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1월/1월 29일

철강왕 카네기(Andrew Carnegie), 카네기협회 설립

산풀내음 2016. 12. 3. 09:05

19021 29,

철강왕 카네기(Andrew Carnegie), 카네기협회 설립

 

 

앤드류 카네기는 1835 11 25일 스코틀랜드 수직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직조공이었던 그의 부친은 수동식 직조기를 이용하는 작은 가내 공장을 운영했는데, 1847년에 증기식 직조기가 도입되면서 하루아침에 생계가 어려워지고 말았다. 급격히 가세가 기울면서 앤드류는 일찌감치 세상 물정에 눈뜨게 되었고,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서 돈을 벌어 가난을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했다.

 

이듬해 1848년에 카네기 일가는 결국 고향을 떠나 이민선에 몸을 실었고, 미국에 도착해서는 친척이 사는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 인근에 정착했다. 당시 13세였던 앤드류는 주급 1달러 20센트를 받고 면직물 공장에 들어가 일했으며, 다른 공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는 운 좋게 공장주의 눈에 들어 사무 보조도 담당한다.


학력이라곤 던펌린 시절 초등학교를 다닌 것이 전부였지만, 사회생활 초기에 카네기는 남다른 근면과 성실을 발휘하여 상사의 호감을 샀으며, 간혹 찾아오는 행운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최대한 이용했다.

 

1853년에 카네기는 전신국의 단골손님인 펜실베이니아 철도회사의 피츠버그 지부장 토머스 스콧에게 스카우트된다. 스콧은 철도 업무뿐만 아니라 투자에 관해서도 조언하는 등, 카네기에게 더 큰 기회로 통하는 문을 열어준 일생일대의 은인이었다. 1855년에 부친이 사망하자 앤드류 카네기는 20세에 집안의 가장이 되었다.

 

1856년에는 우연한 기회에 철도 침대차 사업에 투자해 처음으로 거금을 벌어들인다. 217달러 50센트를 대출받아 투자한 결과, 불과 2년 만에 매년 5천 달러의 배당금이 나올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었던 것이다.


1859년에 카네기는 스콧의 뒤를 이어 펜실베이니아 철도회사의 피츠버그 지부장으로 승진했고, 이때부터는 제법 재산을 모아 부유층으로 행세할 수 있었다. 1861년에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카네기는 전쟁부에서 일하던 스콧을 따라 워싱턴으로 향했고, 자기 분야에서의 경험을 살려 철도와 전신의 복구 업무를 담당한다.

 

이듬해에는 무려 14년 만에 어머니와 함께 고향 던펌린을 방문하고 감회에 젖는다. 그 즈음 카네기는 미국 석유산업 초기의 산유지로 유명한 타이터스빌의 석유회사에 거금을 투자해서 막대한 이득을 얻었고, 이는 훗날 그가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하는 밑천이 되었다.

 

1863년에 카네기는 키스톤 교량 회사를 공동 설립함으로써 철강 분야에 처음으로 뛰어든다. 30세 때인 1865년에는 자기 사업에 전념하기 위해 12년간 몸담았던 펜실베이니아 철도 회사에서 퇴직했다.

 

1867년에는 유니온 제철소, 1870년에는 루시 용광로 회사를 연이어 설립하며 사업의 폭을 넓혔다. 1872년에 영국의 헨리 베세머 제강소를 방문한 카네기는 그곳에서 독특한 방법으로 생산되는 강철의 놀라운 잠재력을 깨닫게 되었다. 당시에 주로 사용되던 선철은 제조가 쉬운 대신에 수명이 짧았던 반면, 강철은 선철보다 수명이 긴 반면에 제조 과정이 복잡했다.

 

카네기가 훗날강철왕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까닭은 미국에서 강철의 대량 제조 및 유통을 실현시켰기 때문이다. 남북전쟁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은 대부분의 철을 외국에서 수입했지만, 이후로는 수요가 급증해서 철강 사업의 미래가 밝았다.

 

카네기는 1875년에 미국 최초의 강철 공장인 에드거 톰슨 강철 회사를 설립했고, 이 과감한 투자는 곧바로 큰 성공으로 이어졌다. 이후 카네기는 안정적인 원료 공급과 생산 및 유통을 위해 관련 업체를 연이어 합병하거나 매입했다. 가령 1881년의 프릭 코크스 회사 합병, 1886년의 홈스테드 제강소 매입 등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1901년 카네기는 이 회사를 4 4000만 파운드에 매각했다. "부자인 채로 죽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이런 좌우명으로 평생을 살아온 카네기는 사업에서 은퇴하고 자신의 재산을 `나누기` 시작했다.

 

먼저 1902 1 29일 워싱턴에 카네기 협회를 설립했다. 공공 도서관 건립을 지원하는 재단이었다. 당시로서는 천문학적 액수인 25백만 달러의 사재를 털었다. 이어 그는 카네기 회관, 카네기 공과대학, 카네기 교육진흥재단 등에 모두 3억 달러를 기증했다. 카네기 정신으로부터 비롯된 `미국식 재산 사회환원` 전통은 록펠러재단(35천만 달러, 1913), 포드재단(5억 달러, 1936) 설립으로 이어져오고 있다.

 

 

The Carnegie Library and Museum in 1930.

 

'역사속에 오늘, 1월 > 1월 29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채보상운동  (0) 2016.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