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베트남

베트남 이야기

산풀내음 2018. 7. 12. 21:52

지난 7월 5일부터 10일까지 회사 행사를 위한 사전답사로 4박 6일간 베트남 하노이와 하롱베이를 다녀왔다. 첫 여행이라 그리고 짧은 일정이라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현지 교민들과 베트남분들의 이야기를 종합하여 몇가지 느낀 점을 정리해 보았다. 혹 베트남 여행을 준비하는 분이라면 참고하면 좋을 듯하다. 틀린 부분이 있으면 애교로 봐 주었으면 한다.



1. 호치민(胡志明, Ho Chi Minh)이 그립습니다.


베트남 독립의 아버지인 호치민에 대한 베트남 사람들의 지지는 절대적인 듯했다. 살아생전에 그가 스스로 실천한 청빈한 삶은 모든 국민의 존경을 받고 있다. 실제 신발은 폐타이어로 만든 신발을 신었고, 각국에서 선물로 보낸 호화 집기들은 일체 사용하지 않고 그냥 평범한 그리고 서민들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것을 사용했다고 한다. 또한 일화에 따르면 자신의 친누나도 평소에 만나지 않을 정도로 친인척에 의한 권력형 비리를 항상 경계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청빈한 삶을 살다가 간 호치민에 대한 동경과 그리움이 가득하지만 최근 서구화된 교육을 받은 젊은이 중 일부는 호치민으로 인해 공산화가 되었고 이 때문에 근대화가 늦어졌다고 생각해 거부감을 표시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고 한다.


호치민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곳

호치민의 직무실

호치민께서 생을 마감하신 장소

호치민께서 신으셨다는 폐타이어 신발


2. 재미나는 주민등록증


우리나라 70-80년대 사용했던 주민등록증과 매우 흡사했다. 그런데 상당히 특히한 점이 있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생년월일과 고유식별번호 그리고 사진과 지문 정도가 주민등록증에 기재된 정보라고 하면 베트남 주민등록증은 이에 더하여 키, 신체특징, 민족, 종교 등도 주민등록증에 기재되어 있다. 참고로 공산당원이 되기 위해서는 종교를 불교 또는 무교로 기재되어 있어야 하기에 기독교나 카톨릭 신자의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무교라고 기재한다고 한다.

3. 한국에 우호적인 베트남


베트남 전쟁으로 자국에게 엄청남 피해를 입힌 국가라고도 할 수 있지만 한류의 영향인지, 한국에 대한 호감도는 오히려 매우 좋은 편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한국의 경제개발 모델을 선망하는 부분이 많아 더욱 더 그런한 듯하다.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대장금을 통한 이영애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고 할 수 있고 최근에는 연얘인 이광수의 인기도 그 못지 않다고 한다. 베트남 여성의 경우에는 자국의 남성과 다른 큰 키와 하얀 얼굴을 좋아하는데 이에 가장 부합하는 연애인으로 이광수가 선택된 것이다.


4. 축구는 내 인생


베트남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운동이 축구이다. 베트남의 경제 수준을 생각한다면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동네 군데군데에 인조잔디 구장이 있고 저녁 때면 구장마다 꽉 차 있을 정도이다. 프로팀도 상당 수가 있다고 하니 그 열정을 감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편승하여 베트남 축구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박항서 감독의 인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다. 삼성 등에서 이미 TV광고모델로 활동하고 있어 박항서 감독은 인생 최고의 황금기를 지금 누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디에서도 축구를 즐기는 베트남 아이들


맥주를 한잔하기 위해 우리나라 호프집 같은 곳에 갔을 때 프랑스와 벨기에 월드컵 경기가 한창이었다. 우선 수많은 손님들이 호프집에서 틀어놓은 월드컵 경기에 열광하는 모습이 참 이색적이었다. 자국의 경기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마치 자국경기인냥 응원하고 있었다. 게다기 대다수가 프랑스를 응원하고 있는 모습은 더더욱 의외였다. 베트남이 오랜시간동안 프랑스 식민지였던 점, 그리고 그 기간동안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비롯한 베트남인들이 살해되었고 통치기간 중에 있었던 각종 만행들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일본에 대하여 느끼는 감정과 마찬가지로 프랑스를 싫어할 것이라는 나의 생각은 처참히 무너졌다. 우리에게 통역을 해주는 베트남인에게 의외라고 물었더니 한마디로 "축구 잘하잖아요"라며 웃는다. 더 나아가 잠깐동안 베트남을 식민화했던 일본도 그리고 월남전에서 수많은 인민의 희생을 낳게한 미국에 대한 반감도 전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오히려 여전히 영토분쟁문제가 있는 중국에 대하여는 그다지 좋은 감정은 아니라고 한다.

