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2월/2월 22일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광고

산풀내음 2016. 12. 23. 19:42

18862 22,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광고

 

1886 2 22일 한성순보의 후신인 한성주보 제4 15, 16쪽 두 면에덕상(德商) 세창양행(世昌洋行) 고백(告白)’ 이라는 제목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광고가 등장했다. 24줄짜리 순 한문 광고였다.

 

 

광고주 세창양행(世昌洋行)은 독일 함부르크에 본사를 둔 무역상으로 홍콩을 중심으로 중국의 상해와 천진, 일본의 고베(神戶), 그리고 인천에 지점을 설립(1884)하고 동양 방면으로 무역업을 하고 있던 터였다. 광고는 쇠가죽, 호랑이가죽, 여우가죽 등과 사람 머리털, 호랑이 발톱 등을 사들이고 자명종 시계, 뮤직박스, 서양 천, 성냥 등을 판다는 내용을 실었다. 도안이나 사진은 없는 활자만으로 이루어진 광고였다. 제목덕상(德商) 세창양행(世昌洋行) 고백(告白)’ 에서 덕상은 독일 상인이라는 뜻이었고, 고백은 광고의 중국식 표현이었다.

 

세창양행은금계랍(키니네)’ 와 바늘로 인지도가 높은 회사였다. 키니네는 원래 말라리아 치료약이었지만 부인네들이 아기 젖을 뗄 때 애용됐고, ‘세창바늘은 끝이 쉽게 무뎌지거나 부러지지 않아 인기를 끌었다. 세창양행은 일제 초기까지 영을을 하다가 1914년 일본의 대독 선전포고로 서울의 총영사관과 함께 폐쇄됐다.

 

한편, 한성주보와 달리 1896년 창간된독립신문광고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고 정기적으로 광고를 게재한 첫 신문이다. 독립신문은 광고에 대한 계몽역할을 하고 현대적 의미의 광고단가를 정하기도 했다. 1899 6 1일자 국문판 독립신문을 보면 1 28행 기준, 40(1), 24(6개월), 5(1개월), 1 50(1), 50(1)으로 장기 게재시 요금을 우대해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파 광고는 신문 광고보다 한참 뒤인 1956 5 12(TV) 1959 4 15(라디로)에 각각 처음 시작됐다.

 

세창양행의 광고는 동년 7 5일자 제23호까지 약 6개월간에 걸쳐 게재됐고 한성주보는 개화문명에 앞장을 서서 그 사명을 다하다 누적된 적자운영을 감당하지 못하고 1888 7 7 2 6개월 만에 폐간됐다. 이후 1896년 서재필이독립신문을 창간한 뒤부터 광고가 정기적으로 게재되기 시작, 1910년 국권피탈 후부터 1920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 민간지가 발간될 때까지 10년간은 조선총독부의 기관지가 된 매일신보가 유일한 우리말 신문으로 광고매체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