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5월/5월 29일

독일 여성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 시신 90년 만에 발견

산풀내음 2017. 4. 22. 14:33

20095 29,

독일 여성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 시신 90년 만에 발견

 

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 1871~1919) 20세기 초반 공산주의 사상에 큰 영향을 끼친 폴란드 출신의 여성 사회사상가였다. 룩셈부르크는 1919년 독일 우파 민병대에 의해 살해됐고, 그의 시신은 베를린 운하 아래로 내던져졌다. 피살 5개월 뒤에 발견된 시신이 독일 프리드리히스펠데 공원묘지에 묻혔다. 그러나 진짜 시신은 따로 있다는 주장이 줄곧 제기됐다.

 

 

그런 그녀의 시신이 90년 만에 베를린의 한 병원에서 발견됐다고,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이 2009 5 29일 보도했다. 이번에 그녀의진짜시신을 발견했다는 주장은 독일 베를린의 샤리테병원 법의학과장인 미하엘 초코스(Tsokos)가 제기했다. 초코스는 최근 병원 부속 의학사박물관 지하에서 머리와 손발 없이 몸뚱이만 남은 시신 한 구를 발견했다. 그는 1919년부터 이 병원에 보관돼 온 이 시신의 육안적인 특징과 시신에 대한 부검 보고서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의심을 품었다.

 

이후 엑스선 단층촬영을 실시한 결과, 이 시신이 소문으로만 떠돌던 룩셈부르크의 시신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생전의 룩셈부르크는 뚜렷한 신체적 특징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150cm 단신이었고, 엉덩이뼈 이상으로 인해 양쪽 다리의 길이가 달라 평생 절뚝거렸다. 초코스가 발견한 시신은 룩셈부르크의 신체적 특징을 모두 보여주는 데다, 물에 잠겼던 흔적이 있었다. 또 키엘의 한 연구소가 시신에 대해 실시한 탄소연대측정도 룩셈부르크의 사망 시기와 일치했다.

 

로자 룩셈부르크에 대한 수식어는 다양하다. 마르크스 이후 가장 뛰어난 두뇌, 역사상 지적 능력이 제일 우수한 여성. 이론적 업적이 마르크스의 전성기와 비견된다고까지 일컬어지는 여성. 독일공산당을 창당한 뒤 독일 정부를 전복하고 프롤레타리아혁명을 일으키려고 봉기했다가 피살된 여성 등등.

 

사회주의 운동의 첫 여성 순교자가 된 룩셈부르크는 1871년 폴란드의 유대인공동체에서 태어났다. 정치탄압과 인종차별을 겪으며 자란 그는 유대인 학살을 두 번 목격한 뒤로 초국가적 형제애를 부르짖는 국제사회주의운동에 빠져들었다. 그는 열여섯 살 때 폴란드의 사회주의혁명프롤레타리아당에 들어가 지하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독일에는 좌파 정당인 사민당이 상당한 조직적, 정치적 기반을 확보하고 있었는데, 로자는 독일 사민당 및2 인터내셔널(1889~1916)’에서 활동하게 된다. 이론가로서 로자는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에 대한 비판, 레닌주의 조직론에 대한 비판, 마르크스의 축적 및 재생산 이론에 대한 비판적 보완 작업, 독자적인 제국주의론의 제출 등과 같은 지적 작업을 해간다.

 

 

당시 독일 사민당은 정치투쟁을 외면하는 조합주의적 우파가 장악하고 있었고, 이런 흐름에서 사민당 거의 대다수는 제1차 세계대전 시기에 부르주아들에게 협력하면서 끌려 다니게 된다. 이에 반해, 로자가 속해 있던 사민당 내 소수 좌파 세력은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하는 노선을 택했다.

 

그런데, 러시아의 레닌이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함으로써 볼셰비키 혁명에 성공하게 되는데 반해서, 독일의 로자는 부르주아와 협력하던 사민당 우파 정권의 묵인과 비호 아래 퇴역 군인들로 이뤄진 용병대에 의해 살해되는 것이다. 로자는 1919 1월 중순에 체포되어 온갖 모욕과 폭행을 당한 뒤 수송 도중에 살해되었고 그 시신은 운하에 버려진다. 동시에 체포되고 살해된 칼 리프크네히트 등과 함께 장례가 치러진 게 1월 하순이었고, 떠내려 온 시신이 발견된 것은 5월 말이었다. 로자는 그녀보다 50년쯤 뒤에 살해된 체 게바라와 더불어 20세기 혁명의 순교자적 아이콘이 되었다.

 

로자가 죽고 나서 로자의 정치사상적 라이벌이었던 레닌은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바 로자의 문제점을 거론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독수리는 때때로 닭보다 낮게 날 수는 있지만 닭은 결코 독수리처럼 높이 비상할 수는 없다. 이 모든 실수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독수리였으며 독수리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