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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신문 복간

산풀내음 2016. 12. 24. 23:43

19062 28,

황성신문 복간

 

한일합방전까지 민족의식의 고취와 문명개화의 선구자로서 지대한 공헌을 한 민족지 황성신문(皇城新聞) 1898 9 5일 남궁억, 나수연 등이 주축이 되어 창간됐다. 국한문혼용이라고 해도 거의 한자에 한글로 토를 단 정도의 한문위주의 문장으로 제작되어 독립신문이후 순한글로 제작되던 전통을 깨뜨려 한학자층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1904 2 24일 한일의정서의 조인내용을 게재했다가 외부의 게재금지명령으로 기사를 삭제당해 문제된 기사의 활자를 뒤집어 인쇄한 이른바 `벽돌신문` 발간한 일과 1905 11 20일자 `시일야방성대곡` 기사로 정간을 당하고, 사장 장지연을 비롯한 10여명의 직원이 체포된 사건으로 유명하다.

 

이후 1906 2 28일 복간되었으나 심한 경영난을 겪다가 1910년 한일합방이 강행되자 신문제호가 강제로 한성신문으로 바뀌어 8 30일자부터 9 14일까지 발행되다가 결국 문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