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1월/1월 24일

영국 정치가 윈스턴 처칠 경 사망

산풀내음 2016. 11. 29. 20:15

19651 24,

영국 정치가 윈스턴 처칠 경 사망

 

 

윈스턴 처칠(Sir Winston Leonard Spencer-Churchill, 1874 11월 30 ~ 1965 1월 24)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영국을 지도했던 정치인이다. 하지만 그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는 군인이자 정치인이었으며, 작가이고 역사학자이고 예술가이기도 했다.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재능을 갖기도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1874, 말버러 공이자 유명한 정치인이었던 랜돌프 처칠과 미국의 백만장자 레오나드 제롬의 딸 제니 제롬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독립적이고 반항적이었으며, 학교 성적은 언제나 바닥이었다. 라틴어와 그리스어, 수학은 늘 낙제였다. 다행히 10살 무렵 아버지가 사다준 ‘보물섬’ 등 동화책을 읽으면서 독서에 흥미를 느끼게 되어 꾸준히 책을 읽는 습관을 들였다고 한다. 독서로 어휘력이 풍부해지면서 영어 성적은 항상 최우수였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실망하여 지능이 떨어지기 때문에 군인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고, 처칠은 해로우 스쿨에 들어가 군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처칠은 삼수 끝에 겨우 합격하였지만 사관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했다. 특히 군 작전 관련 서적과 역사책 읽는 것을 즐기게 되어 그의 방은 작은 도서관으로 변했다.

 

사관학교 시절 처칠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육군장교와 종군기자로 경력을 쌓았으며 1901년에 처음 국회에 진출했고 1차 세계대전 직전에 해군 제1장관에 임명됐다. 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해군장관을 맡았다가 작전실패로 사퇴한 뒤, 다시 군대에 복귀하여 영관 장교로 전쟁에 참여하여 지휘관으로의 우수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그 후 정치에 투신하여 보수당 의원으로 활동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다시 해군장관으로 발탁된다. 2차 세계대전의 암울한 시기 즉, 독일군이 유럽을 짓밟고 있던 1940년에 노르웨이작전 실패를 계기로 총리 체임벌린 대신에 총리에 취임해 영국을 바꾸어 놓았다. 단호하게 그는 하원에서나는 피와 눈물, 노력, 땀 외에는 내놓을 게 없다고 말했다. 전쟁에서 영국이 독일의 폭격으로 파괴되고 그 침공을 두려워하며 홀로 저항했던 암울한 수개월간 언제나 입에는 시가를 물고 승리의 ‘V를 치켜든 처칠은 불굴의 상징이었다.

 

1946년 미국 미주리주 풀턴에서의 연설에서철의 장막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기도 하였다. 철의 장막(Iron Curtain)은 영국 수상 처칠(W. Churchill)이 구소련을 비롯한 공산권의 폐쇄적이고 비밀주의적인 대외정책을 풍자한 말이다. 1945 3월 미국 미주리 주풀턴 대학에서 행한 연설에서 '공산주의의 동부 유럽과 민주주의의 서부 유럽 사이에는 철의 장막이 내려져 있다’고 말한 데서 비롯되었다1945년 총선거에 패배하는 시련을 겪기도 했으나 1951년 다시 총리에 취임했다. 그리고 이때(Sir)’ 의 칭호를 받았다.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처칠은 순수 문학작품이 아닌 ‘제2차 세계대전 회고록’이라는 책으로 1953년 노벨문학상을 받는다. 그만큼 그는 뛰어난 독서가이며, 문장가였고 사상가였다. ‘제2차 세계대전 회고록’은 단순한 전쟁사가 아닌 심오한 역사 인식과 문학적 상상력으로 쓴, 전쟁이 빚어내는 인류의 비극을 다룬 인문학서라고 할 수 있다. 처칠의 정치력이나, 문장력은 바로 그가 꾸준히 쌓아온 독서 경험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Churchill Never Never Never Give up.

 

 

처칠은 팔삭둥이 조산아로 태어났다.

말더듬이 학습장애로 학교에서 꼴지를 했고,

초등학교 학적 기록부에는 희망이 없는 아이로 기록되었다.

중학교 때에는 영어과목에서 낙제를 받아 3년이나 유급을 했다.

육군사관하교도 두 번의 낙방 끝에 입학했으며,

정친 입문 첫 선거에서도 낙선했다.

 

이랬던 처칠이 명문 옥스포드 대학에서 졸업식 축사를 했다.

수많은 청중들이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

 

Never Give Up.

한번 숨을 고르고 난 뒤 나머지 축사를 이었다.

Never, Never, Never, Never, Never, Never, Never Give Up.

일곱 번씩이나 Never를 강조한 Never give up이 축사의 전부였다.

 

그의 인생역경을 알고 있는 청중들은 축사가 끝남과 동시에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