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9월/9월 9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수립

산풀내음 2016. 8. 17. 07:13

1948 9 9,

북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수립

 

1948 8 15일에 서울 중앙청 앞에 태극기가 게양되었고 미군정이 종료돼 대한민국의 시작을 알렸다. 그리고 1949 10 1일 마오쩌둥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을 선언해 공산주의 중국이 태어났다. 북한에서도 그런 명절은 있다. 바로 9 9일이다. 북한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설립 날이 1948 9 9일이라고 주장한다.

 

일본 제국 패망 이후 얼마 안 돼 소련 당국은 한반도 북반부에서 독립 국가를 세우겠다고 결정했지만 남한에서는 영향을 키운 세력들이 통일에 대한 토론에 불을 지폈다. 그런데, 미군정하에 있던 이승만 등은 모스크바 3상회의 등의 결과를 보면서 통일이 사실상 어렵다고 판단,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북한 건국 준비 과정은 1947년에 본격 시작됐다. 소련 당국은 북한에 임시헌법을 만들라는 지시를 하고 북한의 국기인 인공기의 도안도 제시했다. 그러다 1948 2월에 평양에서 임시헌법위원회는 구성되고 임시헌법제안이 제정됐다. 물론, 헌법제안은 다시 모스크바에 보냈고, 전소련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 지시에 따라 편집되었다.

 

남한에서 1948 5 10일에 제헌 국회의원 선거가 진행된 것을 본 소련 당국은 북한 건국을 조속히 결정하게 된다. 2차 남북 지도자협의회가 끝나자 북한의 행보가 더욱 빨라졌다. 지도자협의회가 끝난 지 나흘 뒤인 7 9∼10일 북조선인민회의 제5차 회의가 열려 인민공화국 수립 일정과 방법을 논의하였는데, 회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을 북조선지역에서 실행할 것을 결정함과 동시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8 25일에 실시하기로 결정하고, 대의원 선거 규정과 중앙선거위원회 조직문제를 마무리 지었다.

 

실제적으로 이 순간을 북한의 탄생으로 볼 수도 있다. 이 날에 북한 헌법도 실행되었고, 국가의 가장 중요한 상징인 국기도 처음 게양되었다. 그리고 최용건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실행 만세!”라고 외친 것이 북한 건국을 선언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이 날에 한반도의 영구 분단이 시작된 셈이다.

 

8 25일 북한 정권을 수립하기 위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가 실시되었다. 북한 지역의 선거는 212개 선거구에 227명의 입후보자가 등록했다. 선거 결과, 전체 유권자 4526,065명 가운데 99.97% 4524,942명이 투표해 참가했고, 민전 투표에 대한 찬성률은 98.4%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북한 지역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212명이 선출되었다.

 

이와 함께 남한 지역 대표를 선출하기 위한 남조선 인민대표자대회가 8 21∼26일까지 해주에서 개최되었다. 해주 대회에는 7월 중순부터 비밀 선거를 통해 선출된 1,080명의 남한 인민대표가 참석했으며, 그 가운데서 360명의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 선출되었다.

 

여기에 참석한 남한 지역의 인민대표를 선출하는 과정은 철저하게 비밀스럽게 치러졌다. 남로당은 이 선거에 남한 전체 유권자의 77.52% 6732,407명이 투표했다고 주장했으나 과장된 것이었다. 남한 지역의 투표는 대부분 개별 방문과 서명 날인 등의 방식으로 이루어졌고, 그마저도 당원들이 간접 날인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남한의 비밀투표는 남로당이 주도했고, 남로당의 정치 군사간부 양성소인 강동정치학원생들이 행동대원으로 동원되기도 했다.

결국 남북한에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572명이 선출되었다.

 

그리고 9 2일에 최고인민회의가 소집됐다. 최고인민회의 제1 1회의가 제정된 결정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은 북한 헌법을 전체 한반도에서 실행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결정은 9 9일이 아니고, 9 8일에 내리게 되었다. 그리고 9 9일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이 설립됐고, 바로 이 날짜는 북한 공식적인 건국 날짜가 됐다.

 

그러나 9 9일은 집행권의 최고기관인 내각이 설립된 날뿐이었고, 전체 국가의 시발점으로 보기가 어렵다. 그리고 1948년에 나온 우표에서도 이 날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건국”으로 표시하지 않고 그냥 “중앙정부수립”으로 표시했다.

그러나 내각 설립 직후에 소련은 북한을 독립 국가로 공식적으로 인정해 북한의 최고 권력자인 테렌티이 시트코프 상장을 주 북한 대사로 임명했다. , 북한 건국 날짜도 소련으로부터 결정된 셈이다.



1946113, 평양음악학교 학생들이 김일성과 스탈린의 초상화를 들고 북한 인민위원회 선거 경축대행진을 하고 있다. (북한도 그때까지는 태극기를 국기로 쓰고 있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을 경축하는 민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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