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9월/9월 16일

사브라 샤틸라 팔레시타인 난민촌 대학살

산풀내음 2016. 8. 21. 12:25

19829 16,

사브라 샤틸라 팔레시타인 난민촌 대학살


 THE 1982 SABRA CHATILA MASSACRES IN BEIRUT, Watercolor painting by Vladimir Tamari October 1982

 

1975년에 발발한 레바논 내전 중의 불안한 정국을 이용해 이스라엘은 레바논의 기독교 정당인 팔랑헤당의 당수 바시르 제마엘을 레바논 대통령으로 앉혀 이스라엘에 종속된 레바논을 만들려는 구상을 하였다.

 

1982 PLO의 레바논 철수가 한창일 때 레바논 의회에서 바시르 제마엘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지만 대통령 취임을 9일 남겨둔 1982 9 14일 오후 4 10분경 시리아 사회 민족당(SSNP)의 당원인 하비브 샤르토니에 의해 설치된 폭탄으로 동료 26명과 함께 암살당했다.

팔랑헤 당원들의 우상인 바시르 제마엘의 암살로 인해 팔랑헤 당원들은 커다란 분노와 복수심으로 불탄다. 이 분노는 또 다른 폭력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이 때 재수 없게 걸려 든 것이 힘이 약해진 레바논의 팔레시타인 난민들이었다. 난민촌에는 곧 피바람이 분다.

 

1982 916일 레바논의 파시스트 정당인 팔랑헤당 소속 기독교 민병대가 이스라엘군의 방조 속에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의 서쪽에 위치한 사브라와 샤틸라(Sabra-Shatila)의 팔레스타인 난민촌에 난입해 무차별 학살을 시작했다.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한 지 석 달 만에, 그리고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눈물 속에서 시리아로 근거지를 옮긴 지 불과 수주일 만에 일어난 이 학살 사건은 전세계에 놀라움과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이스라엘은 PLO가 시리아로 철수하는 조건으로 휴전이 이뤄지면 서베이루트로 진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미국 레이건 행정부에 한 바 있지만, 메나헴 베긴 총리와 아리엘 샤론 국방 장관은 이 협정을 무시하기로 결정했고, 915일 아침 이스라엘군이 서베이루트로 밀려들어와 이튿날에는 전 지역을 장악했다.

 

미국과 레바논 정부는 이스라엘에 항의했지만, 힘없는 레바논 정부만이 아니라 힘있는 미국 정부도 말과 속셈이 달랐던 듯하다. 이스라엘군은 중무장 병사들과 탱크로 사브라와 샤틸라 난민촌을 포위한 뒤 레바논 극우파 민병대원들을 난민촌 안으로 들여보냈다.

 

그 날 오후부터 18일 오전까지 만 이틀 동안 벌어진살인 파티의 희생자가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국제적십자사의 비교적 보수적인 집계에 따르더라도 피살자는 2,750명에 이른다. 이 수치는 주로 현장에 널브러져 있던 시신들을 기초로 한 것이다.

 

이 시신들은 대부분 사지가 절단돼 있었다. 민병대원들은 학살의 무기로 기관총보다는 도끼나 대검을 더 선호한 것이다. 이 학살자들이 불도저를 동원해 판 구덩이에 묻은 시신들은 제대로 발굴되지 않았다. 거기다 피납, 실종자들까지 계산하면 피해자 수는 훨씬 더 늘어날 것이다. 이 더러운 작전의 기획자는 한 때 이스라엘 총리를 지낸 그리고 당시 국방부 장관 아리엘 샤론이었다.

 

인과응보로 그는 2006 1월 발작을 일으켜 입원했다가 식물 인간으로 지내다가 2014 1 11일 살인마는 세상을 떠났다. 무고하게 희생당한 어린 영호 들에게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샤론과 같은 악마는 반드시 아비지옥에서 고통스럽게 지내야 할 것이다.

 


이스라엘과 레바논 팔랑헤당 기독교 민병대들은 저항할 수 없는 어린아이, 나아가 영아 들까지 무참히 학살하였다. 이런 잔인함이 나찌 독일과 다름이 뭐 있을까?

전설적 살인마라는 공통점을 가진 샤론과 히틀러,


과연 이스라엘인들은 나치를 비난할 자격이 있을까?

최소한의 전쟁규칙 조차 무시하고 무고한 어린 아이들까지 살해한 인간들이 ……

어쩌면 히틀러의 생각이 옳았던 것은 아닐까???

'역사속에 오늘, 9월 > 9월 16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군ㆍ유엔군 낙동강전선 총반격  (0) 2016.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