프랑스가 베트남 독립투사들을 가두었던 감옥, 우리나라의 서대문형무소에 해당

손과 발을 움직이지 못하게 해서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불구가 되었다고 한다.

하수구를 통해 탈출

탈출 당시의 모습을 재현

프랑스군대가 독립투사를 처형하기 위해 사용한 단두대로 공포심을 최대한 느끼게 하기 위하여 단두대에 목을 넣을 때 위에 있는 칼을 볼 수 있도록 목을 넣었다고 한다.


축구의 인기가 무조건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가장 큰 병폐가 도박이었다. 축구의 인기가 그 열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도박과 연결되어 축구 경기 결과에 따라 자살하는 사람이 속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5. 오토바이의 천국, 베트남


베트남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오토바이일 것이다. 우스게 말로 삼보일배가 아니라 삼보오토바이라고 한다. 그 정도로 오토바이는 대중의 중요한 교통 수단이었다. 단거리 교통 수단으로 국한된 것이 아니라 200-300km 정도도 오토바이로 이동하는 것은 아주 일상적인 모습이라고 한다. 단순히 짐을 나르는 수준을 넘어 경우에 따라서는 돼지나 소도 오토바이로 수송한다고 하니 과히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나의 경우에는 4명까지 한 오토바이를 탄 모습을 봤는데 현지에 오래 산 사람의 말에 따르면 최대 6명까지 한 오토바이에 탄 것을 본 적이 있다고 한다.

여기에서 또다른 특이 점이 있다. 우리의 경우 오토바이를 타면 뒷좌석에 앉은 사람은 앞 사람의 허리 등을 감싸 안는 경우가 많은데 베트남의 경우에는 앞사람을 잡지 않는다고 한다. 가장 큰 원인은 날씨가 덥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또 다른 이유로는 어릴 적부터 오토바이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다른 민족에 비해 균형감감이 월등히 뛰어나 그 필요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간혹 앞사람을 잡는 경우가 있는데 1) 얼마되지 않은 연인사이, 2) 어린 아이를 중간에 두고 타는 경우, 3) 외국인이라고 한다.

보통 인도와 차도를 구별짓는 보도블럭의 경우 차량이 넘어 오지 못하도록 직각으로 해 두는 것이 상식일텐데 베트남의 경우는 다르다. 오히려 오토바이가 필요에 따라 인도로 진입하기 용이하도록 경계석을 대각선으로 처리한 것이 특징이다. 이뿐만 아니라 오토바이가 택시 역활도 한다. 비교적 저렴하고 막히는 거리를 빨리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이용한다고 한다.

오토바이의 대중화가 판촉물에도 반영되어있다. 기업에서 사용하는 판촉물 중에 1등으로 꼽히는 것이 오토바이 헬멧과 판초우의라고 한다. 스콜성 소니기가 잦기 때문에 오토바이에는 판초우의도 헬멧가 더불어 필수 품목이다. 헬멧은 상대적으로 고가이기 때문에 기업에서 가장 선호하는 판촉물은 판초우의라고 한다.


6. 온통 비보호좌회전


베트남에서 가장 당황스러웠던 것이 이 부분이었다. 사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조금 있다가 직진과 좌회전이 동시 신호로 떨어졌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다른 편 거리는 빨간불이어야 하고, 오른편 도로 쪽 보행신호만 파란불이 정상일 것이다. 그런데 나의 상식은 베트남에서는 더 이상 상식이 아니었다. 앞쪽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직진과 좌회전 신호였고 도로 양 옆의 보행신도도 모두 파란불이었다. 이 말인 즉 우리의 관점에서 본다면 좌회전은 비보호좌회전이 되는 것이다. 우리와 다른 점은 비보호 좌회전의 경우 직진우선이지만 베트남에서는 직진이나 좌회전이나 보행신호나 모두 동일한 권리를 가진다고 한다. 그냥 알아서 가라는 것이라고 보면 될 듯하다. 이런 신호등도 차량은 그래도 좀 지키는 편이지만 오토바이의 경우에는 지키지 않는 경우도 매우 흔한 일상인 듯 했다.

