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11월/11월 5일

조선중앙일보 폐간

산풀내음 2016. 10. 13. 04:25

193711 5,

조선중앙일보 폐간

 

1926 11월에 중외일보가 창간되면서 조선일보, 동아일보가 주도해 온 민간지 신문시장에 3파전이 형성됐다. 중외일보는 1931 11월에 문패를 중앙일보로 바꾸고 1933 2 16일에는 소유권을 여운형 손으로 넘어가 여운영은 사장으로 취임했다.

여운형은 중국에서 동명의 중앙일보가 발행되는데다 민족적 정신을 불어넣기 위해 제호에조선을 덧붙인조선중앙일보3 7일 제호를 바꿔 신문을 발간했고 소속 잡지로 중앙’, 어린이 잡지로 소년중앙을 발행했다.

 

1934 7월에는 이상의 시오감도를 연재했으나 빗발치는 독자의 혹평으로 연재를 중단시켜야 했고, 1936년에는 8 13일자 신문에 동아일보보다 먼저 일장기를 말소한 손기정 선수의 사진을 실어 곤욕을 치렀다. 3명의 기자가 구속되고 신문은 동아일보와 함께 9 5일부터 무기정간 처분을 받아 휴간되었다. 이 무기 정간은 1937년에 해제되기는 하였지만 휴간 동안에 뿌리깊은 사내의 내분이 다시 일어나고 재정상태는 재기불능으로 악화되어 결국 115일 발행허가효력이 상실돼 자동 폐간됐다.

 

조선중앙일보는 수위부터 항일운동가만 20명에 이르는 신문사였다. 예를 들어 홍증식, 조동호, 임원근 등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사장 여운형이 스포츠를 좋아하였기 때문에 국내 일간지 중 최초로 스포츠면을 따로 만들었다. 특히 축구에 대한 애착을 가진 기사를 많이 작성하기도 했는데, 1936 31일자에서 "우리의 국기인 축구"라는 표현을 썼고, 같은 해 416일자에서는 "우리 겨레가 사는 그 어떤 곳에서도 뽈차기를 모르는 이가 별로 없다"고 보도하기도 하였다.




당시 사옥으로 사용되었던 건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