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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하원에서 ‘화이트워터’ 사건 청문회 시작

산풀내음 2017. 6. 17. 23:58

19947 26,

미국 하원에서 ‘화이트워터’ 사건 청문회 시작

 

클린턴 대통령의 아칸소 주지사 시절 부동산 투기 의혹 사건인 화이트워터 스캔들(Whitewater Scandal)에 대한 의회 청문회가 1994 726일 시작됐다. 하원 금융위원회가 26일과 28, 상원 금융위원회는 오는 29일과 내달 1일 각각 이틀간씩 청문회를 열어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의회 청문회는 첫날부터 증인 한 사람을 놓고 지루한 설전만 벌여 일반 국민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클린턴(Bill Clinton)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 부부는 1978 오랜 친구이자 정치적 후원자 맥두걸(Jim McDougal)과 수잔 맥두걸(Susan McDougal) 부부와 함께 북부 화이트워터 지역에 휴양 단지를 지으려는 사업을 시작했다. 이를 위해 1979 맥두걸 부부와 공동으로 화이트워터 부동산 개발회사를 세웠다. 당시 빌 클린턴은 1978 32세의 젊은 나이로 아칸소주 주지사로 선출되어 주지사인 상태이었다. 그러나 1980년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에게 패하여 낙선했다. 1982년 다시 주지사 선거에 도전하여 당선되었으며, 이후 1986년과 1990년 재선되어 1992년 대통령에 당선될 때까지 아칸소 주의 주지사를 연임했다.

 

1985 클린턴이 선거 운동에서 5만 달러라는 큰 빚을 지고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을 때 맥두걸은 클린턴에게 정치 자금을 모금하기도 했다. 이후로 맥두걸은 미 연방으로부터 많은 금액을 대출받았는데 이것이 주지사로 있던 클린턴의 직권 남용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여론에 휘말렸다. 공사는 클린턴이 주지사를 지낸 1980년대에 계속됐으나 1990년대 초 맥두걸의 지방은행이 파산하고 분양이 저조하면서 사업은 중단됐다. 클린턴 부부는 투자금 25천 달러를 손해보고 1992 손을 뗐다.

 

1992 대선 당시 뉴욕타임스가 이 문제에 대해 보도했으나 이때는 파장이 크지 않았다. 그러다 클린턴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5개월 후인 1993 6월 화이트워터 관련서류를 보관하던 힐러리의 동료 변호사 빈센트 포스터가 의문의 자살을 하고, 클린턴 부인 힐러리가 서류를 파기했다는 주장이 일면서 클린턴 부부를 청문회에까지 끌고 나오는 큰 사안으로 번졌다.

 

In April 1994, Hillary Clinton took questions from reporters for more than an hour as first lady. By that point, she had a reputation for not being particularly transparent and for not spending enough time addressing the national media.

The Whitewater controversy involved the real estate dealings of then-Arkansas Attorney General Bill Clinton, Hillary Clinton and their friends Jim and Susan McDougal. The four created the Whitewater Development Corp., a real estate venture for developing land in Arkansas, which subsequently failed. Criminal allegations were brought up over the loans, transactions, legal representation and deals made over Whitewater. While Bill and Hillary Clinton were never prosecuted, Jim and Susan McDougal were both sentenced to time in prison.

 

1994 1월 첫 번째 특별검사 로버트 피스크가 임명됐으며 일단 무죄로 결말이 났다. 그러나 1994 8케네스 스타로버트 피스크의 뒤를 이어 특별검사를 맡으면서 클린턴 부부를 궁지로 몰아갔고 클린턴의 성추문 조사를 벌였다.

 

클린턴이 재선에 성공한 1997 2월 화이트워터 사건의 핵심 인물로 기소된 맥두걸이 자신의 감형을 위해 화이트워터와 클린턴의 관계를 검찰에 진술한 사실이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불법 대출을 클린턴이 알고 있었다는 것. 그러나 맥두걸은 1998 8월 교도소에서 지병으로 사망하였다. 1999 10케네스 스타가 사임하고 로버트 레이가 특별검사직을 이어받아 수사를 지휘했다.

 

The Lewinsky scandal, involving the relationship between former White House staffer Monica Lewinsky and President Bill Clinton, was the most well-known of the controversies and scandals during the Clinton administration and eventually led to the impeachment of the president for having lied under oath. Although Clinton was impeached by the House on one count of perjury and another of obstruction of justice, the Senate acquitted him of both charges.

케네스 스타 특별검사

 

2000 9월 20 로버트 레이 특별검사는 클린턴 대통령과 부인 힐러리 여사가 아칸소주 화이트워터 부동산사기 사건에서 범죄행위를 저질렀음을 입증할 만한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고 ‘무혐의 처분’을 내림으로써 6년에 걸친 수사를 종결했다. 레이 검사는 이날 수사 결과를 요약한 6쪽짜리 성명을 통해 특별검사실이 클린턴 대통령 또는 힐러리 여사가 화이트워터 토지사기사건과 관련, 위증 또는 사법방해 등의 범죄를 저질렀는지를 조사했으나고의로 범죄행위에 가담했다는합리적인 의심이외에 배심에서 입증할 만한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2002 3 20일에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을 탄핵 위기로까지 몰아갔던 화이트워터 사건에 대한 최종 수사보고서가 나왔다. 로버트 레이 전 특별검사는 총 5권으로 2200쪽인 보고서를 공개하고 화이트워터 부동산 개발 사기사건에 클린턴 전 대통령 부부가 연루됐다는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종전의 발표를 재확인했다. 수사과정에서 부동산업자 12명이 기소되고 폴라 존스 성희롱 사건,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부적절한 관계’ 등 클린턴 대통령이 관련된 성추문들이 잇따라 터져 나왔다.

 

수사는 3명의 특별검사가 투입돼 6년여 동안 계속됐고 최종 보고서 작성까지 소요된 총비용이 7000만 달러에 달했다고 해서 특별검사제도의 효용성에 대한 논란이 그치지 않았다. 이날 보고서는 결국 쪽당 32000달러( 4200만원), 권당 평균 1400만 달러( 185억 원)짜리의 보고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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