7. 과격한 운전 습관


운전 습관은 거의 우리 70년대 모습으로 보면 될 듯하다. 크락숀을 누르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운전의 일부였다. 우리와 다른 것은 크락숀을 아무리 눌러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모습이라는 점이다. 그냥 '나 지금 간다'라는 표시 정도라고나 할까? 베트남은 술과 노래를 매우 좋아하는 민족이라고 한다. 그래서 낮 술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상이고 아무리 술을 많이 먹어도 차던 오토바이던 음주운전은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베트남에서는 차량사고가 너무나도 빈번하고 생명을 잃는 경우도 빈번하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법개념이 뚜렷하지 않기 때문에 소송을 통해 자신의 억울함을 해결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다. 그래서 사소한 사고의 경우에는 그냥 툭치고 일어나 그냥 지나간다고 한다. 

유턴 표시를 본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사거리에서는 표시에 관계없이 그냥 유턴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모습이었다. 우리에게는 없는 도로선이 있는데 이것이 노란 점선이다. 이는 중앙선이긴 하지만 합법적으로 넘을 수 있는 중앙선이다. 하룽베이의 경우에는 온통 흰 점선만 있는 구간이 있었는데 이곳의 경우 기본적으로 각 3차선씩이지만 차의 통행에 따라 아무곳에서나 달려도 된다고 한다. 정말 특이하다.

사실 노란 실선이라고 하여도 추월을 위해 차선을 넘는 것은 일상이었는데 더 특이한 것은 반대편 차량의 경우 오히려 조용히 피해준다는 것이다. 상향등을 켜거나 크락숀을 울려 불쾌감을 표시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이렇게 우리가 보기에는 매우 과격하게 운전을 한다. 2차선 도로에서 차량이 3줄로 서는 경우도 흔하며 크락숀은 일상이다. 하지만 과속은 하지 않는다. 일반 국도로 나가면 차들이 막 달릴 수 있도록 보이는 구간이 있는데 이 구간에서도 다른 것은 엉망인데도 속도는 가능한 규정이 지킬려고 하는 듯했다.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 같기도 하지만 과속의 경우에는 공안이 몰래 숨어서 단속을 하는 경우가 많고 그 벌금도 상당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8. 우리와 다른 집 문화


전통적인 집의 경우 전면이 4m 측면이 8-12m인 직사각형 집이 대부분이다. 이는 프랑스 식민시절부터 현재까지 이어온 세금부과체계의 영향이 가장 크다고 한다. 전면이 4m를 넘을 경우 과세기준이 달라져 세금이 많이 부과되기 때문에 전면은 4m이내로 하고 길이를 길게 하여 자신이 원하는 면적을 얻는다고 한다. 그리고 유럽의 영향으로 마당 없이 건물자체만 있기 때문에 측면의 경우에는 연접부지의 건물과 바로 붙여 짓기때문에 측면에 창도 없고 페인트칠도 하지 않는 특징이 있다. 이에 더 나아가 조금이라도 실 면적을 넓히고자 한다면 옆건물의 벽을 이용해 자신의 건물을 지어 한쪽면의 벽을 공유한다고 한다. 당연히 그에 대한 비용은 지불해야 하고. 최근에는 아파트도 많이 생기고 신흥부자들도 많이 생겨 전면을 여유롭게 하는 경우도 늘어가고 있다고 한다. 


아파트의 경우도 우리와는 너무나도 다르다. 우리는 아파트의 경우 직사각형 형태로 지어 복도를 공유하는 것이 초기의 형태라고 한다면 이곳은 정사각형으로 지어 중앙에 엘리베이트를 배치하고 동서남북으로 가구를 배치한다고 한다. 통상적으로 한 층에 10-30가구까지 배치하며, 빙 둘러 가구를 배치한 결과 바람이 통과하는 형태의 집은 없는 것이 되는 것이다. 더운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배치를 하니 당연히 공기의 순환을 위하여 집 대문을 열어두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바로 이 점이 한국 사람이 처음 가면 너무나도 적응하기 힘든 점이라고 한다. 집 문을 열어두니 앞집 옆집 아이들이 남의 집에도 들어가 노는 것은 일상의 모습 중에 하나라고 하니 ...

