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10월/10월 13일

69일간 매몰됐던 칠레 광부 33인 구조

산풀내음 2016. 10. 4. 22:10

201010 13,

69일간 매몰됐던 칠레 광부 33인 구조

 

8 5일 칠레 북부 코피아포시 인근 산호세 구리 광산이 무너졌다. 당시 사고로 지하 700m 갱도에서 작업 중이던 33명의 광부가 매몰됐다.

 

넓이가 고작 50㎡에 불과한 임시 대피소에는 물 20L, 우유 16L, 주스 18L, 복숭아 통조림 1, 완두콩 통조림 2, 연어 통조림 1, 참치 통조림 20, 강낭콩 통조림 4, 크래커 96통이 있었다. 광부 열 명이 마흔여덟 시간을 버틸 수 있는 식량이다.

타박상을 입거나 피가 난 사람은 더러 있었지만, 다행히 뼈가 부러진 사람은 없었다. 실종자도 없었다. 광부 중 가장 직급이 높은 십장 루이스 우르수아는 구조대가 올 테니 대피소에서 기다리자고 했으나 누구도 그의 뜻에 따를 리 없었다. 성난 말다툼이 이어졌다.

 

참치 한 스푼과 우유나 주스 반 잔, 크래커 한 개. 비록 빈약한 식사지만 33명 모두가 음식을 배급 받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동시에 허기를 달랬다. 그럼에도 남아 있는 식량은 빠르게 줄어갔다. 15일째 되던 날, 광부들은 마지막 음식을 함께했다. 여러 개의 드릴 소리는 끊이지 않고 들렸지만 갱도 안에서 발생하는 메아리와 청각적 착각 때문에 정확한 위치는 가늠할 수 없었다.

 

17째 되는 날인 8 22일 기적이 일어났다. “누군가 숟가락으로 드릴을 두드리는 것 같아.” 둔중한 금속 소리가 밑에서 연달아 들려왔다. 생존자의 신호가 틀림없었다. 얼마 뒤 드릴 비트가 완전히 지상으로 빠져 나오자 드릴 끝에 묶인 노란 비닐봉지가 눈에 띄었다. “33명 모두 잘 있어요라는 쪽지였다.


 

 

세바스티안 피녜라 당시 칠레 대통령이 칠레 코피아포 소형광산에 매몰된 광부가 "33명 모두 잘 있어요"라고 직접 쓴 쪽지를 들어보이고 있다. 생존 소식을 들은 광부 가족들이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으며,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생존을 기적이라고 말했다.

 

 

생존 확인 이후 지상과 연결된 지름 15㎝의 드릴 구멍을 통해 음식과 약품을 공급하고, 동영상 카메라도 내려 보내 그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당초 구조까지 3~4개월이 소요되어 2010년 크리스마스쯤에야 구조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구조용 터널을 뚫기 위해 공기압을 사용한 최신기계를 사용하고 특수강철로 만든 구조용 캡슐을 통해 구조일자를 2개월 이상 단축하였다.


칠레 매몰 광부 구조 캡슐

 

2010 10 12일 오후 11 15분 구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피녜라 대통령의 구조 개시 선포 이후 1시간이 안된 매몰 69일 만인 13일 새벽 0 11, 플로렌시오 아발로스(31. 매몰 당시 부조장)의 첫 생환을 시작으로 오후 9 56(현지시각) 루이스 우르수아(매몰 당시 작업조장)이 구조되면서 구조작전이 공식적으로 종료되었다. 결국 모두 구출되는 인간 승리의 드라마로 막을 내렸다. 33명의 광부들은 똘똘 뭉쳐 갱도 생활을 버텨냈고 69일 만인 10 13일 무사히 구조됐다. 이들의 생환 소식은 세계를 열광시켰다.

 

한편, 68일의 지하생활은 여러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맨마지막 구출자로 알려진 작업반장 루이스 우르주아는 특히 빛나는 리더십으로 이번 구조 작업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오랜 지하생활에서 올 수 있는 혼란과 분열을 극복하기 위해 조직 규율을 만들었다고 전해졌다. 적은 양의 음식을 배분하기도 하고, 지상에서 음식이 공수될 때 배탈을 염려해 폭식을 자제시키기도 했다. 지하에서 작업공간과 취침공간, 위생공간 등으로 나눠 광부들이 규칙적인 생활을 하게 하고 건강을 유지시킨 것도 그였다. 그의 리더십은 지상으로 알려지면서 칠레의 국민 영웅으로 떠올랐다.


첫 번째 구출자인 플로랜시오 아발로스는 지하생활을 카메라로 찍어 칠레 국민들에게 희망을 전해주는 '갱도의 카메라맨' 역할을 맡았다. 광부 33인 중 최고령을 알려진 마리오 고메스(63)는 동료들을 달래고 예배당을 마련하는 등 최고 연장자로서 동료를 위로했다. 요니 바르리오스(50)는 간호학을 공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광부들의 건강을 체크했고, 당뇨병을 앓던 호세 오헤다와 고혈압 치료를 받던 호르제 갈레킬로스를 치료하기도 했다.



 

 

하지만 구조 후 칠레 광부 33인이 마주한 현실은해피엔딩과는 거리가 멀다. 영국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2011년 사고 구조 1주년을 앞두고구출된 광부 33명이 생활고, 후유증, 법정소송이라는 3중고에 시달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33명 가운데 18명이 일자리를 찾지 못해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으며 광산 복귀를 희망하고 있다고 전했다. 생환 직후 반짝 쏟아지던 관심은 사그라졌고 생활고가 찾아온 것이다.

 

또한 언론을 통해 이들이 갇혀있는 동안 뜨거운 전우애로 뭉친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드러났다. 세 파벌로 나뉜 대립이 있었고 주먹다짐도 벌였다는 불편한 폭로도 이어졌다. 3명은 불치병인 규폐증 진단을 받았고, 다른 11명도 건강상 문제로 은퇴 신청을 냈다. 또 다른 한 명은 정신 이상 행동을 보이면서 코카인에 손을 대기도 했다.

무엇보다 씁쓸한 것은 광산 붕괴 사건이 책임자 처벌 없이 종결된 것이다. 칠레 검찰은 2013 8 3년여 수사 끝에 사건 관련자를 모두 불기소 처리했다. "처벌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호세 광산 지하 갱도에 광부 33명이 갇힌 지 2주년이 되는 날인 2012 8 5(현지시간). 이날을 기리며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가운데)이 코피아포시 교외의 기념비를 찾아 생환 주인공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기념비에 5m 높이의 십자가가 추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