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6월/6월 17일

미국 미식축구선수 O.J.심슨, 전처 살해혐의로 체포

산풀내음 2017. 5. 9. 12:39

1994 6 17,

미국 미식축구선수 O.J.심슨, 전처 살해혐의로 체포

 

1994 6 13일 월요일 0 9. 로스엔젤리스에 최고급 주택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는 주택가 브렌트우드(Brentwood) 콘도미니엄에서 개가 요란하게 짖으며 이웃사람들의 잠을 깨고 있었다. 개 주인 스크루 보즈테페(Sukru Boztepe)가 밖으로 나와 개를 살펴 보았다. 평소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몹시 흥분해 있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보즈테페는 개가 이끄는 곳으로 달려갔다. 근처에 한 콘도미니엄 입구에서 개가 머물렀을 때 그는 너무나 참혹한 광경을 목격했다. 한 남자와 여성이 피가 낭자한 채 죽어 있었다. 특히 여자의 애인으로 보이는 이 남자는 온몸이 난자 당한 채 발견됐다. 수십 곳 이상 칼에 찔린 흔적이 있었다.

 



Nicole Brown, 35, was stabbed to death outside her Los Angeles home along with friend Ron Goldman who was returning a pair of sunglasses that she had left at the restaurant at which he worked.

 

너무 놀란 보즈테페는 아내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하며 911로 빨리 전화하라고 소리쳤다. 경찰이 달려와 현장을 통제했다. 살해된 여자는 당시 가장 유명한 풋볼 선수 오제이 심슨(Orenthal James “O. J.” Simpson, 1947-)의 전처인 니콜(Nicole Brown Simpson, 1959-1994). 남자는 당시 25세로 그녀의 애인 로널드 골드만(Ronald Goldman)으로 밝혀졌다. 세기의 사건인오제이 심슨 사건은 이렇게 시작됐다.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곧바로 니콜 브라운의 남편인 전설적 풋볼 스타 O J 심슨을 용의자로 지목했다. 의심을 품은 경찰 수사관들이 심슨의 집을 방문했지만 그는 집에 없었고 다음날 경찰에 출두해 업무차 시카고를 다녀왔다며 알리바이를 주장했다. 전처의 사망소식에 눈물까지 떨구던 심슨은 재출두를 약속한 뒤 풀려나왔고 이틀 후 2명의 자녀와 함께 전처 니콜의 장례식을 치렀다. 그사이 경찰은 그의 집에서 피 묻은 장갑과 스키마스크를 찾아냈다. 현장에서 채취한 심슨의 혈흔과 장갑에 묻은 피해자의 혈액이 일치했으니 거의 완벽한 물증을 확보한 것이다. 하지만 출두 예정일인 17, 심슨은 친구 앞으로 “나는 니콜의 죽음과 아무 관련이 없다”는 편지를 남긴 후 종적을 감춰버렸다. 경찰은 즉각 수배령을 내렸다.

 

장례식을 치르고 있는 O. J. Simpson

 

1994 6 17일 저녁, 미국의 방송사들은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속보를 통해 로스앤젤레스 고속도로를 비추기 시작했다. 화면에 잡힌 건 포드사의 흰색 브롱코 SUV차량과 그 뒤를 쫓는 십여 대의 경찰 순찰차였다. 전국의 국민들이 발길을 멈추고 TV앞에 몰려들었고 쫓고 쫓기는 추격전은 100km가 넘도록 계속됐다. 마침내 경찰차가 브롱코 앞길을 막아 도주로를 차단하자 차에 타고 있던 용의자는 권총을 꺼내 자신의 관자놀이를 겨냥하며 자살하겠다고 외쳐댔다. 숨가쁜 대치가 끝난 후, 경찰에 체포돼 차량에서 끌려 나온 검은 모습의 사내는 바로 미국의 전설적인 풋볼스타이자 영화배우로 활동하던 O.J. 심슨이었다.

 

O.J. 심슨은 미식축구 명문인 USC(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 입학하기 전부터 미식축구의 러닝백과 단거리 육상 선수로써 최고의 유망주로 손꼽혔고, 폭발적인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대학 최고의 선수에게 수여하는 하이즈만 트로피를 1968년 수상했고, NFL 버펄로 빌스,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에서 11년동안 뛰면서 1973 AP 선정 시즌 MVP에 뽑히는등 1970년대 최고의 러닝백이자 최고의 미식축구 슈퍼스타였다. 1970년대에는 마이클 조던이 부럽지 않았던 미국 최고의 스포츠 스타중 1명이다.

