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8월/8월 11일

美 와츠 흑인폭동

산풀내음 2017. 7. 6. 05:45

1965 8 11,

美 와츠 흑인폭동

 

1965 8 11일 미국 LA 인근 흑인 거주지 와츠(Watts)에서 폭동이 일어나 6일 동안 34명이 숨졌고 1,032명이 다쳤다. 주 방위군과 경찰에 체포된 흑인은 3,438명이었다. 인종차별을 금한 미국 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인권법인 신()공민법(1964 7)과 흑인투표법(1965 8)이 공포됐지만 오랫동안 쌓여온 흑백간의 갈등과 대립이 하루아침에 가실 리 없었다.

 

와츠 폭동(Watts Riots) 21살 흑인 청년의 음주운전에서 시작됐다. 그는 경찰의 정당한 단속에 적발됐고, 정당한 절차로 연행될 참이었다. 그 소식을 듣고 현장에 엄마가 달려 나왔다. 아들이 자신의 차를 몰래 몰고 나간 것도 모자라 음주까지 해서 적발된 데 격분한 엄마는 아들의 멱살을 쥐고 거친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한동안 참던 경찰이 끼어들어 아들을 경찰차에 태우려다 엄마를 밀쳤고, 가뜩이나 흥분한 엄마가 경찰에 덤벼들게 됐고, 웅성이던 흑인들이 동요하자 두려워진 한 경찰관이 권총을 뽑아 들었다. 증원 경찰이 도착하자 주민들은 경찰을 향해 돌과 병을 마구 던지기 시작하였다. 성난 군중의 분노가 폭동으로 변해갔다. 여기에 더하여 소문은 백인 경찰이 흑인 청년의 엄마를 모욕했고, 주변에 있던 임신부를 폭행한 것으로 퍼져나갔다. 그 결과가 6일간 계속된 와츠 폭동이었다.

 

와츠는 주민의 98%가 흑인이었다. 빈곤과 높은 실업률, 범죄가 만연한 지역이었다. 흑인 성인 2/3가 고등 교육을 받지 못했고 마약 중독률은 엄청난 수준으로 높았다. 1960년대 풍요로운 미국 사회에서 이곳 흑인들은 소외되어 있었다. 게다가 백인 일색의 경찰은 흑인 주민을 무시하고 통제하려고만 하였으며 섭씨 35도가 넘는 무더위 속에서 흑인들의 잠재된 불만이 결국 폭동으로 터져 나온 것이었다.

 

3000여명의 경찰이 동원돼 진압에 나섰지만 이미 거리는 약탈·방화·투석 등으로 무법천지였다. 14일에는 계엄령에 준한 `폭동사태선언`이 발표되고 14000명의 주() 방위군이 동원되고서야 17일에 겨우 폭동이 진압되었다.

 

이 후 흑인 폭동이 연이어 발생했다. 1966년부터 뉴욕, 필라델피아, 시카고, 디트로이트 등지에서 연거푸 폭동이 일어 났고 1968년 킹 목사가 암살당하자 전국 160여 도시에서 흑인들이 봉기하면서 폭동은 절정에 달했다.

 

시작은 소규모의 항의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