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5월/5월 28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결성

산풀내음 2017. 4. 22. 08:19

19895 28,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결성

 

전교조의 효시는 4·19 혁명 직후인 1960 5 22일 결성된 한국교원노동조합이다. 교원노조는 평교사의 노동권 보장과 어용인 대한교련의 해체를 주장하며 대대적인 탈퇴운동을 벌였다. 그 결과 82천명 선이던 대한교련의 회원수는 5만 여명으로 줄고 교원노조의 조합원수는 4만 명에 달했다. 그러나 5·16 군사 정변으로 집권한 박정희는 교원노조를 강제 해산하였다. 이후 제3공화국은 교원과 공무원의 노동조합 결성을 금지하였고 이는 1990년대 말까지 이어졌다.

 

1986 5 10일 교육민주화 선언을 이끌었던 교사들은 1987 6월 민주화 운동 이후 그 해 9 27일에 전국교사협의회를 만들고 본격적인 교직단체 활동에 들어가게 되었다. 협의회는 교육법개정운동을 통해 교육환경개선 및 교직원 처우개선, 교원의 노동3권 보장 등을 요구하며 운동을 전개해 오다 임의단체가 갖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결성을 결의하게 됐다.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 1989 5 28일 연세대 도서관 앞에서 결성대회를 갖고 선언문을 통해 "민족-민주-인간화 교육 실천을 위한 참교육운동을 더욱 뜨겁게 전개해나가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결성식 장소였던 한양대와 건국대가 경찰에 의해 봉쇄되자 연세대로 결성식 장소를 변경해야 했다.

 

오후 130분경 몇몇의 젊은 교사들이 학생회관 안쪽에서 플래카드를 들고 뛰쳐 나왔다. 플래카드를 펼치는 순간 80여명의 교사 등 200여명이 모여들었고, 핸드마이크를 든 윤영규 위원장은 떨리는 목소리로 결성 선언문을 낭독했다. 선언문이 낭독되는데 걸린 시간은 채 10분도 되지 않았다. 결성식 10, 플래카드 2, 핸드마이크 하나, 교사와 학생 등 200여명 참석에서 보여주듯 결성식은 초라했다.

 


 

1989 7월 3, 전교조가 창립된 이후 탈퇴를 권유하던 교육부의 전신인 당시 문교부(장관 정원식)는 전교조 조합원의 해직을 결정하였다. 문교부는 이날 회의에서 초중등교사 6,165명과 대학교수 204명이 징계 대상자라고 밝혔다.

 

1990 11월 26 이로 인해 자진 탈퇴를 거부해온 1,465명의 교사들이 해직되었다. 이들 중 116명은 파면, 970명은 해임하고, 379명은 직권 면직을 하였다. 이들 중 55명은 구속되었다가 풀려났다. 대부분의 활동적인 조합원이 해고된 가운데 전교조는 비합법 노동조합으로서 활동하였다. 이때 해고된 교사들 중에는 도종환, 안도현 시인이 포함되어 있었다.

 



 

1993 10월 28 김영삼 대통령의 집권 1년 차이던 이날까지 전교조 복직 신청을 받아서 95%가 복직되었다. 1490명 중 1424명이 복직을 신청하고, 66명이 복직 신청을 거부했다. 이후 에도 한동안 법적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던 전교조는 1997노사정위원회에서 노사화합의 일환으로 전교조의 합법화를 합의하였고, 드디어 1999 1 6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운영 등에 관한 법률이 국회에서 의결되어 전교조는 합법적인 노동조합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