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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그리고 신라 불교의 초전지, 도리사에 다녀오다.

산풀내음 2018. 12. 2. 08:41

도리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계단을 오르면 가장 먼저 설법당이 우리를 반기다. 설법당 뒤로는 적멸보궁이 있고 오른편으로 가면 극락전과 좌선대가, 그리고 왼쪽으로 가면 서대가 나온다.

설법당에서 극락전으로 향하면 오르는 계단 벽에 소원지가 가득하다.


오늘은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그리고 신라 불교의 초전지인 도리사를 찾았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의 8대 적멸보궁이라고 하면 통도사, 정암사, 법흥사, 상원사, 봉정암의 5대 적멸보궁에 건봉사, 용연사 그리고 이곳 도리사를 더해 일컫는다. 


가을의 단풍 시절도 지나간 겨울의 문턱이라서 그런지 10시 조금 지나 도착했지만 찾은 이가 적어 한적한 산사의 느낌 그 자체이다. 관광객들의 시끄러움도 번잡스러움도 없는, 그냥 스님의 독경소리와 함께 까치의 반기는 지저귐이 전부다.


경북 구미시 냉산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 도리사는 신라에서 불교가 공인되기 전, 신라 19대 눌지왕 때인 417년에 고구려에서 온 승려인 아도화상이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냉산은 고려 태조 왕건이 냉산에 어가를 두었고 후삼국 통일의 대업을 이룬 곳이라고 하여 태조산이라고도 불린다.​

창건주인 아도화상에 대하여는 여러가지 주장이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등의 문헌을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여러 자료의 내용을 종합해서 요약해 보면 삼국시대에 출현하는 아도는 ‘我道’, ‘阿道’, ‘阿度’ 등 동음 한자를 쓰는 3인이다. 세 명의 아도 전기 또한 유사한 구조를 형성하고 있고 시기만 조금씩 다르다. 묵호자(墨胡子) 또한 아도의 설화 구조와 비슷해 아도와 동일인물로 여겨진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두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번째로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는 아도(阿道)는 순도(順道)가 고구려에 불교를 전한 2년 후인 소수림왕 4년(374년)에 고구려에 입국하여 불교를 전한 인도 승녀라고 한다.

두번째로 일연의 삼국유사에 소개된 '아도본비’(我道本碑)'의 내용에 따르면 240~248년에 고구려 사람인 어머니 고도령(高道寧)과 고구려에 사신으로 왔던 조위인(曹魏人) 아굴마(我堀摩) 사이에서 태어났고, 5세 때 어머니의 권유에 따라 출가하여 16세에 위나라로 가서 아굴마를 만나고, 현창화상(玄彰和尙)의 강석(講席)에서 공부한 뒤 19세에 귀국하였다. 그리고 신라 미추왕 2년(263년)에 신라에 들어와 불교를 전했다는 것이다. 참고로 ‘아도본비’는 아도화상과 진흥왕 당시 순교해 신라가 불교를 공인하는 계기를 만든 염촉(厭髑·이차돈)의 행적을 새긴 비석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도리사에 모셔져 있는 아도화상. 극락전과 적멸보궁 사이에 위치해 있다.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 스님도 ‘고구려 소수림왕 4년에 아도가 동진에서 온 것은 틀리지 않으나, 그 아도가 신라 미추왕 때 신라에 온 것은 100년 남짓 시간차가 있으므로 옳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미추왕 때 신라에 불교가 전해졌다는 ‘아도본비’ 내용도 고구려보다 100여년이 빠르므로 틀렸다고 했다. 일연은 아도를 눌지왕 때 신라로 들어온 인물로 규정했고, 눌지왕 때 신라에 불교를 전한 고구려승 묵호자(墨胡子, 삼국사기 눌지왕조에 소개)는 소수림왕 때 고구려에 온 아도와 같은 인물로 보았다고 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도는 법명으로 보고, 묵호자(墨胡子)는 '얼굴(몸)이 까만 외국인(오랑캐)' 이란 의미의 보통명사로 본다면 아도는 고구려에 입국한 후 다시 신라로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온 인도 승려로 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만 다수의 의견에 따르면 아도화상을 위나라의 아굴마와 고구려인 고도령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으로 보는데 이럴 경우에도 본시 얼굴이 까무잡잡했고 당시 신라인들이 이런 외모를 빗대에 묵호자라고 했다면 이 또한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삼국사기에 소개된 묵호자의 이야기


