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5월/5월 24일

페루서 축구경기 중 관중 난동 500여명 압사, 정부 계엄령 선포

산풀내음 2017. 4. 15. 17:56

1964 5 24,

페루서 축구경기 중 관중 난동 500여명 압사, 정부 계엄령 선포

 

1964 5 24일 아르헨티나와 페루간에 벌어진 축구경기에서 심판의 불공정한 판정에 불만을 품은 관중들이 폭동을 일으켜 500명이 사망하고 천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페루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기본권을 정지시켰다.

 

이날 페루의 수도 리마시에서 있은 아르헨티나 대 페루의 축구시합은 동경 올림픽에 참가할 남미대표팀 선발전으로 45천명 이상의 축구팬들이 몰려들어 대성황을 이루었다. 전반전은 00으로 끝났고, 후반전 15분에 1점을 얻은 아르헨티나는 35분에 한 선수의 실수로 자살골을 넣었으나 우루과이인 심판이 무효라고 선언, 관중들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분노한 리마의 축구팬들은 관람석에서 뛰쳐나와 경기장의 창문들을 부쉈다. 차를 뒤집고 난동이 점차로 심해져 상점들을 약탈했으며 빌딩에 불을 지르기도 하였다. 결국, 경찰들이 최루탄을 발사했고, 45천명의 군중들에게 경찰견을 풀면서 사태를 수습했다. 이날 난동의 희생자 대부분은 압사에 의해서였다.

 

 

이렇게 축구 등의 경기에서 응원하는 팀의 결과에 따라 난동을 피우는 극성 팬들을 훌리건(Hooligan)이라 하며 전세계적으로 골치거리이다. 이는 영국에서 유래되었으며 영국의 훌리건은 해외에서도 그 위용을 떨쳤으나 영국 정부의 대대적인 소탕으로 숫자가 크게 줄었다. 사실은 사회의 하층민으로 전락한 2,30대 남성 계층의 분노가 외부로 표출된 한 형태. 당연히 영국만 그런 것은 아니며 사회복지 체계가 형편없고 부의 분배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고 있는 사회에서는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는 사회 불만세력. 나치파시스트들도 애시당초 이런 사람들이 모여서 시작했다.

 

 

영국의 해외원정 사례 중에 하나가 1985 5 29일 유러피언컵 결승전에서의 난동이다.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 보두앵 경기장에서 이탈리아 세리에A유벤투스FC와 잉글랜드 리버풀FC 서포터 사이에 벌어진 싸움으로 인해 39명이 사망하고 454명이 부상당했다. 사건의 발단은 당시 영국의 훌리건들이 유럽 대륙에 자신들의 세를 과시하려던 욕구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한 주변국들의 서포터들을 가리키는 울트라 들의 미묘한 라이벌 의식으로 인해 1984년 리버풀 팬들이 유벤투스 팬들에게 집중 구타 당하는 사태가 벌어지며 시작되었다. 1년이 지난 후 공교롭게 두 라이벌의 경기가 벌어졌고 경기 한 시간 전 경기장 한편의 7m나 되는 콘크리트벽이 붕괴되기 시작하였고, 유벤투스 측에서 리버풀 측에 무엇인가 던지며 욕설을 했고, 이에 분개한 리버풀 측 훌리건들이 사전에 준비하 쇠파이프와 흉기를 가지고 펜스를 넘어 중립지역을 지나 유벤투스 관중석을 덮쳤다. 이에 7m 벽은 견디지 못한 채 무너져 버렸다.

이 사건으로 인해 훌리건 29명이 구속되었고 잉글랜드 클럽 팀이 5년간 국제 대회에 출전을 금지 당했다. 리버풀은 7년간 출전 금지를 당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당시 영국의 훌리건들이 원정 깽판을 저지르는 바람에 토니 블레어 총리가 독일 TV에 나와서 사과를 하는 사태가 발생했으며, 2006년 독일 월드컵 때는 아예 지난 10년간 훌리건 경력이 있는 8500여 명을 출국금지 시켜버리는 강경책까지 동원했다고 한다.

 

아무리 훌리건 하면 영국을 떠올린다 하더라도 진짜 무서운 훌리건들은 남미에 있다. 일단 아르헨티나가 대표적인데, '수페르 클라시코'라고 불리는 보카 주니어스리버 플레이트의 경기 때는 경기장에 권총은 물론 기관단총까지 등장한다. 경기 끝나고 사람 죽는 일도 한두 번이 아니다.

 

콜롬비아에서도 94년 월드컵 때 자책골을 넣어 팀을 패배 시킨 한 수비수 에스코바르(콜롬비아 속옷 티브이 광고에도 나왔음)는 고향으로 돌아와 술집에서 술 한잔 들이키다가 나오는 길에 주차문제 시비로 싸우다가 총 맞아 세상을 하직했다. 게다가 다른 선수들과 감독은 귀국조차 하지 않았는데 에스코바르는 자책골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귀국했다. 게다가 에스코바르 혼자만의 실책이 아니었기에 더욱 안타까웠다.

 

브라질에서도 1950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 직후 훌리건전국구 대난동이 있었다. 그 이유는 브라질이 마지막 경기에서 우루과이한테 지지만 않는다면 우승 확정이고 팬들은 승승장구하던 브라질 대표팀이 "설마 마지막에 지기야 하겠어?"라고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 졌기 때문이었다. 전국 곳곳에서 자살자가 속출하고 사람들이 울분을 참지 못하고 난동을 부렸다.

 

2014년 브라질당국은 월드컵 안전대책의 하나로 아르헨티나 극렬축구팬 훌리건들의 입국을 막기로 하고, 아르헨티나 당국으로부터 훌리건 2,100여 명의 명단을 전달받아 이들의 입국을 금지시키는 동시에 또 이미 브라질에 들어와 있는 훌리건은 추방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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