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10월/10월 21일

성수대교 붕괴

산풀내음 2016. 10. 8. 18:19

199410 21성수대교 붕괴

 

1994 10 21일 금요일 아침 7 38분 성수대교가 붕괴됐다. 출근길 차량들로 붐비는 금요일 아침, 성수대교 10번과 11번 교각을 잇는 상판 48m가 “꽝” 소리와 함께 북쪽 상판 이음새가 먼저 끊어지고 이어 남쪽 상판이 떨어져 나갔다. 버스와 승용차 6대가 상판과 함께 강물로 추락하고 북쪽으로 달리던 16번 시내버스는 끊긴 다리 끝부분에 뒷바퀴가 걸리면서 한 바퀴 빙글 돌아 뒤집히면서 상판 위로 떨어졌다.

 


 

이날 사고로 버스에 타고 있던 무학여중고생 9명을 포함, 모두 32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부상했다.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사고가 발생하자 이영덕 국무총리는 사표를 냈고, 이원종 서울시장은 경질됐다. 그리고 사흘 뒤인 10 24일 김영삼 대통령은 특별담화문을 발표하고 국민들에게 사과했다.

 

성수대교는 1977 4월 착공해 1979 10 19일에 개통된 한강을 가로지르는11번째 교량으로, 당시까지 기능 위주로만 따져 만들던 다리에 대해 미적인 기준을 추가시키는 등 새로운 시도를 했던 건축물이었다. 그래서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정희 대통령이 개통식에 참석하는 등 사회적으로 많은 이목을 끌었다.

 

 

1977년 건설 중인 성수대교

 

성수대교는 하늘색을 색상으로 채택하고 트러스(Gerber Truss)식이라는 새로운 공법을 채택함으로 빼어난 미관을 자랑하며 한강의 새로운 자랑거리로 떠올랐다. 그러나 트러스식 공법은 이음새가 잘못되면 무너지기 쉬운 공법이다. 미관을 추구하기 위해서 기둥 사이 거리를 120m나 떨어뜨려 놓았는데 힘이 집중되는 부분의 핀은 지속적인 피로누적과 다리 위를 지나는 차들의 진동을 고스란히 받게 된다특히 통행 허용한도인 총 중량은 32t 정도였는데 40t이 넘어가는 차들도 다리 위를 씽씽 달리면서 하중이 더해졌다.

 

군사작전을 펼치듯 완공기한을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강행한 공사도 사고를 부추긴 원인이었다. 게다가 미래의 교통수요를 적절히 예상하지도 못했다특히 1993년 도에 동부간선도로의 새로운 개통으로 교통량은 폭증했으나 서울시에서는 설마 다리가 무너지겠냐는 생각을 가졌는지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않았었다.

 

사고 후 기존 성수대교를 보수해 사용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정부는 완전 철거하고 새로운 다리를 건설키로 했다. 현대건설이 시공사로 참여한 재건 공사는 1995 4 26일 착공해 1997 7 3일 완공됐다. 총 공사비는 780억 원으로 처음 건설했을 때의 공사비(116억 원)보다 약 6.7배 많은 비용이 들어갔다.


새롭게 개통한 성수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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