일찍이 눌지왕 때 승려 묵호자(墨胡子)가 고구려로부터 일선군(一善郡)에 왔는데, 그 고을사람 모례(毛禮)가 자기 집 안에 굴을 파 방을 만들어 있게 하였다. 그때 양나라에서 사신을 보내와 의복과 향을 보내주었다. 임금과 신하들이 그 향의 이름과 쓸 바를 몰랐으므로 사람을 보내 향을 가지고 다니며 두루 묻게 하였다. 묵호자가 이를 보고 그 이름을 대면서 말하였다. 이것을 사르면 향기가 나는데, 신성(神聖)에게 정성을 도달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른바 신성스러운 것으로는 삼보(三寶)보다 더한 것이 없으니, 첫째는 불타(佛陀)요, 둘째는 달마(達摩)이고, 셋째는 승가(僧伽)입니다. 만약 이것을 사르면서 소원을 빌면 반드시 영험(靈驗)이 있을 것입니다. 그 무렵 왕의 딸이 병이 심하였으므로 왕은 묵호자로 하여금 향을 사르고 소원을 말하게 하였더니, 왕의 딸 병이 곧 나았다. 왕이 매우 기뻐하여 음식과 선물을 많이 주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서 보면, 고구려에서 신라로 불교를 전하러 온 서역 승녀인 아도화상은  모례(毛禮) 장자(長子) 의 집에서 일꾼으로 숨어지내며 불교를 전파하였고 당시 눌지왕에게 향의 사용법을 가르쳐 주는 기회와 이를 통해 공주의 병을 낫제 해 줌으로써 왕의 인정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눌지왕의 승하 후 신라 관료들로부터 박해와 신변의 위헙을 받게 되자 그를 해치려는 세력을 피해 모례 장자의 집으로 몸을 피했다.

얼마 후 아도는 모례 장자에게 칡넝쿨이 집 안으로 들어오면 그 칡넝쿨을 따라오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시간이 흘러 예언에 따라 어느 날, 칡넝쿨이 대문 안으로 들어온다. 모례가 집을 나서 칡넝쿨을 따라가니 아도가 가부좌를 틀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곳이 오늘날의 도리사(桃李寺) 좌선대다.​


아도화상 좌선대. 좌선대 뒤편에는 아도화상 사적비가 있다.


반갑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모례 장자는 아도화상에게 절을 올린다. 모례 장자의 절을 받은 아도화상이 장자에게 망태기 하나를 내어 놓으며, 이곳에 절을 지어야 하니, 곡식 두말을 시주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모례는 흔쾌히 승낙하고 집으로 돌아와 망태기에 곡식을 담았으나, 두말만 담으면 넘칠 망태기가 아무리 담아도 채워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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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구제의 큰 원력을 일으키라는 아도화상의 마음을 깨우친 모례 장자는, 모든 재산을 다 시주하여 절을 짓는다. 신라 최초의 사찰 도리사(桃李寺)다. 도리사는 복숭아꽃(桃花)과 자두꽃(李花)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도리사는 신라 최초의 가람이면서 부처님 전에 향을 처음으로 피운 곳이기도 하다. 또한 도리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는 사찰로 8대 적멸보궁 중에 한 곳이다. 도리사에서 부처님 진신사리가 나온 것은 1976년이었다. 아도화상이 신라에 불교를 전하려 올 때 모셔온 세존 진신사리가 세존사리탑 보수 공사 중 금동육각사리함(金銅六角舍利函)에서 봉안된 형태로 발견된 것이다. 부도탑은 밤중에 푸른빛을 내뿜었고 이를 보고 마을 사람들이 절에 불이 난 것으로 잘못 알고 몰려왔다고 한다. 스님들이 원인을 찾으려 사찰 곳곳을 자세히 살펴보니 부도탑 속에 사리함이 모셔져 있었고 거기서 밤중에 빛을 발했던 것이다. 

​8세기에 조성된 금동육각사리함은 김천의 직지사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고, 진신사리는 고려시대 팔각 부도를 본 따 만든 새로운 석가여래사리탑으로 옮겨졌다. 세상을 놀라게 한 보물을 간직했던 석종형 사리탑은 극락전 뒤편에 있으며, 탑신에는 띠처럼 돌아가며 연잎이 겹쳐져 새겨져 있고 그 위로 다섯 개의 원에 ‘세존사리탑’이라고 새겨져 있다.



도리사 태조선원(太祖禪院).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기도도량이지만, 우리나라에서 몇 손가락에 꼽히는 선방이 있다. 근래의 선지식 중에 전강, 성철스님 등이 이곳에서 정진하였다. 

석가모니 진신사리가 발견된 세존사리탑. 태조선원과 삼성각 사이이며 극락전 뒤편에 위치해 있다.


극락전 앞에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형태의 석탑이 있다. 얼른 보면 네모난 돌들을 그냥 적당히 쌓아 놓은 것 같다.  각각 한 면에 문틀을 돋을새김한 널돌이 끼워져 있으며, 맨 위의 2개 층이 노반과 탑신부의 구분이 분명치않아 희귀한 모습을 취한 탑이다. 1968년 12월 19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470호로 지정되었다.


극락전. 여덟 팔(八)자 모양의 팔작지붕이다.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이 모셔져 있다. 2013년 4월 8일 경상북도의 유형문화재 제466호로 지정됐다.



적멸보궁. 도리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전각이다.

적멸보궁 중앙에 걸려있는 사진. 아마도 뒷편 사리탑에 봉안되어 있는 석가모니 진신사리인 듯하다.

새롭게 지어진 사리탑. 이곳에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다

서대에서 바라본 낙동강

서대. 아도화상은 이곳 서대에 올라 서쪽의 황악산을 가리키며 "저곳에 훌륭한 터가 있는데 그곳에 절을 지으면 불교가 흥할 것이다" 라고 하여 그곳에 절을 지으며 아도화상이 바로(直) 기리켰다(指)라고 해서 직지사(直指寺)라 이름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