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1월/1월 12일

애치슨 미 국무장관, `애치슨 라인` 발표

산풀내음 2016. 11. 22. 20:41

19501 12,

애치슨 미 국무장관, `애치슨 라인` 발표

 

1949 9월 소련이 원폭 실험에 성공함으로써 미국의 원자무기 독점시대가 끝났고, 10월에는 중국이 공산화됨에 따라 냉전은 더욱 골이 깊어졌다.

 

2차 세계대전 전후 외교문제를 책임진 미국 국무장관 딘 애치슨(Dean Gooderham Acheson, 1893 4 11 - 1971 10 12) 1950 112일 워싱턴 내셔널클럽에서 열린 ‘아시아의 위기’라는 연설에서 “한반도와 대만을 제외하고 일본을 포함한 알류산 열도로부터 필리핀까지가 미국의 방위선”이라는 일명 ‘애치슨 라인(Acheson line)을 처음 언급한다구체적으로는 스탈린과 모택동의 영토적 야심을 저지하기 위해 태평양에서의 미국의 방위선을 알류샨 열도-일본-오키나와-필리핀을 연결하는 선으로 정한다고 발표했다.

 

 

그는 나아가 “이 방위선 밖은 자위(自衛)와 유엔에 의존해야 할 것”이라고 밝히며, 미국의 의무에는 한계가 있음을 강조했다. 요컨대 이 방위선 밖의 한국, 대만의 안보는 국제연합의 책임 아래 둘 뿐 미국이 직접 개입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애치슨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빠르게 퍼지던 공산주의를 막고자 소련에 대해 강경한 정책을 취했다. 그는 특히 유럽문제에 관심이 많았지만 1949년 대한민국 조병옥 선생을 만나는 등 동아시아 정세에도 많은 관심을 나타낸 인물이었다그는 애치슨 선언 외에도 서유럽을 공산주의로부터 보호하고자 북대서양조약 주도는 물론 미국과 필리핀 상호방위조약, 대일강화조약까지 맺으며 태평양에서도 공산주의와 대적하고자 외교 분야에서 발 빠르게 움직였다.

 

연설을 접한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 정부에 선언 취소를 강력 요구했지만 미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흔히 `애치슨 라인`이라 불리는 이 동아시아 방위선 설정으로 애치슨은 6.25를 발발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애치슨이 급하게 이러한 선언을 하게 된 것에는 중국 국민당 장제스가 보잘것없었던 마오쩌둥 공산군에게 처참하게 패하면서 대만으로 쫓겨나자 동북아시아의 급박한 정세변화의 물결이 일본과 필리핀을 위협하여 태평양 전체에 영향을 끼칠 것을 염려한 것에서 기인했다.

 

그리고 이 선언이 6.25 발발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서는 학계에서도 의견이 엇갈리지만 한국과 대만이 빠진 것에 대하여는 조그마한 국가의 중요성을 간과했다는 설과 미국이 고의로 제외시켜 전쟁을 유도한 뒤 우리나라에서 공산군을 몰아낸다는 계획이었다는 설 등 다양하다. 즉 전통주의자들은 이 연설이 결과적으로 북한의 남침을 예측하지 못한 미국의 결정적 실책이라고 보는 한편 일부 학자들은 이 연설이 북한의 남침을 유도하기 위한 고도의 음모라고 해석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