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5월/5월 8일

WHO, 천연두 완전 퇴치 선언

산풀내음 2017. 3. 22. 20:18

1980 5 8,

WHO, 천연두 완전 퇴치 선언

 

30대 이상 거의 모든 사람의 어깨에는 도톰한 주사 자국이 있다. 천연두 예방접종의 흔적이다. 천연두는 수천 년 동안 인류가 가장 두려워한 전염병 중 하나였다. 치사율이 30%에 이르는 데다 다행히 목숨을 건진다 해도 곰보 자국을 얼굴에 남기기 때문이다.

 

천연두의 공식 병명은 ‘두창(痘瘡)’이다. 민간에서는 ‘마마’ 또는 ‘손님’으로 불렸다. 질병에 마마라는 최상급 존칭을 붙인 것은 병을 옮기는 신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서다. ‘몹시 애를 먹다’라는 뜻의 단어로도 쓰이는 홍역은 ‘작은 손님’, 천연두는 ‘큰 손님’으로 불렸다. 조상들이 천연두를 얼마나 무서워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3100년 전의 이집트 왕인 람세스 5세의 미라 얼굴에 곰보 자국이 남아 있다. 16세기 초 남아메리카 아스테카 문명이 스페인 군대에 맥없이 무너진 것도 천연두 때문이었다. 천연두는 고대 로마에서 군대 내에 집단으로 창궐, 군인을 따라 수많은 도시를 황폐화시켰다. 1492년 신대륙 발견 후 아메리카 대륙에선 100만 명 이상이 천연두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잉카제국과 아즈텍 문명의 종말을 앞당긴 것도 유럽인이 묻혀온 천연두 바이러스 때문이었다.

 

18세기 초 영국 사회에서 빼어난 미모와 지성으로 이름을 날리던 메리 몬태규 부인의 얼굴을 곰보로 만든 장본인도 바로 천연두였다. 20세기 들어와서도 지난 1967년 전세계에서 1000만 명이 발병, 200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인류가 천연두에 제대로 맞선 것은 불과 200여 년 전부터다. 소의 피부병에 감염된 목동(牧童)은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한 영국인 의사 에드워드 제너가 1798년 소의 고름(우두·牛痘)을 사람에게 접종해 예방에 성공한 것. 예방약을 뜻하는 백신(vaccine)이라는 말도 암소를 의미하는 라틴어 ‘vacca’에서 유래했다.

 

Edward Jenner, 1749.5.17 ~ 1823.1.26

 

한국에서는 19세기 말 수신사 김홍집(金弘集)을 수행해 일본에 갔던 지석영(池錫永)이 치료법을 도입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1951 43000여 명의 환자가 발생해 11000여 명이 숨졌을 정도로 기승을 부리다 1960 3명의 환자를 끝으로 자취를 감췄다.

 

세계적으로는 1977년 아프리카에서 소수의 환자가 발견된 게 마지막이다. 세계보건기구(WHO) 1980 5 8일 천연두 완전 퇴치를 선언했다. 1980년 세계보건기구가 공식적으로 천연두 박멸을 선언하기까지, 전 세계적으로 5억여 명이 천연두로 인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고 인류가 천연두의 공포로부터 완전히 해방됐다고 단언하긴 이르다. 엉뚱하게도 천연두는 테러의 그림자 속에 똬리를 틀고 있다. 테러집단이 천연두 균을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정부가 천연두를 생물테러 병원체로 분류해 놓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 러시아 등은 WHO의 폐기 권고에도 불구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아직 실험실에 천연두 균을 보유하고 있다.

 

 

천연두 관련 호기심으로 배우는 역사

 

1774 4 27, 사냥을 나갔던 프랑스 왕 루이 15세는 극심한 피로와 두통을 호소했다. 인근 트리아농 궁에서 휴식을 취했지만 별 차도가 없었고…… 다음 날 고열과 함께 증세가 악화되자 주치의는 급히 환궁할 것을 권유했다.

큰 일이다. 폐하가 쓰러지셨어……”

뭐라고? 국왕 폐하께서 병환이라고?”

 

궁전의 모든 의사들이 전력을 다해 진료했지만 왕의 병세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는데……

5 3, 전신에 퍼진 붉은 반점을 바라보며 루이 15세는 차마 누구도 입에 올리지 못하던 말을 내뱉는다.

내 병은…… 천연두다……”

태자 전하, 비 전하, 어서 방을 나가십시오. 왕위 계승자에게 전염되면 큰일입니다. 국왕 폐하의 병환은 천연두입니다.”

 

그리고 1주일 뒤인 1774 5 10, 오후 3……마치 천둥과 같은 발소리가 베르사이유 궁전을 뒤흔든다.

왕이 서거하셨다!”
새로운 왕의 시대가 왔다!”
새 국왕 루이 16세 만세! 왕비 마마 만세!”

 

프랑스 왕 루이 15세가 천연두에 걸려 숨지자, 당시 19살이던 왕태자 루이 어귀스트와 18살 왕태자비 마리 앙트와네트가 프랑스의 새 국왕과 왕비로 즉위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린 나이에 즉위한 루이 16세는 자물쇠 만들기만 좋아했을 뿐 국정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왕비 마리 앙트와네트 역시 사치에만 열중해서 왕실의 재정은 파탄에 이른다. 분노한 민중은 삽과 쟁기를 들고 베르사이유 궁으로 몰려들었고, 결국 두 사람은 프랑스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만약 루이 15세가 천연두에 걸리지 않고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 루이 16세와 마리 앙트와네트가 좀 더 준비된 상태에서 권좌에 올랐더라면…… 부르봉 왕가와 프랑스의 운명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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