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11월/11월 28일

'존엄사(死) 인정' 국내 첫 판결

산풀내음 2016. 10. 20. 20:40

2008 11 28,

'존엄사() 인정' 국내 첫 판결

 

2008 216일 병원에 입원해 폐조직 검사 중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김 할머니(76)에 대해 인공호흡기를 부착하는 등 연명치료를 해왔다. 당시 김 할머니 가족들은 병원에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해줄 것을 요청했다.

병원 측의 거부로 5월 김모씨의 자녀들이 한 대학병원을 상대로 "어머니의 평소 뜻에 따라 자연스러운 사망을 위해 인공호흡기를 제거해달라"고 소송을 제기하였고, 11 28일 서울서부지법 민사12(재판장 김천수) "병원은 김씨에게 부착한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라"고 판결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게 하는 '존엄사'(尊嚴死)가 법적으로 인정된 것이다. 이는 1997년 의사가 가족들의 요구로 인공호흡기를 뗐다가 살인 방조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이른바 '보라매병원 사건' 판결을 뒤집은 것으로 존엄사와 안락사에 대한 논란을 불러왔다.

 

'안락사' '존엄사'는 가끔 혼동되기도 하지만 엄연히 다르다는 것이 의료계의 의견이다. '안락사'가 고통 없는 생의 마감에 초점을 맞췄다면, '존엄사'는 인간답게 생을 마감할 수 있게 한다는 데에 방점이 찍혀 있다. 존엄사가 '자연스러운 죽음'에 가까운 반면, 안락사는 '의도적인 '죽음'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안락사 허용이 몰고 올 후폭풍은 어느 사회에서든 만만치 않았다. 프랑스가 '존엄사' 법제화 이후 10년 이상 논의를 거쳐 '안락사'를 도입하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후 이 재판은 대법원까지 갔으며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능환 대법관)는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김 할머니의 가족(특별대리인)이 연세대를 상대로 낸 무의미한 연명치료장치제거소송 상고심(2009다17417)에서 대법관 94 의견으로 원고승소 판결한 원심을 2009 5 21일 확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인간의 생명은 고귀하고 생명권은 헌법에 규정된 모든 기본권의 전제로서 기능하는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라며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진료행위를 중단할 것인지 여부는 극히 제한적으로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러나 "생명이 가장 중요한 기본권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의 생명 역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라는 인간존재의 근원적인 가치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보호돼야 할 것"이라며 "이미 의식의 회복가능성을 상실해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이르렀다면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신체침해행위에 해당하는 연명치료를 환자에게 강요하는 것이 오히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해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따라서 "이 같은 상황에서 죽음을 맞이하려는 환자의 의사결정을 존중해 환자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을 보호하는 것이 사회상규에 부합되고 헌법정신에도 어긋나지 않는다" "회복불가능한 사망단계에 이른 후에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에 기초해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연명치료의 중단이 허용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존엄사 허용기준으로 △환자가 회복 불가능한 사망단계에 진입했을 것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환자의 사전의료지시가 있을 것 △사전의사가 없을 경우 환자의 평소 가치관·신념 등에 비춰 추정할 것 △사망단계 진입여부는 전문의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판단할 것 등을 제시했다.

 

이후 재판부의 판결에 따라 병원측은 가족과의 합의로 김모 할머니에게 2009 6 23일 인공호흡기를 떼고 인공 영양·수액 공급만 실시했다. 그러나 인공호흡기를 뗀 후 자발 호흡으로 201일을 생존하였고, 2010 1 10 78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