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9월/9월 26일

국산 유도탄 '백곰' 시험발사 성공

산풀내음 2016. 8. 28. 02:29

19789 26,

국산 유도탄 '백곰' 시험발사 성공

 

1971 12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극비 지시를 내린다. 박 대통령은 "단거리 미사일은 수입해서 쓰면 된다. 중·장거리를 개발하라"고도 지시했다.

1974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국산 유도탄 개발사업이 1978 9 26일 국산 중-장거리유도탄 '백곰'이 충남 서해안 안흥종합시험장에서 시험발사에 성공함으로써 그 결실을 맺었다.

 


최초의 국산 미사일인 '백곰' 지대지 미사일이 발사되는 순간을 바라보고 있는 박정희 대통령 (1978 9 26)

 



1970년대 우리 정부는 미국에 사정거리 120km의 랜스 지대지 미사일의 판매를 요청하였지만 미국 카터 행정부는 이를 거절한다. 이에 정부는 국방과학연구소(ADD)를 통하여 로켓 관련 연구개발을 진행시키는 한편 우리나라에서 운용 중인 나이키 허큘리스(Nike Hercules·NH) 미사일을 모방하는 방안을 모색했다. 이 나이키 허큘리스 미사일을 국산화하는 한편, 지대지 성능을 좀 더 개량하는 사업이 바로 백곰 미사일 개발 사업이었다.


 

백곰 미사일과 동일한 외형의 나이키 허큘리스 미사일

 

한편 미국은 한국의 미사일 개발도 반대했다. 핵탄두 운반체 역할을 할 수 있고 북한에 대한 선제 공격용 무기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하지만 미군 철수와 월남 패망 등으로 안보 위기감을 느낀 한국으로선 포기할 수 없는 카드였다.

 

한 동안 미국은 백곰 계획을 모를 정도로 극비로 진행되었지만 1977년에 이것이 문제로 대두되었다. 한국 정부는 미국이 나이키 미사일을 폐기하고 패트리어트 미사일로 대체하는 것을 알기에 나이키 마사일의 정비 유지와 성능개량을 위해 포기할 수 없다고 설득해 사거리 180km, 탄두중량 1000파운드로 제한하는 한미 미사일 사거리 지침 1979년에 체결하였다.

 

한국은 세계 7번째 미사일 보유국이 되었다. 외형은 미국 나이키 허큘리스(NH) 유도탄을 모방했지만, 소프트웨어, 유도조종장치 등 90% 이상 국산품으로 구성된 국산 유도탄이었다. 시험발사에 성공한 '백곰'은 사정거리가 180㎞로 유사시 군사분계선(MDL)에서 150㎞ 내에 있는 평양 타격이 가능했다.

 

이렇게 1979년에 미사일 사거리 지침 등으로 미국과의 문제도 해결되고 몇 차례의 발사시험도 성공하는 등 사업이 진척되어 갔으나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로 사업의 속도는 늦쳐졌고 결정적으로 전두환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백곰 사업은 완전히 취소되어 버렸고 관련 연구 인력은 대규모 해고를 당했다. 그래서 국산 유도탄 1 '백곰'은 실전에 제대로 배치되지 못했다.

 

그러나 1983년 아웅산 사건 이후 1984년부터 긴급히 현무 유도탄 개발 사업이 진행되었고 백곰의 기술은 현무 개발의 밑거름이 되었다. 그리고 '백곰'을 개량하여 우리 기술로 만든 '현무' 1980년대 후반 실전 배치되었다.



한국 최초의 미사일인 '백곰' 을 개량한 '현무' 지대지 미사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