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11월/11월 13일

소형군용차 지프 개발

산풀내음 2016. 10. 14. 23:16

1941 11 13,

소형군용차 지프 개발



 

2차 세계대전 당시 아돌프 히틀러는 폭스바겐을 야전 지휘용 군용차로 사용하기 위해 VW을 탄생시킨 포르쉐에게 전지형 군용차로 개조할 것을 지시했다. 그리하여 뒷바퀴 굴림의 폭스바겐을 4WD로 개조하여 야전용으로 사용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독일형 4WD의 시초다. 딱정벌레 같이 생긴 차체는 그대로 두고 구동장치만 4WD로 바꾼 후 야전용 타이어를 끼워 전장으로 내보낸 것이다.

전장에 투입된 폭스바겐은 사병들이 운전 교육을 받지 않아도 되는 데다 공랭식 엔진을 얹어 추운 러시아나 물이 귀한 아프리카 사막에서도 고장을 일으키지 않아 전장에서는 안성맞춤이었다.


 

지프를 탄생시키게 한 독일군의 전투 차량 Mercedes Benz G5

 

독일군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보다 뛰어난 소형 군용차 개발을 페르난드 포르쉐 박사에게 지시했다. 그리하여 1939년 말 상자형 차체를 얹은 4인승퀴벨바겐(Kübelwagen)’이 개발되어 군에 납품된다. 그러나 힘이 약하고 볼품없이 생긴 데다 뒤에 얹혀진 공랭식 엔진의 진가를 알지 못한 군은 그 자리에서 퇴짜를 놓고 만다.

 

이때 사막의 여우라는 별명을 가진 롬멜 장군이 퀴벨바겐을 보고 즉석에서 시운전해본 후 사막에서 이보다 이상적인 소형 기동장비는 없다고 판단, 이집트 침공을 위해 1천대를 만들어주면 히틀러의 허락을 얻어주겠다고 약속했다. 포르쉐 박사는 우선 롬멜의 주문을 충당하기 전에 시험 삼아 러시아 전선으로 100대를 투입하여 테스트했다. 이곳에서 퀴벨바겐은 그 진가를 발휘, 1940년 봄부터 생산에 들어갔다.

 

독일의 퀴벨바겐

 

2차 세계대전 초 미국과 연합군은 독일의 월등한 기동력의 원천인 네 바퀴 구동차량에 대응할 4륜 구동차 개발에 전력을 다했다. 1940년 초 나치 동맹군이 유럽 및 북아프리카에서 승리를 거듭하게 되자 이러한 차량에 대한 필요성은 배가되었다.

 

미육군성은 국내 자동차 메이커에 그때까지 정찰이나 연락에 이용되고 있던 사이드카가 달린 삼륜차 대신 새로운 소형차 개발을 의뢰했다. 1939년 밴텀은 첫 설계도를 가지고 상담에 임했으나 채택되지 않았다. 밴텀이 미 육군과 교섭 중일 때 지프라는 이름으로 유명해진 자동차 메이커 윌리스 오버랜드사는 연구개발을 시작해 12월 모기라는 이름의모스키토를 완성했다. 모스키토는 작고 가벼워 기동성이 좋고 무기를 실을 수 있는 것이 장점이었다. 이 차는 군의 흥미를 끌긴 했지만 선택되지는 않았다.

 

1940 7월 군은 당시 미국 내 모든 자동차 메이커에 입찰참여를 요청했다. 당시 미 육군이 희망하던 차의 제원은 무게 약 1,300파운드( 589kg. 이것은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판단되어 후에 2,160파운드로 상향 조정됨), 4바퀴 굴림, 적재중량 390kg로 휠 베이스 2,032mm, 트레드 1,194mm 이내, 또한 엔진의 오버 히팅이 없이 낮은 스피드를 유지하기에 충분한 쿨링 시스템, 최저 지상고 6.25인치의 차였다. 입찰조건도 49일 안에 시작 차 40대를 내놓고 75일만에 70대를 납품해야 한다는 것이다.

 

밴텀사의 첫 번째 시작 차는 49일의 납기일자 이전인 1940 9 21일에 완성되어 시운전을 치렀다. 그 모양은 그릴을 제외하면 오늘날의 지프와 거의 흡사했다. 미 육군은 밴텀의 시작 차 플리츠 버기로 250마일의 비포장 도로 및 3,400마일의 내구성 테스트를 거쳤다. 심사관들은이 차는 서비스에 필요한 모든 요구사항과 충분한 파워를 증명했다고 결론지었다. 블리츠 버기는 민첩성과 내구력, 컴팩트한 보디 등으로 경쟁사들을 놀라게 했다.

 

미 육군은 궁극적으로 윌리스사와 포드사도 밴텀사의 계획을 이용한 모델을 제출토록 했고, 여기에 그들 고유의 변경 및 개량사양을 덧붙였다. 밴텀의 시작 차에 자극을 받은 윌리스 오버랜드사는 11월 시작 차 쿼드(Quad) 2대를 내놓았다. 2WD에서 4WD의 변환장치를 갖추었고, 그 중 하나는 4WS 장치를 더한 쿼드는 1,087kg의 무게에 최대토크 13.9kg.m를 자랑했다.

 

결국 쿼드를 베이스로 밴텀과 포드의 차의 장점을 살려 표준 모델을 만들기로 했고 1941 7월 하루 생산 125, 합계 16천대의 계약 입찰에서 윌리스 오버랜드사가 낙찰되었고, 11 13일 윌리스 오버랜드사가 최초의 지프 모델인 `MB(Military B)`가 생산됐다.

윌리스 오버랜드는 MA 모델로 시작해 1941년 말부터 MB 모델로 개발한 다목적 군용차 지프는 사람들 사이에 그 이름이 널리 알려졌고, Jeep라는 이름 또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A covered Willys MB/Ford GPW at the Wings over Wine Country 2007 air show at the Charles M. Schulz - Sonoma County Airport in Sonoma County, California.

 

포드사도 군의 요청에 따라 다용도란 뜻의 GPW(General Purpose Willys)라 이름을 바꿔 제작에 참여했는데, 지프(Jeep)는 이것의 앞 글자 GP를 따서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또 한편으로는 인기 만화 뽀빠이에 나오는 강아지가 `jeeep`라고 우는 것에서 유래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아무튼 지프는 부상자의 수송용, 정찰용, 픽업, 트럭, 기관총 발사대와 탄약 운반용 등 대활약을 펼쳤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윌리스 오버랜드는 지프를 민간용 차로 개조해 시장에 내놓았다. ‘윌리스 지프는 해가 지지 않는다라는 슬로건으로 생산된 지프는 1944년 시민차(Civilian Jeep. first model of the Army)란 이름의 CJ-1A에서 발전을 이룩한 모델이다.

 

1945 8월 최초의 민간용 지프 CJ 2A가 발표되었다. 이 차는 테일게이트, 오토매틱 와이퍼, 연료 주입구 잠금 장치 등 편의장치를 한 단계 더한 모델이다. 이듬해 자동차업계 최초로 스틸 스테이션 왜건과 승용겸 화물용 밴이 발표되었다.

 

 The Ford Pygmy at the U.S. Veterans Memorial Muse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