대 김동민 일병이 내무반에 잠들어 있던 동료들을 향해 수류탄을 던지고 소총을 난사해 8명의 장병이 숨지고 2명이 중상을 입는 대참극이 벌어진 것이다. 이 사건으로 GP(소초장) 김종명(26·학군41) 중위와 전영철(22), 조정웅(22), 박의원(22), 이태련(22), 차유철(22), 김인창(22) 상병 등 7명이 현장에서 사망하고, 이건욱(21) 상병은 군병원으로 후송돼 치료를 받다가 숨졌다. 복부와 다리에 파편 관통상을 입은 김유학(22), 박준영(22) 일병은 국군 양주병원으로 후송돼 수술을 받았고 다행히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왼쪽위에서 시계방향으로 김종명 중위, 차유철 상병, 조정웅 상병, 이태련 상병, 전영철 상병, 박의원 상병, 이건욱 상병, 김인창 상병.

 

앞서 이날 자정부터 김 일병을 포함한 4명의 병사는 단층 콘크리트 건물인 GP 건물 옥상에 설치된 초소 2개에서 2명씩 경계근무를 하고 있었다. 이들 병사들은 오전 2 45분까지 경계근무를 선 뒤 다음 근무자들과 교대할 예정이었다. 2 15, 김 일병이 함께 근무를 서던 이 모 상병에게 “교대 근무자를 깨우겠다”며 자신의 K2 소총을 초소에 두고 내무반으로 내려갔다. 당시 내무반에는 25명의 병사들이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내무반에 들어선 김 일병은 관물대에 있던 다른 병사의 K1 소총을 집어 들고 나와 화장실로 갔고, 그 곳에서 김 일병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수류탄의 제1 안전핀을 뽑고, 훔친 K1 소총에 자신의 탄창을 장전하여 내무반으로 돌아갔다. 내무반에 들어선 김 일병은 수류탄의 제2 안전핀을 뽑은 후 침상에 던진 후 내무반을 빠져 나왔다.

 

수류탄이 폭발한 후, 복도 끝에 있는 상황실로 향하던 김 일병은 체력단련실에서 폭음을 듣고 놀라 뛰어 나오던 소초장 김종명 중위(26)를 향해 소총을 발사, 살해하였다. 당시 체력단련실에는 보름 뒤 전역하는 소초장 김 중위에게 업무를 인계 받기 위해 근무 중이던 후임 소초장 이모 중위와 몇 명의 병사들이 있었고 김 일병이 방아쇠를 당겼지만, 이 중위가 재빠르게 문을 닫아 위기를 모면했다. 이어 취사장에서 나오던 조정웅 상병이 김 일병의 총탄에 목숨을 잃었다.

 

수류탄이 폭발한 내무반 안은 아수라장이었다. 파편을 맞은 부상자들은 피를 흘리며 신음하고 있었고, 몇몇 병사들은 부상자들에 대한 응급처치를 하는 한편 사태 파악을 위해 정신이 없었다. 수류탄이 터지고 2분 후, 김 일병이 내무반의 문을 열고 소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문 바로 앞에 있던 차유철 상병이 머리와 가슴 등에 3발의 총상을 입고 쓰러졌고, 내무반 복도로 내려서던 이태련 상병의 몸에도 세 발의 총탄이 관통했다. 이건욱, 전영철, 김인창, 박의원 상병 등도 총상을 입고 쓰러졌다.

 

김 일병은 계단으로 연결된 옥상 초소로 돌아와 자신의 초소 전방에서 경계근무 중이던 2명의 근무자들을 향해 사격을 시도했지만 탄창에 장전됐던 25발의 실탄이 이미 다 소진된 상태였다. 그러나 김 일병이 자신들에게 사격을 시도한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 전방 초소 선임병이 “적이 침투한 것 같으니 장전하고 전방을 겨누라”고 지시를 했고, 김 일병은 지시대로 자신의 초소로 돌아가 태연히 근무를 선다.

 

10여 분 후 후임 소초장인 이 중위가 전 부대원들을 GP 건물 옥상에 집결시켰다. 이 중위는 어둠 속에서 자신에게 총격을 가했던 범인이 군복을 입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군복차림이던 김 일병 등 다섯 명의 병사들을 GP내 관측장교 방에 감금했다. 이곳에서 다른 선임병들에게 사건 전후 총기가 바뀐 경위를 추궁당한 김 일병은 결국 자신의 범행을 시인했다. 현장에서 포박된 김 일병의 주머니에서는 수류탄의 안전핀과 한 발의 실탄이 발견 되었다.

