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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아시아 가네포 개막

산풀내음 2016. 10. 19. 22:22

1966 11 25,

1회 아시아 가네포 개막

 

1966 11 25일부터 12 6일까지 제1회 아시아 신생국경기대회(1st Asian GANEFO or 2nd GANEFO, Game of New Emerging Force)가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렸다. '미 제국주의 및 그 추종자들과 투쟁하는 모든 나라간의 우호와 단결을 과시하기 위한 게임'이라는 표어를 내걸고 열린 이 대회는 반서방, 반제국주의를 표방했다. 아시아 17개국에서 2000명이 넘는 선수들이 참가했다. 성적은 중국, 북한, 캄보디아 순이었다.


 

1966년 가네포 (공식적으로는 제1회 대회)

 

한편 3일 후인 11 28일에는 태국의 방콕에서 아시안 게임이 개최되었다. 18개국에 1945명이 참가하여 규모는 막상막하였다. 일본이 압도적인 1위를 지켰고, 한국과 타이가 뒤를 이었다.

 

가네포가 만들어진 계기는 1962 8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제4회 아시아경기대회였다. 당시 주최 측 인도네시아는 중화민국(타이완)과 이스라엘 선수들의 비자 발급을 거부한 것이다. 당시 인도네시아는 '하나의 중국' 정책에 의거하여 중화인민공화국을 편들었다. 또 한편 세계 최대의 이슬람 국가답게 아랍 국가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던 인도네시아는 이스라엘을 거부한 것이었다. 이에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인도네시아의 '정치적 행위'를 질타하며 회원국 자격을 정지시킨다.

그런데 인도네시아의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는 이에 더하여 아예 IOC를 탈퇴하는 강수를 두었다.

 

아랍 국가들과 중국의 압력으로 이스라엘과 대만 선수단의 입국 비자를 거부했는데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이에 대응해 인도네시아의 회원국 자격을 박탈했다. 내친 김에 IOC 구성 자체가 불평등함을 역설했다. 당시 70명의 IOC 위원 가운데 아시아·아프리카 출신은 11명에 그쳤다. 그래서 새로운 스포츠 대회의 조직을 주창한다. 이번 기회에 '제국주의의 도구' IOC와 올림픽을 대체하자는 것이다.

 

당시 아시아, 아프리카(AA) 신흥 독립국들의 반둥회의의 개최국인 인도네시아는 AA회원국 중심의 국제대회를 주창하게 되었다. 신생 국가들과 사회주의 국가들이 의기투합하여 올림픽의 위세를 넘보려던 것이다. 가네포가 발진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1963 11 10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가네포가 개막됐다. 이 날은 인도네시아 독립운동사의 기념비적 전투를 기리는 '영웅절(Hari Pahlawan)'이었다. 대회의 배후에는 중국이 있었다. 대회에 소요된 금액의 3분의 1을 지원했다. 교통비도 충당했다.

 


1963년 가네포에서 개회 선언을 하는 인도네시아 수카르노(Sukarno)

1963년 가네포

 

하지만 IOC가 가네포 대회 참가국에게는 1964년 도쿄올림픽 참가를 불허한다고 경고한 탓에 첫 가네포는 국가간 경기가 아닌 개인간 경기로 진행됐다. 대회는 22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중국이 일방적인 독주를 했으나 400m 800m에서 세계신기록을 수립한 북한의 신금단에게도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이듬해 중국은 도쿄 올림픽에 불참했지만 북한과 인도네시아는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IOC가 참가불허 방침을 굽히지 않자 결국 두 국가는 참가를 거부하고 선수단을 철수시켰다.

 

그 후 가네포가 재기를 시도한 것이 제1회 아시아 가네포였다. 1970년 제2회 아시아 가네포는 북한에서 열릴 예정이었지만 수카르노가 실각하면서 대회는 유명무실해졌고 결국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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