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8월/8월 16일

세계육상선수권, 우사인 볼트 남자 100m 세계신기록

산풀내음 2017. 7. 9. 17:19

20098 16,

세계육상선수권, 우사인 볼트 남자 100m 세계신기록

 

2009 8 16(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올림픽슈타디온에서 벌어진 제12회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100m 결선에서 우사인 볼트(Usain Bolt, 1986 -, 자메이카) 958로 기존 자신의 세계 기록을 경신하며 우승했다. 2008 8 16일 베이징 올림픽에서 9 69로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한 지 1년 만에 종전 기록을 무려 0.11초나 단축하며 우승한 것이다. 그리고 8 20일 남자 200m 결선에서도 1919의 세계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지난해 베이징올림픽에서 자신이 세운 종전 세계 기록 1930에서 0.11초 단축했다. 묘하게도 100m 기록을 0.11초 단축한 것과 수치가 똑같았다.



 


 

올림픽과 세계육상에서 연달아 100m 200m를 제패한 볼트는 이제 명실공히 진정한 챔피언이 됐다. 물론 `지구촌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라는 타이틀도 그대로 유지했다. 또 빨리 달리고 싶은 인간의 한계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지게 했다. 196, 95㎏의 탄탄한 몸으로 무장, 다른 선수들이 44걸음에 내달리는 100m 41걸음으로 끝내 버린다. 최대 보폭은 243㎝나 되며 평균시속은 37.6㎞에 이른다. 60m부터 시작되는 가속구간의 순간최고속도는 시속 45㎞에 달한다.

 

북중미 카리브해 소국 자메이카의 소도시 트렐로니 출신인 볼트는 어릴적부터 키가 컸고 친형과 함께 크리켓을 시작한 후 이내 육상으로 바꾸었다. 이후 볼트는 자메이카 같은 연령대에서 최고로 빠른 선수가 됐고 당시 자메이카의 수상 눈에 들어 수도 킹스턴으로 육상 유학을 왔다. 육상 지도자들은 그의 주종목을 200m 400m로 판단했다. 너무 큰 키 때문이었다. 일반적으로 볼트가 단거리의 새로운 제왕으로 등극하기 이전에는 100m에서 최적의 키는 1m85 이하로 통했다. 키가 크면 순발력과 하체의 운동 능력이 떨어진다고 판단했다.

 

볼트는 2002년 세계주니어챔피언십대회 200m에서 정상에 오르면서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렸으며 2003년 세계청소년챔피언십 200m에서도 우승한 볼트는 1년 뒤 아테네올림픽에 도전했다가 다리를 다치면서 예선 탈락했다. 2005년부터 코치가 현재의 글렌 밀스로 바뀐 후 야심차게 출전한 2005년 헬싱키 세계육상선수권 200m 결선에서 다시 다리를 다쳤다. 긴 부상 공백을 딛고 2006년부터 다시 두각을 나타냈다. 200m에선 이미 세계 정상권의 기록에 육박했다. 이때부터 볼트는 100m에 대한 욕심을 감추지 않았다.

 

볼트가 100m를 달리는 걸 탐탁지 않게 생각한 밀스 코치는 자메이카 200m 최고기록을 경신하면 100m를 달리게 해준다는 내기를 했고 볼트는 곧 자메이카 육상 영웅 돈 퀘리의 기록을 0.11초 앞당겼다. 이후 볼트는 2007 7월 그리스에서 열린 육상대회에서 처음으로 100m를 달려 우승했으며 그의 100m 기록은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렸다. 2008 5월 31, 미국 뉴욕 아이칸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리복 그랑프리 100m에서 9 72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해, 아사파 포웰이 가지고 있던 종전 기록 9 74 0.02초 차이로 앞당겼으며, 2008년 8 16, 베이징 올림픽 남자 100m 결승에서 9 69의 기록으로 또다시 세계 기록을 경신했다. 경기 도중 신발 끈도 풀어지고 결승선 10m를 앞두고 전력 질주를 하지 않았음에도 신기록을 세웠다.

