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2월/2월 9일

한, 중 해저광케이블 개통

산풀내음 2016. 12. 12. 22:01

19962 9,

, 중 해저광케이블 개통

 

우리나라의 충남 태안과 중국의 산동성 칭따오간 약 549km를 연결하는 한-중 해저광케이블이 1996 2 9일 개통되었다. 이번에 개통된 한·중 해저 광케이블은 한국통신과 데이콤이 1993 6월부터 약 4백억원을 투입, 건설한 것으로 초당 신문 88백 쪽 분량의 정보를 동시에 전송할 수 있는 560Mbps급 시스템 2개로 구성돼 있다. 전장 549km의 네 가닥의 광섬유로 구성된 한.중 케이블 내에는 150km 간격으로 3개의 해저중계기가 설치되어 있다. 각 시스템당 매초 560메가비트를 전송할 수 있는 2개 시스템으로 이루어진 한.중 케이블은 음성급 전화회선으로는 15,120회선의 용량을 가지고 있어 15,120명이 동시에 전화통화가 가능하다.

 

.중 해저광케이블 개통에 의해 한.중간 국제통신회선은 기존의 위성 및 케이블을 합하여 총 1,084회선에서 7,290회선을 추가 확보함으로써 양국간의 급증하고 있는 국제통신 수요를 충족하고 위성과 해저케이블에 의해 전송루트를 다원화함으로써 국제통신의 신뢰성 및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됨으로써, 전세계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에 있어 우리나라가 동북아지역의 통신중심지로 부상할 수 있는 발판을 다지게 되었다.

 

 

해저케이블(Undersea Cable)은 해저에 부설되기 때문에 어업활동이 활발한 지역에서는 선박의 닻이나 어구(漁具) 등에 의해 케이블이 손상되기 쉽고 해류나 파랑(波浪)에 의한 해풍사태, 해저면과의 마찰 등 자연현상에 의해서도 케이블이 손상되므로 이를 막기 위하여 일반적으로 외장(外裝) 케이블을 사용한다. 해저케이블은 부설지역에 따라 천해용(淺海用)과 심해용(深海用)으로 나뉜다. 천해용은 해안부터 수심 약 500m 지역에까지 펼쳐진 비교적 경사가 완만한 대륙붕 지역에 설치되는 케이블로 외장 케이블이 사용되며, 심해용은 어업활동이 활발하지 못하고 자연현상에 의한 피해가 비교적 적은 심해에 설치되므로 무외장(無外裝) 케이블의 사용이 가능하다.

 

전신신호 전송을 위한 해저 케이블은 전화 발명 이전에 생겨났다. 최초의 해저 전신 케이블은 1850년 영국과 프랑스 간에 놓여졌다. 대서양에는 1858년 아일랜드와 미국 뉴펀들랜드 간에 연결되었으나 케이블의 절연 실패로 사용되지 못했다. 최초의 성공적인 상설 대서양 횡단 케이블은 1866년에 놓여졌으며, 1865년에 일부가 설치되었던 또다른 케이블 역시 1866년에 완성되었다. 미국의 재정가인 C.W. 필드와 영국의 켈빈 경은 그 두 기업과 제휴했다. 1950년대에 중계기능이 경제성 있게 실용화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긴 수명을 지닌 전화 중계기가 발명된 이후, 전화통화에 적합한 장거리 해저 케이블이 사용되었다. 깊이 3,660m에서, 적어도 20년간 관리 없이 연속적으로 완벽히 작동할 수 있는 진공관 중계기의 개발로, 스코틀랜드와 뉴펀들랜드 간을 잇는 최초의 대서양 횡단 전화 케이블이 탄생했다(1956). 이 케이블은 36개의 전화선로를 제공한다. 미국 워싱턴 주의 포트엔젤레스와 알래스카의 케치칸 구간, 캘리포니아와 하와이 구간과 같은 유사한 해저 케이블 체계들이 그 후에 개통되었다.

 

5,300해리(9,816)의 하와이-일본 구간(1964)의 케이블은 128개의 음성통화로를 제공한다. 같은 수의 통화로가 1965년 미국과 프랑스를 연결하는 케이블에서 제공되었다. 또한 한국의 부산과 일본의 하마다[濱田] 사이에도 해저 케이블이 부설되어 있다. 새로운 케이블들은 트랜지스터화된 중계기를 사용하고, 더욱 많은 음성통화회로를 제공하며, 일부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전송도 가능하게 한다.

 

우리 나라에 부설된 최초의 해저전선은 1884년 일본의 주선으로 덴마크의 대북부 전신회사에 의하여 부산과 나가사키(長崎)간에 개설된 부산구설해저전선(釜山口設海底電線)이었다. 아울러 1885 5월에 영국이 거문도와 중국 상해를 연결하는 해저케이블을 부설하였다. 그 뒤 1980 11 28일 개통된 한·일간 해저케이블 건설이 있기까지 광복 이후 35여 년간에 걸쳐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1986년에는 유리선 하나로 현재의 전화케이블보다 회선당 용량을 수십 배나 많이 수용할 수 있고 정확도가 높아 각종 첨단통신기계를 활용할 수 있는 광케이블 부설공사에 나서 전라남도 고흥과 제주도 간의 해저케이블공사를 착공하고, 한국―일본―미국을 잇는 태평양해저케이블 건설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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