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1월/1월 16일

부부 강간죄 첫 인정 판결

산풀내음 2016. 11. 24. 06:21

2009 1 16,

부부 강간죄 첫 인정 판결

 

1970 3월 대법원은남편이 폭력으로써 강제로 처()를 간음했다 하더라도 강간죄는 성립되지 아니한다고 하여 정상적인 부부 사이에는 강간이 성립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은 당시 사회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주었고 또한 사회에 영향을 미쳐왔다.

그런데 2004년 서울중앙지법이 부부간 성폭력을 강제추행으로 단죄한 데 이어 2009 1월 부산지법은 최초로 부부강간을 인정하는 판결을 선고한다.

 

 

부산지법 제5 형사부(재판장 고종주) 2009 1 16일 아내의 의사에 반해 성관계를 가진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임모(42)씨에 대해 징역 2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임씨는 2006 8월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만난 필리핀 출신 아내(24)가 지난해 8월 생리 중이라며 성관계를 거부하자 흉기로 협박해 강제로 성관계를 가진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형법상 강간죄의 대상인부녀혼인 중의 부녀가 제외된다고 볼 아무런 근거가 없으며, 법이 강간죄로 보호하려는 대상은 여성의 정조가 아니라 성적 자기 결정권이며, 아내 또한 이런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폭행과 협박에 따른 강제적 성관계는 부부 사이라도 일반적인 강간죄와 다를 것이 없다면서이같이 가정 내에서 은밀히 발생하는 부부 사이의 성폭행은 아내를 성의 도구나 노예로 전락시켜 아내의 행복추구권과 자유로운 인격 실현, 존엄성을 해치기 때문에 법률로 규제하지 않으면 반복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법원의 시각도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대법원의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 2009 1월 부산지법 판결 한달 뒤인 2월 대법원은 또 다른 부부강간 사건을 선고한다.

A() B씨는 부부로 살다가 A씨가 장기간 성폭력과 폭행을 일삼는 바람에 이혼을 한 경험이 있었다. 그러다가 A씨의 간곡한 요구로 두 사람은 혼인신고를 하고 재결합하였으나 다시 두 달 만에 별거 상태에 들어간 후 결국 이혼하기로 합의하게 된다.

법원에 협의이혼 서류를 접수한 후 A씨는 B씨를 찾아와 마지막으로 하루만 함께 보내자고 부탁하였다. B씨가 차마 매정하게 거절할 수 없어서 부탁을 들어준 게 화근이었다. 그날 밤 다른 가족들이 모두 돌아가고 단둘이 남게 되자 A씨는 갑자기 야수로 돌변하였다. 그는 B씨가 성관계를 거절한다는 이유로 머리채를 잡고 칼로 위협하여 반항하지 못하게 굴복시킨 다음 성폭행하였다. 이 장면을 카메라로 찍기까지 하였다.

 

이 사건에 대하여 대법원은 “혼인관계가 존속하는 상태에서 남편이 처의 의사에 반하여 폭행 또는 협박으로 성교행위를 한 경우 강간죄가 성립하는지 여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적어도 당사자 사이에 혼인관계가 파탄되었을 뿐만 아니라 더 이상 혼인관계를 지속할 의사가 없고 이혼의사의 합치가 있어 실질적인 부부관계가 인정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면, 법률상의 배우자인 처도 강간죄의 객체가 된다”라고 하여 이미 이혼소송 중이거나 그에 버금갈 정도로 혼인파탄 상태인 부부에게는 강간이 성립될 수 있다고 판시한 것이다. 즉 제한된 경우에만 부부 강간을 인정한 것이었다.

 

그 후로도 부부강간은 드물게나마 법의 심판대에 선다. 특이할 점은 대법원의 '애매한' 태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급심 판결에서는 부부강간을 인정하는 추세라는 것이다. 별거나 이혼이 전제되지 않은 부부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마침내 1970년 대법원 판례를 뒤집는 대법원 판례가 2013 5월에 이르러서 나오게 되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아내를 흉기로 위협해 세 차례 강제 성관계를 맺은 혐의(특수강간 등)로 기소된 강모 씨(45)에게 징역 3 6개월에 신상공개 7, 전자 발찌 부착 10년을 선고한 원심을 2013 5 16일 확정했다.

 

재판부는 “형법상 강간죄의 대상인 ‘부녀(婦女)’는 성년이든 미성년이든, 기혼이든 미혼이든 상관없이 여성을 가리킨다”며 “법률에 아내를 부녀에서 제외한다는 규정이 없는 만큼 아내도 강간죄의 대상에 포함된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또 “1995년 형법이 개정되면서 강간죄를 포괄하는 죄목이 ‘정조에 관한 죄’에서 ‘강간과 추행의 죄’로 바뀌었는데 이는 법이 보호하려는 권리가 ‘여성의 정조 또는 성적 순결’이 아니라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인식이 반영된 것”이라며 “민법상 동거의무에 성생활 의무가 포함됐다고 하더라도 폭행·협박에 의해 강요된 성관계를 감내할 의무까지 포함된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참고로 미국 뉴욕주 항소법원에서는 1984혼인증명서가 아내를 강간하는 자격증이 될 수는 없다, 기혼 여성도 미혼여성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신체를 통제할 권리를 지닌다고 판시, 부부 강간을 인정했다. 영국과 독일은 각각 1991년과 1997년 부부강간죄 면책과 부정의 근거가 됐던 법을 폐기했고 프랑스도 1981년부터 부부 사이의 강간죄를 인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