 

 

군 수사기관의 조사결과 김 일병의 범행 동기는 ‘내성적인 김 일병이 평소 선임병의 욕설과 질책을 견디지 못하고 적대감을 가지고 있던 중에, 근무교대자를 깨우기 위해 내무반에 들어선 그가 자고 있던 선임병 얼굴을 보는 순간 충동적으로 범행한 것’이라고 밝혔다. 군 수사기관은 김일병을 단독범으로 결론짓고 사건을 서둘러 마무리했다. 김일병은 대법원 상고를 포기하고 고등군사재판에서 사형이 확정된 상태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의혹투성이다.

 

1) 김 일병이 범인이라는 근거는 자백이 유일하다. 오히려 피해자의 유족들이 김일병의 구명 운동에 앞장 서고 있다. 유족들이 김일병을 범인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크게 네 가지이다.

 

첫째,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 유일한 증거는 자백뿐이다. 김일병이 범행에 사용한 총이나 수류탄 고리에도 지문이 없었다. 사건 정황상으로 보면 김일병의 지문은 총기 곳곳에 묻어 있어야만 했다. 2005 75일 국방부과학수사연구소가 낸 감정서에는 ‘범행 증거물(탄창, 수류탄 손잡이)에서 지문이 현출되지 않았다’라고 되어 있다.

 

둘째, 김일병의 범행을 목격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 군 수사기관 발표에 따르면 김일병은 GP를 종횡무진하며 총을 쏘고, 내무실에 들어와서는 수류탄을 투척하고, 자동으로 총을 난사했다. 그런데도 소대원 누구도 김일병을 보지 못했다. 생존 사병들도 수류탄 폭음과 총소리만 들었다고 진술했다.

 

셋째, 거짓말 탐지기 조사에서도 ‘판단 불능’으로 나왔다. 검시관의 소견을 보면 더욱 의아하다. 피검사자 조건 적합 여부에는 ‘사건의 파장과 달리 너무나 차분하였고, 마치 타인의 행위를 진술하는 듯하였고, 피검사자의 정신·심리적 상태가 어떠한지 의심의 여지가 있어 본 검사관도 황당했다’라고 밝히고 있다. 행동 징후도 마찬가지다. ‘혼자 있을 때도 전혀 불안해하거나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계호병들과 자연스럽게 웃으며 대화하는 모습에서 과연 이번 범행을 저지른 피검사자인지 의문이 갈 정도였다. 검사가 끝나고 검사실을 나서면서도 웃는 등 본 검사관이 당혹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했다.

 

넷째, 김일병의 범행 동기도 석연치 않다. 국방부는 “김일병이 평소 선임병들로부터 잦은 질책과 욕설 등 인격 모욕을 당한 데 앙심을 품고 선임병 등을 살해했다”라고 밝혔다. 그런데 생존 소대원의 진술서 등에 나타난 소대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김동민을 괴롭혔다는 질책 사병들도 모두 무혐의 판정을 받았다.

 

2) 김 일병의 부모가 아들의 구명에 오히려 소극적이다. 유족들이 “당신 아들은 범인이 아니다”라며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는데도, 달가워하지 않았다. 김일병의 아버지가 공식석상에 모습을 나타낸 것은 2007 92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있었던 '연천 GP 총기사건' 관련 기자회견이다. 유족들의 간청에 의해 기자회견장에 나왔으나 그 다음부터는 유족들을 피했다. 이렇듯 김일병의 부모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유족들이 사형을 선고받은 아들 동민이의 구명에 나서는데도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김일병의 부모는 아들의 생사에 관심이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이다.

 

고 조정웅 상병의 아버지 조두하 한국폴리텍대학 교수는 “동민이 부모는 자식의 생명이 달린 문제인데도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동민이의 수사기록을 볼 생각도 안 하고 유족들을 만나는 것도 기피했다. ‘당신 아들은 범인이 아니다’라고 했는데도 남의 자식 생각하듯 했다. 같은 부모로서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라고 말했다.

 

3) 김동민 일병은 지난 2008 57일 고등군사법원 고등2(재판장 김영률 대령)에서 상관살해 등의 죄로 사형이 최종 확정되었다. 문제는 김 일병이 육군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고 하는데 유족들의 면회 신청 등이 거부되어 실제 수감 여부를 확인할 길이 없다.

 

2012 8 7일 육군교도소를 직접 방문한 조두하 한국폴리텍대 교수는 “김일병의 실제 수감 여부와 근황 등을 확인하기 위해 면회를 신청했지만 교도소 측은 면회를 거절하고 수감 여부조차 확인해주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조교수는 “면회가 안 되면 교도소 수감 여부를 확인할 수 있게 얼굴만이라도 보여주던지 CCTV 화면으로라도 확인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교도소 측은 “확인해 줄 수 없다”라며 거절했다고 한다.

 

연천530GP피격사건 전사자유족회 등 관계자들이 2014 6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광화문 광장에서 정부서울청사 방향으로 연천530GP피격사건 은폐조작 진상규명 특검촉구를 요구하며 행진을 하고 있다. 이들은 530GP 사건이 김일병의 소행이 아니라 북한의 소행이라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