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6월/6월 16일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소떼와 함께 방북

산풀내음 2017. 5. 9. 08:16

1998 6 16,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소떼와 함께 방북

 

1989년 그는 북한을 방문했다. 1932년 아버지 소 판 돈을 들고 고향을 뛰쳐나온 이래 57년만의 귀향이었다. 휴전선 바로 이북, 북한의 최남단이라 할 전선 이북인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 아산리 고향을 방문했을 때는 추운 겨울이었다. 그러나 이미 경제적 침체기에 들어가던 북한의 강원도 오지의 사정은 좋지 않았다. 나일론 옷가지로 추위를 가리며 이빨을 부딪치던 친척들에게 옷가지를 내놓은 그는 고향과 이별하면서 숙모에게 와이셔츠 한 벌을 주고 온다. “깨끗하게 빨아서 저기 걸어둬요. 다음에 와서 입게.”

 

그리고 9년 후 그는 다시 고향을 찾는다. 1998 6 16일 북한에 제공할 소 1천마리중 1차분인 소 5백마리를 실은 트럭과 함께 판문점을 통해 방북했다. 정주영 회장은 이날 오후 개성을 거쳐 평양에 도착,78일간의 방북일정에 들어갔다. 분단 이후 민간차원의 합의를 통해 군사구역인 판문점을 개방, 민간인의 북한방문이 이뤄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정주영 회장은 새로 개통된 문산-판문점간 통일대교를 지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 도착,평화의 집에서 방북기자회견을 가진 뒤 판문점중립국감독위 회의실을 지나 도보로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정주영 회장 초청 단체인 북한 아태평화위 부위원장 송호경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판문점 북측지역 판문각에 나와 정회장을 영접했다. 4달 뒤 또다시 501마리의 소떼는 판문점을 넘었다. 이때 현대그룹은 소떼 방북에 트럭과 사료를 포함하여 41 7700만원의 비용을 부담했다.

 



 

정 회장은 1차 방북 때 8일 동안 북한에 머물면서 북측과 금강산 관광개발사업 추진 등에 합의했다. 2차 방북 직후엔 금강산 관광이 시작되어 1998 11 18 '금강호'가 첫 출항을 했다. 이후 2000 6월엔 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되었으며 같은 해 8월 남북은 개성공단 건립에 합의했다.

 

1998 6월은 대한민국이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시기였다. 외환위기와 함께 닻을 올린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재벌개혁을 요구했다. 그러자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은 사재 1000만 달러를 내놓겠다고 했고,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공들였던 삼성자동차 사업부분의 빅딜을 위해 사재 1조원을 내놓겠다고 했다. 그러나 현대 정주영 회장은 한동안 조용했다. 그렇게 조용히 칩거를 끝낸 정 회장은 북한에 소 1000 마리를 보내겠다고 발표했다. 소떼 방북 발표는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깜짝 카드였다.

 

소때와 함께 평양으로 향하는 날, 정 회장에게는 소 판 돈을 훔쳐 가출했던 소년 시절부터 해방과 분단, 전쟁과 재건, 민주화와 노동과의 대결 그 전 과정이 슬라이드처럼 흘러갔을 것이다. 기자들 앞에서 읽어내린 그의 소감문은 사뭇 감동적이다. "청운의 꿈을 안고 아버지 소를 판 돈 70원을 가지고 집을 나섰습니다. 이제 그때 그 소 1마리가 500마리의 소가 되어 지난 빚을 갚으러 꿈에도 그리던 산천을 찾아갑니다. 이번 방북이 단지 한 개인의 고향 방문을 넘어 남북이 같이 화해와 평화를 이루는 초석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무수한 플래시가 터져 나왔다. 텔레비전 방송 3사의 생중계로 정주영의 소떼 방북을 지켜보는 국민들은 누구는 인생유전을 누구는 통일에 대한 희망을 품었다. 영국 인디펜던트지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 ‘핑퐁 외교’가 있었다면 남한과 북한 사이엔 ‘황소 외교’가 있다"라고 평가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문명비평가 기소르망은 '20세기 마지막 전위예술'이라고까지 평가했다. 일명 '정주영 소떼 방북'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미국의 뉴스 전문 채널인 CNN을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주요 외신들도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 국가인 남북한이 최초로 휴전선을 열었다고 대서특필했다.

 

그는 이후로도 소 501 마리를 더 보냈다. 도합 1001마리. 1000 플러스 하나. 왜였을까? 그건 정주영의 다짐이었다. 딱 떨어지는 1천에 그치지 않고 또 하나의 시작을 의미하는 한 마리를 더 넣어 그 이후로도 계속 지원과 교류가 이어지리라는 다짐이었고 기원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일부러 임신한 소들을 집어넣었다고 하니 사실은 1001마리보다 더 많은 소들이 북한 땅에 갔던 셈이다.

 


 아산 정주영, 그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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