정사각형에 가까운 아파트 동

다수의 일반 서민들이 사는 집


9. 남자에 대한 집착


베트남에는 독립전쟁 뿐 만 아니라 남북간의 베트남전쟁, 인도차이나전쟁 그리고 중월전쟁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전쟁이 최근까지 있었다. 전쟁의 결과 베트남에서는 나이 든 노인을 찾아보기 힘들며 전쟁 시 가사를 여성이 맡았기 때문에 여성의 노동 참여가 매우 두드러진다고 한다. 여성이 농사 짓고 남성은 그 시간에 술마시고 노는 모습이 생각보다는 일상의 하나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뿌리 깊은 유교의 영향으로 남아선호 경향이 매우 강하며 그 결과 집안에서 아들의 학업을 위해 딸들이 희생당하는 경우도 허다하며 이를 당연하게 여기는 경향도 있다고 한다. 이에 더해 결혼하면 남편에 대하여 매우 순종적이어서 밥상을 차려 주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고 발까지 씻겨 주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유교적 문화에 편승(?)하여 남성의 바람기도 장난이 아니라고 한다. 일부종사(一夫從事)의 가치관과 남편의 바람이라는 현실 속에서 여성들이 취할 수 있는 것은 철저한 감시이다. 그래서인지 남편의 핸드폰에 위치추적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것이나 남편 핸폰의 문자메세지나 이메일을 확인하는 것은 아주 일상적인 모습이라고 한다. 이에 더하여 베트남에서는 여성의 날이 일년에 두번 있는데 이는 여성의 인권이 신장되어서가 아니라 이때라도 부인에게 잘해서 그 동안의 죄책감을 덜기 위한 것이라는 우스개 소리도 있단다.

그러나 최근에 여성의 교육이 강화되면서 전통적인 가치관과 충돌되는 경우도 빈번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베트남에서도 최근 이혼율이 급격히 상승하고 있다.

10. 역시 부동산이 최고야


우리의 70년대를 돌이켜보면 신흥 부자의 대부분은 부동산 졸부들이었다. 베트남도 지금 우리의 전철을 밝고 있다. 하루가 틀리게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있고 1년사이에 부동산 값이 10배 이상 뛰는 것은 베트남에서는 아주 흔한 수준이라고 한다. 이렇게 쉽게 돈을 번 졸부들이 생각보다 많아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들 앞에 서면 처음에는 베트남 부자 정도야 하면서 고개를 세웠다가 바로 고개를 숙인다고 하니....

베트남 중산층이 사는 아파트 값은 하노이의 경우 약 2억 정도(국민소득 수준으로 감안한다면 10억 수준)이지만, 조금 더 고급스러운 아파트를 찾으면 20억을 훌쩍 넘는 곳도 꽤 많다고 한다. 최근에 분양한 고급아파트의 경우 경품으로 벤츠를 경품으로 주는데 가격이 무려 70억이나 된다고 한다. 2억 정도의 아파트의 경우에는 실 소유주가 수십채씩 소유하고 있는 경우도 허다하고 두개층을 넘어 세개층을 한꺼번에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하노이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한 사장님의 부동산 투자 성공이야기를 들었는데 도저히 믿겨지지 않았지만, 여러사람들이 사실이라고 한다. 베트남에서 우리나라 제주도에 해당하는 푸꾸옥(Phu Quoc)이란 섬이 있다. 지리적으로는 베트남보다는 캄보디아에 더 가까운 섬으로 위치만 본다면 우리나라 백령도에 해당하는 섬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 개발이 한창인데 하노이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사장님이 지점을 개설하기 위하여 2016년에 6억을 들여 건물을 매입하였는데 장사가 별로여서 2017년에 건물을 20억에 매도하고 대신 인근 토지를 매입하였는데 그것이 지금 50억이 넘게 간다고 한다. 참 돈 벌기 쉽다(?)

일반 서민들의 경우에는 2억짜리 아파트도 아주 허름한 아파트도 직접 소유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금방이라도 붕괴될 것 같은 아파트도 대부분 몇몇 소수의 부자들이 소유하고 있으며 서민들은 이들에게서 임대하여 살고 있단다.

