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5월/5월 1일

일본, 피의 메이데이(Bloody May Day)

산풀내음 2017. 3. 13. 20:21

19525 1,

일본, 피의 메이데이(Bloody May Day)

 

일본은 1950 7월 일본총평(總平)이 결성되면서 320만 명이 참가하는 일본 최대의 노조연합체를 결성한다. 그 이듬해 3월에 일본총평은 좌익으로 선회했고 붉은 이념색채를 노골화하면서 5 1일 일본노동사에 오점으로 남아있는 '피의 메이데이'를 일으키게 된다.

 


 

미일강화조약이 발효된 후 처음 맞는 메이데이(노동절) 1952 5 1. 일본노동조합총평의회는 행사를 `인민광장`이라 불리는 황궁 앞 광장에서 열 계획이었다. 하지만 정부가 불상사 발생을 이유로 사용을 금지시키자 행사장을 명치신궁 근처로 옮겨 개최했다. 집회는 40여 만 명이 모인 가운데 성황리에 끝났다. 참가자들은 집회가 끝나고도 가두행진을 계속했다.

 

해산지점의 한 곳인 히비야공원에 시위대가 모이자 이들 가운데 수천 명이 `인민광장 탈환`을 외치며 황궁앞 광장으로 이동했다. 시위대가 이중교 앞에 도착해 집회를 열려 하자 황궁 주위를 지키던 5천 여명의 경찰들이 이들의 집회를 제지했다. 최루탄과 플래카드가 난무하는 대혼란의 와중에 돌연 경찰이 발포하기 시작했다. 2명이 사망하고 1500여명이 부상해 일본에서는 이날을 `피의 메이데이`라고 부른다.

 

체포된 사람만 1232명에 달했다. 이 가운데 261명이 소요죄로 기소되었지만 이들 전원이 무죄로 확정될 때까지는 자그마치 20년의 세월이 흘러야 했다.

 

 

일본정부는 이듬해인 1952 '파괴활동방지법'을 제정하여 불법시위를 철저히 차단하면서 새로운 노사문화의 기반을 마련했다. 오늘날 일본노사는 금슬 좋은 부부로 평가한다. 경영자는 종업원에 대해 정성을 다하고 폭력시위에 대해서는 단호한 응징을 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파업 중 폭력을 행사한 노동자는 해고할 수 있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공권력에 대항하는 파업행위는 즉각 구속된다. 심지어 노동자들이 작업장에서 농성하는 것조차 사용자의 소유권을 빼앗는 행위로 보아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 대심원의 판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