 



워낙 인기가 높았던데다 본인이 워낙 놀기 좋아하다보니 선수로 활동할때도 비시즌엔 배우로 TV나 영화에 출연했고, 1977년엔 아예 영화사를 차리고 자기가 직접 주연한 TV 영화까지 찍게된다. 70년대 영화 타워링이나 카산드라 크로싱에서는 소방관이라든지 수사관같은 정의로운 인물로 나와 영화상에서 많은 사람을 구하는 활약을 하기도 했다. 은퇴 후 1985 NFL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다.

 

심슨은 대학교 2학년때 이미 결혼해 3명의 아이를 두었는데, 이중 셋째딸이었던 아렌이 2살 생일때 자기 집 수영장에서 사고로 익사하는 불행이 찾아온다. 이 충격으로 심슨은 첫 부인과 이혼하게 되고, 나이트클럽 웨이트리스로 일하던 니콜 브라운과 만나 두번째 결혼을 하게 된다. 그리고 사건 당시에는 둘도 이혼한 상태이었다.

 

O.J. Simson과 니콜 브라운 그리고 전처의 아이들

 

1995 10 2일 오전 10, 미국민을 비롯한 전 세계의 관심 속에 세기의 재판이 열렸고 세시간의 의견 조율 끝에 배심원단은 판결문을 낭독했다.

O.J. 심슨 무죄!

 

살인사건 당시에는 심슨이 100% 유죄 판결을 받을 것으로 보였지만 심슨은 거액을 들여 변호인단을 고용했고 당시 심슨을 체포한 백인경찰이 내뱉은 말 "이 검둥이 새끼"로 인종 차별적인 살인죄 조작 전략을 구사해 승소했다. 수사 경찰은 백인우월주의자라며 갈등을 조장한 것이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언론에 매수당한 가짜 목격자가 나타났고 범행에 사용된 칼을 팔았다는 입증되지 않은 참고인 주장도 언론에 소개됐다. 재판은 혼란에 빠졌고 결국 배심원단은 심슨이 유죄라는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당시 흑인 9, 백인 2, 히스패닉계 1명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은 지루한 법정 공방 끝에 1995 10 2일 심슨에게 무죄 평결을 내렸다.

 

O.J. declared innocent court reaction

Different Reactions To O.J. Simpson Verdict Shows How Racist America Really Is

 

유죄를 확신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충격이었다. 미국사회는 흑백으로 양분됐고 배심원으로 대표되는 사법체계는 불신과 혼란에 휩싸였다. 그리고 ‘유전 무죄 무전 유죄’의 인식을 강하게 남겼다평결 발표 이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평결에 동의하는 반응은 33%, 동의할 수 없다는 반응은 56%로 나타났다.

 

하지만 니콜의 부모는 끝까지 심슨이 자기 딸을 죽인 범인이라고 주장했고, 심슨은 형사처벌은 면했지만 피해자 유가족들이 제기한 민사소송에서는 패해 배상금 850만달러와 함께 징벌적 배상금으로 2500만달러를 유가족에게 지급하라는 명령을 받고 파산했다.

 

알거지나 다름없이 된 그는 흥행을 노린 출판사의 제안을 받아들여 <내가 살인을 저질렀다면>이라는 책을 의뢰 받아 쓰기도 했다. 그의 전처와 애인을 마치 자신이 정말 죽인 것처럼 픽션을 만들어 보자는 출판사의 제의를 받아 들였다. 돈을 벌기 위해서다. 그러나 여론의 반대로 돈 벌 기회가 무산됐다.

 

그리고 그는 2008, 라스베이거스 호텔에서 발생한 무장강도 사건에 연루돼 33년 형을 선고 받고 현재까지 복역 중이다.

 

From left to right: OJ in 1995, OJ in 2008, OJ in 2013.

 

사건이 법률적으로 완전히 종결된 상황에서 심슨이 한 고백에 따르면, 당시 두 사람은 결별한 상황이었지만 심슨은 사건 당일인 1994 6 12일 레스토랑에서 전처 니콜과 말다툼을 벌였다. 말다툼을 벌인 이유는 전처 여배우 니콜이 자녀 앞에서 상습적으로 마약을 복용하고 자녀와 함께 사는 집에 남자를 끌어들이는 행동에 화가 난 것이었다. 집에 귀가한 후 분을 삭이지 못한 심슨은 니콜의 집으로 향했고, 초인종을 눌러도 이무런 대답이 없자 문을 두드리고 소리를 질렀다. 한동안 대답이 없던 니콜은 손에 식칼을 쥐고 나타났고 칼로 위협하며 심슨에게꺼지라고 폭언했다. 이에 격분한 심슨은칼을 빼앗아 찌르고 또 찔렀고 때마침 그녀의 애인이었던 론 골드먼이 들어오자 칼로 찔렀다. 정신 차리고 나니 후회가 밀려왔다. 그러나 이 또한 얼마나 진실인지는 자신만이 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