아마도 이런 분위기로 요즘 젊은이들은 엄청난 상실감에 시달리고 있으며, 현실적으로 한달에 30-50만원 정도의 월급으로는 내 집을 장만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여 그냥 지금 즐기자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고 한다. 이런 불만이 아직은 공산당의 독재에 억눌려 있지만 어쩌면 곧 터질 수 있는 폭탄의 뇌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참고로 베트남은 공산주의 사회라 소유의 개념이 아니라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정부로부터 임대라고 해야 할 것이지만, 50년이란 장기 임대에 재연장을 계속해주고 이런 임대권의 매매 등이 허용되어 있기에 이해를 편하게 하기 위해 소유라고 표현한 것이다.

11. 사적인 처벌에 관대한 베트남


베트남에는 도둑이 정말 많다고 한다. 특히 개고기를 좋아하기에 개 도둑이 많은데 도둑과 앞에 언급한 간통에 대하여는 매우 엄하게 다룬다고 한다. 도둑에 대하여 엄한 이유는 나도 어려운데 나에게 이런 짖을 하다니라는 서민들의 애환이 담겨있다. 도둑을 잡으면 법의 심판을 받기 전에 우선 마을 사람들이 거의 죽을 지경까지 몰매를 가한다고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실제 생명을 잃는 경우도 있단다. 여자의 경우에는 몰매보다는 발가벗겨 시장 한 복판에 두어 수취를 준다. 간통의 경우는 남자는 고자를 만들고 여자의 경우에는 몰매 또는 여자의 생식기에 아주 매우 베트남 고추를 넣어 두번 다시 그런 짓을 못하게 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모든 사적 처벌에 대하여 베트남 공산당은 상당히 관대한 편이란다.

12. 뒷돈은 선택이 아닌 필수


서민의 경우 한달 월급이 30-50 수준이라고 하니 월급만으로 살아가기가 쉽지만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여성도 맞벌이를 하는 경우도 빈번하지만 이보다 선호하는 것이 뒷돈을 챙기는 것이란다. 그래서 뒷돈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는 공안요원(우리의 경찰)이 최고의 직업이고 공안요원이 되기 위해서는 최소 1억 정도가 필요하다고 한다. 세무나 관세와 관련된 직업도 인기가 매우 좋다고 하는데 이 또한 이유는 뻔한 것이다. 친척이 운영하는 공장에 취직을 하는 경우에도 최소한 3달 정도는 무보수로 일을 해야 한다고 하니 호치민께서 이 모습을 보신다면 땅을 치고 피를 토하셨을 것이다.

학교의 경우 우리의 70-80년대와 마찬가지로 가정방문이 매우 활성화되어 있다. 이는 어렵고 힘든 사정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수금을 위한 수단이란다. 대학의 경우에도 좋은 학점을 따기 위해서는 열심히 공부하는 것보다 교수님께 시험 후 촌지를 드리는 것이 더 효과적이란다. 그래서 베트남에는 대학생들이 이 촌지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여성의 경우에는 쉽게 벌기위해 술집 접대부를 하는 경우도 흔하다고 한다.

뒷돈을 받을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맞벌이이겠지만, 이보다 더 쉽게 더 많이 벌고자할 경우가 많아 야간업소에 나가는 경우가 흔하단다. 현지에 계신 분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대학생 뿐 만 아니라 학교 선생님이나 의사도 야간업소에서 만난 적이 있다고 한다. 더 기막힌 일은 가정 주부도 남편의 허락하에 야간업소에 다니는 경우가 있다고 하니 .....

 

13. 현찰을 선호하는 사회, 왜?


베트남에서 신용카드가 되는 곳이 생각보다 흔하지 않다. 대형 호텔이나 레스토랑 정도라고나 할까? 가끔 택시에서도 가능하다고 하지만 막상 사용하려고 하면 통신문제 등으로 실제로는 현금으로 지급할 수 밖에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베트남 사람들은 은행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한다. 은행 이자율이 8%가 넘지만 은행에 예치하는 것보다 집 금고에 넣어 두는 것을 더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베트남 화폐보다는 금이나 미국 달러로 가지고 있는 것을 더 좋아한다고 한다. 그래서 은행보다는 사설 환전소가 더 활성화되어있고 외국 관광객의 경우 조금 더 유리한 조건으로 환전할 수 있다고 한다.

