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7월/7월 22일

이인직의 ‘혈의 누’ 만세보에 연재 시작

산풀내음 2017. 6. 16. 20:10

19067 22,

이인직의 ‘혈의 누’ 만세보에 연재 시작

 

이인직의 장편소설 `혈의 누` 1906 7 22일부터 `만세보`에 연재되기 시작했다. 이후 같은 해 10 10일까지 50회에 걸쳐 연재되었는데, 일반적으로 `혈의 누`가 우리 문학사상 최초의 신소설로 평가된다. 다만 일부에서는 혈의 누보다 8년 앞선 엿 장사라는 작품을 최초의 신소설로 봐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상편은 `만세보` 연재로 끝났고, 하편에 해당하는 `모란봉` 1913 2월부터 6월까지 63회에 걸쳐 `매일신보`에 연재되다가 미완성으로 끝났다.

 

 

이 작품은 청일 전쟁을 배경으로 하면서 10년 동안이란 시간의 경과 속에서 한국·일본·미국을 무대로, 여주인공 `옥련`의 기구한 운명에 얽힌 개화기의 시대상을 그리고 있다. 이 소설은 대중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구어체 문장을 사용했다는 점에서는 높이 평가되고 있다. 또 상투적인 한문구를 배제한 것도 이 소설의 성과이다. 이처럼 쉬운 문장은 훗날 우리나라에서 현대소설을 태동시키는 초석이 됐다.

 

그러나 이인직(1862 8월 22 ~ 1916 11월 1)대표적인 매국 친일파에 속한다. 1904년 일본의 러일전쟁 때 이인직은 일본 육군에 배속되어 통역을 담당하면서 친일의 길로 들어선다. 1906년에는 송병준이 주도하는 친일 단체 일진회 기관지 국민신보의 주필이 되면서 국내에서 본격적인 친일 활동을 벌인다. 한일합병 당시 일제와 합병을 앞장선 양대 세력이 있었는데, 바로 송병준의 일진회와 이완용이 이끄는 내각이었다. 이인직은 처음에는 송병준 계열의 국민신보 주필로 활동하다가 1907년 이완용의 후원으로 이완용 친일 내각의 기관지인 대한신문사장에 취임하면서 이완용 내각과 관계를 맺어 나간다.

 

1910년 경술국치 이전까지 이완용의 비서로 활동한 이인직은 경술국치 이후에 ‘경학원 사성’이라는 직위를 얻는다. ‘경학원’은 조선 왕조의 정신적 기관인 성균관을 격하하여 유림들을 친일로 전향시키는 역할을 담당했던 곳이다.

 

송병준 세력을 견제하면서 자기 세력을 중심으로 합방 조약을 체결하려는 이완용으로서는 1906년 통감부 외사국장으로 와 합병 조약의 실무자였던 고마츠의 제자인 이인직을 적극 활용한다. 뒤에 고마츠는 조선병합의 이면이라는 책에서 이완용의 밀명을 받고 자신을 찾아온 이인직과 있었던 일화를 소개하기도 하였다.

 

혈의 누에서도 친일적 색체는 강하게 나타난다. 작품은 청일전쟁 때 청군의 무능과 부패를 비판하면서 여주인공 옥련을 구해 주는 일본군 군의관을 등장시킨다. 이는 조선이 그 동안 청나라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현실과 함께 조선을 구해줄 구원자는 바로 일본이라는 암시이기도 하다.

 

이는 당시 개화 사상을 갖고 있던 지식인들의 일반적인 의식 구조이다. 즉 조선의 근대화는 덩치만 크고 무능하며 시대에 뒤떨어진 청나라가 아닌 서구의 근대 문물을 빨리 받아들여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 또는 미국, 영국 같은 서구 열강을 통해서 이뤄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는 사이 지식인들의 눈과 마음은 이미 자신이 개화를 통해 발전시켜야 할 조선에서 떠나 오히려 그 나라들을 흠모하게 되어 버렸다.

 

다시, 주인공 옥련은 일본에서 구완서라는 조선 청년을 만난다. 구완서는 조선을 업신여기면서 자신은 일본과 만주를 합하는 대연방을 건설하겠다고 말한다. 구완서의 꿈은 정확히 26년 뒤인 1932년 일본이 건국한 꼭두각시 국가인 만주국의 출현으로 실현된다. 이인직이 <혈의 누>에서 말하고 있는 꿈은 본디 자신의 꿈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스승인 고마츠를 비롯한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꿈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