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7월/7월 29일

한국, 첫 하계올림픽 출전

산풀내음 2017. 6. 18. 21:40

19487 29,

한국, 첫 하계올림픽 출전

 

1948 729, 14회 올림픽이 런던에서 개막됐다. 2차 대전으로 12년 만에 치러진 올림픽이었다. 한국을 비롯, 15개 신생국이 처음 참가한 것과 달리 전범국 일본, 독일, 이탈리아는 초청받지 못했다. 한국은 광복 후 처음 출전한 하계올림픽에 축구, 복싱, 역도 등 7개 종목에 50명의 선수와 17명의 임원을 출전시켰다. 그 해 1, 3명뿐인 초미니 선수단이 파견된 스위스 생모리츠 동계올림픽이 광복 후 출전한 첫 올림픽이었다.

 

14회 런던올림픽 선수촌 입촌식

태극기를 앞세우고 첫 참가한 한국대표단

 

당시 조선 선수단 기수를 맡고 제14회 런던올림픽 참가를 위해 한국을 떠나며 손기정씨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기차를 타고 배를 타고 또 비행기를 타고 우리는 경기장에 간다. 우리의 행로는 더웠다 추웠다가 따뜻하고 선선하다. 우리 선수들이 이러한 악조건을 극복하느냐 못하느냐가 승리를 좌우할 것이다. 사력을 다해 싸우고 돌아오겠다

 

6 21일 서울역을 출발해 열차로 부산에 닿은 선수단은 다시 배를 타고 요코하마를 거쳐 7 2일에 홍콩에 도착했다. 홍콩에서 런던행 비행기를 탔으나 인도·이집트·로마를 경유하는 장거리 비행이었다. 결국 20일이 지난 7 8일이 돼서야 파김치 상태로 런던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가는 여정도 힘들었지만 갈 수 있는 자격을 얻는 것도 힘든 과정이었다. 사실 정부수립도 되지 않은 나라가 단일국가로 올림픽에 참가한다는 것 자체가 기적적인 일이었다. 해방되던 1945, 조선체육회와 올림픽대책위를 구성했지만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조선체육회장 여운형을 필두로 당시 영어를 제일 잘한다는 전경무가 부위원장에 선임돼 미국과 협상을 시작했다. 미군정하에서 전경무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올림픽 출전희망이 가시화될 즈음 예기치 못한 사건이 발생했다. 1947 6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IOC총회에 가입신청서를 들고 가던 그가 비행기 사고로 추락해 유명을 달리한 것이다.

 

하늘이 도왔을까? 전경무를 대신해 재미교포 이원순이 스톡홀름으로 급파됐고 우여곡절 끝에 신생국 조선은 IOC가입이 승인됐다. 하지만 이제 경비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그래서 나온 아이디어가 바로 올림픽복권 발행. 전씨의 사진을 넣은 액면가 100원 복권은 불티나게 팔렸고 67명의 선수단은 비로소 태극기를 품고 장도에 오를 수 있었다.

 

과정을 힘들었지만 성과는 생각했던 것보다 대단했다. 첫 승전보는 역도에서 날아들었다. 8 11일 김성집이 역도에서 첫 동메달을 따내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태극기가 게양되는 감격을 맛보았다. 이어 한수안도 복싱에서 동메달을 획득, 한국은 참가국 58개국 가운데 24위를 차지했다. 한국계 미국인 새미 리가 하이다이빙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것도 런던 올림픽이었다.

 

1948 7 29일 개막한 제14회 런던올림픽에서 한국의 김성집 선수가 역도에서 동메달을 따냈고(왼쪽) 이화여중 박봉식은 올림픽에 출전한 최초의 여자선수가 됐다. 독립기념관제공

1948년 런던 올림픽에 출전한 사이클 선수인 황산웅(왼쪽)과 권익현이 런던에서 찍은 사진. 이 사진은 고 황산웅 선생의 아들인 황덕수 서울대(생명과학부) 교수가 소장 중이다.

올림픽 참가비를 마련하기 위해 발행한 우리나라 최초의 복권인 '국민후원권'(안전행정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