앞에서 언급한 아파트의 경우 비싼 경우 20억 이상한다고 하는데 베트남 화폐로 환산하면 약 400억 동(1동 =0.05원)인데 이 정도는 큰 가방 여러개에 나누어 담아서 지급한다고 하니 정말 대단하다라고 밖에는 할 말이 없다. 그래서 베트남에는 돈을 보관하는 금고와 이를 세기 위한 계수기가 일반화되어 있단다. 아마도 이는 자국의 화폐가치 및 은행에 대한 낮은 신뢰도와 시스템의 부재에도 원인이 있겠지만 그보다도 돈의 출처가 깨끗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14. 특이한 베트남 음식들은?


베트남에서 가장 보편적이면서 서민들이 선호하는 음식은 닭요리라고 한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닭발요리도 먹는데 우리와 다른 점은 닭 머리도 함께 먹는다는 것이다. 처음에 치킨집에 가서 닭머리가 함께 나온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머리를 보고나니 음식 맛이 뚝 ....

개고기도 선호하는 음식이라고 하고 이것 외에도 고양이, 비둘기, 갯지렁이도 그들이 선호하는 음식이라고 하는데 차마 먹어 볼 용기는 내지 못했다.

닭과 관련하여 베트남 사람들이 죽기 전에 꼭 한번 먹어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하는 닭이 있는데 아래 사진에서 나오는 가동타오라는 것이다. 가동타오의 경우 다리가 굻을수록 고가인데 비싼 것은 닭 한마리에 200만원도 훌쩍 넘는다고 한다. 국민소득 수준을 감안한다면 1000만원짜리가 되는 것이고 일반 서민들의 월급수준을 고려한다면 우며 2000만원이 넘는다고해야 할 것이다.

가동타오



15. 우리와는 많이 다른 밤 문화


우선 가장 기본적인 것은 베트남은 밤문화가 많이 발전되어 있지 않다. 베트남 남자들은 바람피우는 것을 즐기지만 또한편으로는 매우 가정적(?)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가정적이라는 것은 가사일을 분담한다는 것이 아니라 퇴근 시간 이후에는 가능한 집에 들어간다는 수준이라고 보면 될 듯하다. 이는 낮 술을 즐기기 때문인 점도 있다. 그래서 8-9시 정도가 지나면 비교적 거리는 한산하고 음식점들도 10시를 넘어 영업하는 곳이 드물다. 그래도 그들만의 또다른 밤문화는 있다.

가이드를 통하여 이야기는 들었지만 직접 목격하고 깜짝 놀란 것이 있다. 베트남의 가로오케의 경우에는 접대부를 불러주는데 이렇게 여성 접대부랑 술을 마시는 곳에 가족들이 함께 오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당연히 접대부를 부르지는 않지만 우리의 가치관에서 아이들에게 숨기고 싶은 장소에 아이들도 함께 와서 밤문화를 즐긴다는 것이다.

하롱베이에서 베트남 사람들이 주로 가는 나이트클럽을 가 보았다. 당연히 한국사람끼리는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었기에 베트남 사람과 동행했다. 처음에는 50이 넘은 사람 특히 외국인에게도 오픈해 줄까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런 제재 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 당연히 내가 최고령자였고 외국인도 우리 밖에 없었다. 


여기에서 놀란 것은 두가지 였다. 첫째, 초등학생 정도의 아이가 이곳에서 시끄러운 음악에 리듬을 타면서 놀고 있다는 것이었고, 두번째가 베트남에 이런 미남미녀들이 있었나 할 정도의 수려한 외모의 처녀총각들이 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또한번 적응이 되지 않는 것은 맥주를 먹고 화장실을 가고 싶어서 웨이트에게 화장실이 어디 있냐고 물었더니 직접 데려다 준다고 한다. 약간 부담스러웠지만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상황이라 어찌할 수가 없었다. 화장실에 들어가는 건장한 남자들이 여러 명 있었고 용무를 보는데 뒤에서 목 안마를 해 준다. 그리고 용무를 마치니 다른 사람이 손수건을 주면서 팀을 달라고 한다. 한 사람에게 주었더니 뒤에 있던 사람도 손을 내민다. 그에게 주었더니 데려다 준 웨이트도 손을 내밀고 있다. 소변 한 번에 들어가 돈이 무려 15,000원 정도. ㅠㅜ. 조금 시간이 지나니 또 가고 싶었다. 하지만 다시는 화장실에 가고 싶지가 않아 밖으로 조용히 나와 노상방뇨로 문제를 해결하였다. 15,000원을 번 셈이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