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6월/6월 20일

미국-소련 직통통신선(Washington-Moscow Hot Line) 개설 협정에 조인

산풀내음 2017. 5. 12. 20:37

1963 6 20,

미국-소련 직통통신선(Washington-Moscow Hot Line) 개설 협정에 조인

 

“민첩한 갈색 여우는 나태한 개 위로 점프했다 (The quick brown fox jumped over the lazy dogs back) 1234567890.
1963
8 30일 핫라인으로 소련정부에 보낸 미국정부의 메시지다. 기존 팬그램(A부터 Z까지 모든 알파벳이 포함된 문장)에 아라비아숫자와 아포스트로피()를 더해 만든 문구였다.

 

미국과 소련 양국이 1963 6 20일 워싱턴과 모스크바 간의 직통전신가설에 관한 협정에 조인했다. 이날 조인식에는 미국을 대표하는 찰스 스텔과 소련을 대표하는 세이몬 차라프킨이 각각 서명했다.

 

U.S. Ambassador Charles C. Stelle and Soviet negotiator Semyon K. Tsarapkin

 

계기가 됐던 것은 쿠바 사태였다. 소련이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설치하려고 하자 당시 케네디 대통령은 해상봉쇄 등의 조치를 취해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 벌어졌다. 결국 소련이 기지 설치를 철회함으로써 위기를 넘겼지만 3차 세계대전을 우려할 정도의 긴장감이 고조됐던 사건이었다. 미국과 소련은 이를 계기로 미, 소 정상이 긴급상황을 연락할 수 있는 핫라인을 개설하게 됐다. 이 핫라인은 당시 양국 정상이었던 케네디와 흐루시초프(영어표기의 경우)의 머릿글자를 따서 'KK 라인'이라고도 불렸다. 이것이 현재 보통명사화 되어 사용되고 있는 Hot Line의 기원이 된 셈이다.

 

 

직통전화의 연결방법은 특별 텔레타이프 선을 헬싱키 스톡홀름 런던을 경유하도록 가설하는 것이었다. 이후 8 30일 공식문서의 교환 대신에 미국이 시험적인 표준신호를 보내고 소련으로부터 같은 신호를 받음으로써 직통전화가 개설됐다. 이때부터 전화는 긴급 사태시 양국 정상들간의 메시지 교환을 위해 사용됐다. 개설된 직통전화는 국방성에 있는 기계장치들로부터 크레믈린궁에 있는 흐루시초프 서기장 사무실 근처의 통신실에 이르는 텔레타이프 통신선으로 구성됐다. 미국은 영문으로 전문을 보냈고 소련은 러시아어로 전문을 보냈다. 각 전문은 도청을 방지하기 위해 암호화됐다.

 

미·소 간 핫라인의 첫 공식 교신은 이른바 6일전쟁 때였다. 1967 6월 이스라엘은 아랍국가를 상대로 예방전쟁을 일으켰다. 정말 아랍국가들이 전쟁을 먼저 시작하려고 했는지는 여전히 논란 중이다. 하여튼 이 6일전쟁 때문에 소련 흑해함대와 미국 제6함대가 지중해로 출동했다. 이때 미·소 간 핫라인이 가동됐다. 소련 총리 알렉세이 코시긴은 미국대통령 린든 존슨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전투행위가 즉각 중지되도록 미, 소가 행동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6일전쟁은 더 이상 확전 없이 이름 그대로 6일 만에 종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