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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친위대(SS)’ 탄생

산풀내음 2016. 10. 13. 20:47

192511 9,

히틀러 ‘친위대(SS)’ 탄생

 

2차 세계대전 당시 보통의 군사편제와 달리 나치독일은 육ㆍ해ㆍ공군 외에 나치 친위대(SS, SchutzStaffel)라는 편제를 독립적으로 운용 하였다. SS는 원래 나치당의 전위조직이자 정치 깡패 조직이었던 나치 돌격대 (SA, Sturmabteilung) 의 산하 군소조직 중 하나 히틀러의 개인 경호를 위해 1925 11 9 290명이라는 소규모로 탄생했다. SS의 책임자는 광적인 인종주의자인 하인리히 히믈러(Heinrich Luitpold Himmler, 1900 10월 7 ~ 1945 5월 23)였고, 대원들은 독특한 휘장을 단 검은 제복을 착용했다. 활동은 국내외 정보수집, 첩보활동, 경찰업무 등이었다.

 

SA의 수장인 에른스트 룀(Ernst Julius Röhm, 1887 11월 28 - 1934 7월 2)이라는 애초 군소 정당에 불과 했던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당(NSDAP)을 원내 정당으로 만들기 위해 납치, 감금, 협박, 폭행 등의 온갖 수단을 동원하였다. 날이 갈수록 이 정당의 세력은 커져 히틀러가 집권한 직후에는 전국에 400만 명의 대원을 거느린 거대한 조직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치당이 집권하자마자 에른스트 룀은 자신의 공을 떠벌렸고 결국 히틀러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Nürnberg, Reichsparteitag 1933. Adolf Hitler und Stabschef Röhm.(SA수장)

Hitler and Hermann Göring with SA stormtroopers at Nuremberg in 1928.

 

마침내 히틀러는 SS의 총 책임자 하인리히 히믈러를 시켜 룀을 제거할 계획을 세우게 된다. 마침내 1934 6 30일 히틀러가 회의를 핑계로 룀을 비롯한 SA의 주요 간부들을 초청한 뒤 그들을 전원 체포하여 교도소에 수감시켜 버린다. 훗날 ‘장검(長劍)의 밤’으로 불리는 이 사건을 통해 히틀러는 룀을 비롯한 주요 간부들에게 당시 나치정권에서 불법으로 규정되었던 동성애 및 국가전복기도혐의를 적용 하여 재판도 없이 총살형에 처했다.

이를 시작으로 100여명에 가까운 SA의 간부급 지도자를 잇따라 처형하며 400만에 가까운 숫자를 자랑하던 SA를 사실상 공중분해 시켜버린다. SA가 와해 되자 하인리히 히믈러를 수반으로 하는 SS는 히틀러의 경호업무 및 나치당의 전위대 역할을 넘어서 제 4의 군사조직으로 커나가기 시작했다.

 

하인리히 히믈러, 나치 강제수용소와 학살대인 SS를 창설한 사람이자, 최종 지휘 책임자로서, 600만에서 1200만에 이르는 사람들을 산업적 규모로 학살한 것에 대한 책임이 있다. 이 학살은 특별히 유대인을 목표로 한 것이었고, 그와 그의 부하들이 고안해낸 것 중에 "Sonderbehandlung", , "특별대우" SS식 완곡어법으로 가스실 살인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연합군에 의해 주요 전범으로 체포되자 자살하였다.

 

하지만 당시 독일 국방군은 과거 프리드리히 대왕 시절부터 강군으로 이름 높았던 프로이센군의 혈통을 이어받았다는 자부심이 강한 집단이어서 SS에 대해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따라서 히믈러는 SS사관학교를 설립하는 등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단순한 나치의 전위대가 아닌 나치의 최정예부대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히틀러의 전폭적인 지지 하에 세를 불려가던 SS는 마침내 전투부대인 SS-VT (SchutzStaffe-Vererfugungstruppen)를 창설 하면서 본격적인 군사조직으로 재편을 마치고 1939 9월 폴란드 전역에 전개 되면서 최초로 일반육군처럼 전투를 경험하게 된다.

 

1940년 전개된 프랑스 전에서 독일군은 이른바 ‘전격전(Blitz Krieg)’으로 불리는 공지(空地)합동기동전술을 활용하여 단 7주 만에 프랑스를 굴복시킨다. 이후 제국의회에서의 연설에서 히틀러가 공개적으로 무장친위대 (Waffen-SS)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이들의 공을 치하하였고 이때를 기점으로 기존의 SS Allgemeine SS (일반 친위대), 전투를 담당하는 SS Waffen-SS (무장 친위대)라고 불리게 되면서 무장친위대는 명실상부한 나치독일의 일익을 담당하는 군사조직으로 거듭나게 된다.

 

290명으로 시작한 SS는 나치 집권 당시에는 5만 명이 넘는 규모로 확대됐고, 1939년에는 25만 명으로 증가했다. 인간의 고통에 대해서 무감각해지고 타 인종을 증오하도록 세뇌 받은 SS대원들은 2차 대전에서 거리낌 없이 유대인, 정치범, 집시, 소련 전쟁포로, 폴란드 지도자 등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들은 2차 대전 패배 후, 전범을 재판하는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범죄단체로 낙인 찍혔다.

 


Schutzstaffel (SS) Emblem

1938, 클라겐푸르트에 도착한 아돌프 히틀러. 하인리히 힘러는 히틀러의 오른쪽 약간 뒤에 서서 친위대를 지도하고 있다.


Waffen SS Snip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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