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11월/11월 13일

미국, 공공버스 인종차별 위헌 판결문장의 구성

산풀내음 2016. 10. 14. 23:39

1956 11 13,

미국, 공공버스 인종차별 위헌 판결



1955 12 1일 오후 6시경, 마흔 두 살의 봉제공 로자 파크스 (Rosa Parks)는 알라배마 주 몽고메리(Montgomery)의 중심가인 클리블랜드(Cleveland)가에서 버스에 올라탔다. 당시 몽고메리의 법률에 의하면, 버스는 백인은 앞좌석, 흑인은 뒷좌석으로 구별되어야 했다. 자리의 구분은 고정되어 있지 않았다. 백인들이 많이 타면 구분선은 뒤로 옮겨졌다. 백인들이 타고 남은 자리가 흑인들의 자리였다.

 

 

로자 파크스는 원래 구분선 뒤 흑인들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러나 그 뒤로 백인들이 많이 타서 백인들의 자리가 모자라게 되자 운전수가 구분선을 뒤로 옮기고 로자를 포함한 4명의 흑인들에게 자리를 옮길 것을 요구했다. 다른 세 명은 뒤로 옮겨갔지만 로자는 옮기지 않았다. 운전수가 “왜 일어서지 않느냐”고 묻자 그녀는 “일어서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시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하자 “그러시라”고 맞섰다.

 

 

실랑이를 벌이는 와중에 그녀는 구타까지 당했지만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았다. 당시 미국 남부에는 버스 등 공공장소에서 흑백 인종이 함께 있지 못한다는 '짐 크로(Jim Crow)'법이 일반적이었고, 이에 버스기사는 경찰을 불렀고 그녀는 "운전기사가 승객 자리를 지시할 수 있다"는 시() 조례를 위반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그녀는 훗날 “나는 내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그리고 알라배마 주 몽고메리 시의 시민으로서 도대체 어떤 권리를 갖고 있는지 알아야만 했다”고 회고했다.

 

 

한해 전 “분리된 시설은 본질적으로 불평등하다”며 공립학교에서의 인종분리를 금지시킨 미 연방대법원의 판결을 기억하고 있는 흑인들은 재판 날인 12 5일부터 시내버스를 보이콧했다. 파크스는 12 5일 재판에서 14달러의 벌금을 내고 구금형을 선고 받았지만, 당시 버스 보이콧에 참여한 흑인들의 비율이 거의 100%에 달하자 이에 고무된 흑인들은 26세의 킹 목사를 몽고메리개선연합의 대표자로 선출하고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보이콧을 계속하기로 했다. 그 유명한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The Montgomery Bus Boycott) 운동이 그것이다.

381일 동안 계속된 이 운동에 참여한 사람만 3만 여명이었다. 당시 몽고메리 시의 버스 승객의 70%는 흑인들이었고, 그리하여 버스 안타기 운동이 시작된 지 한 달 만에 버스 회사들은 적자에 시달리게 되었다.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이후 마틴 루터 킹 목사와 함께 한 로자 파크스

 

파크스 부인은 몽고메리 지방법원에 항소를 제기했고 여기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하지만 버스 수입이 65%나 떨어지고 장기화된 시위로 피해를 입은 몽고메리 시()는 킹 목사 일행을 제소해 1심에서 유죄를 끌어냈다. 죄목은 보이콧을 금지하고 있는, 1921년에 제정된 반노동법의 위반이었다. 킹은 즉각 항소했다.

 

11 13일 법정에 들어선 킹은 낙담했다. 1년 전 파크스 부인에게 유죄를 선고했던 그 판사가 눈에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킹의 얼굴에는 곧 희망의 빛이 넘쳤다. 조금 전 ‘공공버스에서의 인종차별은 위헌’이라는 연방 대법원의 판결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평등, 그러나 분리’라는 ‘짐 크로우 규정’(The Jim Crow Rules)을 깬 것이다.

이후 계속된 인권 운동으로 1964년 공공장소에서의 인종 차별을 금지하는 '민권법(Civil Rights Act)' 제정으로 이어졌고, 파크스 여사는 '미국 인권운동의 어머니'로 여겨졌다.

 

The Rev. Martin Luther King Jr. is welcomed with a kiss by his wife Coretta after leaving court in Montgomery, Ala., in this March 22, 1956, file photo. King was found guilty of conspiracy to boycott city buses in a campaign to desegregate the bus system, but a judge suspended his $500 fine pending appeal.

 그리고 이후 이렇게 바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