 

2012 8월 5, 런던 올림픽 남자 100m 결승에서 9 63으로 올림픽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차지하였고 200m 우승, 4x100m 계주에서도 36 84 (-0.20 m/s) 세계 신기록을 갱신하여 우승함으로써 2회 대회 3관왕이라는 기록을 달성하게 되었다. 나아가 2016 8월 15,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남자 100m 결승에서 9 81로 금메달을 차지함으로써 올림픽 역사상 100m 3연패를 이루었다. 또한 200m 경주와 400m 릴레이에서도 3번째로 우승하여 올림픽 역사상 3종목 3연패를 이룩한 첫 선수가 되었다.

 

2016 Olympics

3 Olympics, 3 Races, 3 Gold Medals

 

육상이 전자계기의 힘을 빌어 기록을 측정한 것은 1932년부터였다. 하지만 1976년까지는 두 가지 방법이 혼용됐다. 기록의 정확성이 신빙성을 얻은 것은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였다. 10초 벽을 가장 먼저 허문 선수는 미국의 짐 하인스 였다. 하인스는 1968년 멕시코 하계올림픽에서 995의 기록으로 첫 10초 벽을 허물었다. 이후 1983년 캘빈 스미스(미국)가 미국 전국체전에서 993 기록을 세웠다.

 

이어 칼 루이스(미국, 세계육상선수권, 993), 칼 루이스(88서울올림픽, 992), 르로이 버렐(미국· 91년 미국 육상선수권, 990), 칼 루이스(세계육상선수권, 986), 도노반 베일리(캐나다, 96 애틀란타 올림픽, 984), 모리스 그린(미국, 99년 아테네 국제육상대회, 979), 아사파 파월(자메이카, 2005년 아테네 그랑프리 육상대회, 977. 2007년 이탈리아 국제육상대회, 974) 등이 100m 세계기록보유자에 이름을 올렸다.

 

다수 연구자들은 2008년까지만 해도 인간이 낼 수 있는 100m 달리기 기록의 한계가 944라고 했다. 100m 10m씩 구간별로 나눠 가장 좋은 기록만을 취합한 결과다. 이 기록은 킴 콜린스(미국), 모리스 그린(미국), 볼트의 기록을 합친 것이다. 스타트 후 10m까지는 콜린스가 가장 빨랐고, 그린은 2050m에서 최고 기록을 냈다. 나머지 구간에서는 볼트가 1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볼트가 2009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의 세계기록(958)을 기준으로 다시 살펴보면 볼트는 010m 2030m 구간에서 각각 콜린스와 그린에게 뒤졌지만 나머지 구간에서는 모두 역대 1위였다. 당시 10m 구간별 최고 기록을 조합할 경우 인간이 낼 수 있는 100m 최고 기록은 935로 내려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볼트 역시 ‘인간계의 최고’일 뿐이다. ‘동물계’에서는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아무리 빠르다 한들 치타의 속도(시속 104)를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가지뿔영양(시속 89)과 검은꼬리누(시속 80)는 물론, 타조(시속 64)에도 미치지 못한다. 볼트가 958에 뛴 100m를 치타는 580 만에 가볍게 달린다. 코요테(시속 40~48)는 인간이 추격할 수 있는 동물이라지만 그 역시 따라잡을 수는 없다. 추격을 당해 목숨이 위태로우면 코요테의 순간속도가 시속 69㎞로 올라간다. 그나마 우사인 볼트의 경쟁자로 꼽을 수 있는 동물이 있다. 단봉낙타이다. 단봉낙타는 우사인 볼트의 평균시속(37.6)보다 느린 시속 35.3㎞로 달리니까 승패를 겨뤄볼 만하다.

 


Usain Bolt and Samba dancers



Usain Bolt - 6 World Records in 100m (9.72, 9.69, 9.58), 200m (19.30 19.19), 4x100m relay (3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