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6월/6월 4일

미드웨이 해전 (Battle of Midway)

산풀내음 2017. 4. 30. 17:08

1942 6 4,

미드웨이 해전 (Battle of Midway)

 

1942 4 18일 일본 해군은 미 항공모함에서 출격하여 일본을 공습하고 중국으로 탈출했었던 두리틀의 폭격에 크게 충격을 받았다. 항속 거리가 긴 쌍발 육상 폭격기를 항공모함에 적재하고 출격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본 군부는 공습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USS Hornet함과 USS Enterprise함이 일본 본토 사정거리로 들어와 비록 소규모 공격일지라도 성공적으로 도쿄를 포함한 본토 공격에 성공한 것이었다. 결국 일본이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미국 항공모함 함대를 격파해야 한다는 사실이 자명해졌다.

 

해군 이소로쿠 야마모토 연합함대 사령관은 대담한 결심을 하였다. 야마모토는 전쟁 전부터 염두에 두고 있던 미드웨이- 알류산 열도 작전을 실행하기로 하였다. 즉 미드웨이섬을 점령하여 초계선을 멀리 하와이 근처까지 동진시켜 두리틀의 폭격대와 같은 기습의 가능성을 없애버림과 동시에 그 해 10월쯤 예정된 하와이 점령 작전의 교두보로 삼겠다는 계획이었다.

 

작전 계획은 미국과 일본 중간 지점에 있는 미국의 중요한 전초기지 미드웨이 환초를 급습하여 점령하고, 미국의 항공모함 함대가 출격하여 미드웨이에 도착하면 Akagi, Kaga, Soryu, Hiryu함으로 구성된 4척의 항공모함 함대뿐만 아니라 Yamato함을 포함한 전함 7, 순양함/구축함 등 150척의 지원함 그리고 248대의 비행기와 15척의 잠수함까지 출격해 미국 해군을 박살 낸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5월 초 죠셉 로슈포르가 이끌던 미국 해군 정보사령부 암호 해독반은 일본 암호 체계인 JN-25를 거의 해독할 수 있게 되었고, 일본이 곧 미드웨이를 침공할 것임을 알아내게 되었다. 미군은 암호 해독을 통해서 일본군의 목표가 미드웨이인 것을 파악하고 만반의 준비에 들어갔다. 미 태평양함대 사령관 니미츠가 동원할 수 있는 항모는 제16 기동부대(TF-16) Enterprise Hornet, 그리고 산호해에서 심각한 내상을 입었으나 응급복구 된 제17 기동부대(TF-17) Yorktown 3척이었다. 일본군에 비하면 미약한 수준이었다. 즉 미국 전력은 3척의 항모와 50척의 지원함, 8척의 잠수함 그리고 360대의 비행기였다.

 

엔트프라이즈호

 

그러나 천만 다행으로 미군에게는 움직이지 않는 붙박이 항공모함이 한 척 있었다. 다름 아닌 미드웨이 섬의 활주로가 그것. 사실상 미드웨이 섬은 불침항모였다. 여기에 레이더라는 천리안과 암호해독이라는 비밀 병기가 있었다. 더욱이 미군의 항공모함들은 산호해에서 학습된 교훈을 통해 전투 중에 피해를 견뎌내는 내성과 진주만의 복수를 다짐하는 결전의 의지로 똘똘 뭉쳐 있었다. 16기동부대는 스프루언스 제독이 제 17기동부대는 프랭크 플레처 제독이 지휘봉을 잡았다.

 

Midway Island

 

엔터프라이즈와 호넷, 요크타운에서 카운터펀치를 갈며 이륙 명령을 기다린 함재기는 모두 233기였고 붙박이 항모 미드웨이에는 브루스터 F2A 버팔로 전투기 26, SB2U 빈디게이터와 더글러스 SBD 돈틀레스 급강하 폭격기 50, 그러먼 F4F 와일드캣, 보잉 B-17 플라잉포트레스, B-26 머로더 등 100기 이상의 보강된 항공기들이 일본군만 나타나기를 벼르면서 출격을 기다렸다.

 

한편 일본은 5 27일 나구모 주이치 해군 중장이 지휘하는 제 1 항공전대가 엄중한 무선 봉쇄를 실시하며 출격하였다. 주력 항모들은 제 1 항공전대의 아카키, 카가, 2 항공전대의 히류, 소류의 네 척이었다. 6개월 전 하와이를 공격했던 기동부대에서 제 5 항공전대의 쇼카쿠와 즈이카쿠가 빠진 것이었다. 참가했더라면 미드웨이 해전의 운명을 바꿔 놓았을지도 몰랐던 항모 쇼카쿠는 산호해 해전에서 입은 손상 수리에 무려 3개월이나 걸리는데다 산호해 해전에서 조종사 손실이 절반에 달했던 자매함 즈이카쿠는 트럭 섬에서 조종사 충원과 재정비를 하고 있었다.

 

전함 기리시마와 하루나 두 척의 전함이 호위함대의 주축으로 동반하였다. 그 뒤를 세계 최대 전함 야마토를 포함해서 5척의 전함을 중심으로 대함대가 거리를 두고 출동하였다. 사상 최대의 함대가 출동한 것이었다.

 

세계 최대 전함 일본 야마토

 

미드웨이 해전은 소리 없이 출발했지만 이미 행보를 들킨 일본군과 은밀하게 일본 항모를 찾으면서 미리 기다린 미군과의 한판 승부였다. 승부의 시작은 정찰에서부터 가려졌다. 일본군에 비해서 미군은 압도적으로 많은 30대가 넘는 정찰기를 육상과 해상에서 띄우고 미드웨이 근해를 촘촘하게 뒤졌으나 일본군은 항모와 순양함 등에서 제한적인 숫자의 정찰기를 띄울 수밖에 없었다.

 

 

6 3일 오전 일본 함대가 미드웨이 침공대와 수송선단이 해군 소위 잭 리드가 모는 카탈리나 비행정에게 먼저 꼬리를 잡힌다. 그날 오후에 미드웨이에서 발진한 폭격기가 고공 폭격을 하고 카탈리나가 수면에 착륙해서 어뢰공격을 했으나 별 성과가 없었다.

 

이윽고 6 4일이 새벽 4 45분 일본 측 공격기가 날아오른다. 기함 아카기와 가가, 소류와 히류에서 총 108대의 항공기가 일제히 미드웨이로 향했다. 도모나가 대위가 지휘한 이 공격대는 한 시간 뒤 미군의 카탈리나기들에 발견되었고 미드웨이에서는 요란한 사이렌과 함께 본격 전투준비에 들어갔다.

 

한편 5 57분경 일본군 미드웨이 공격대를 발견했던 미군 카탈리나 비행정은 구름 속으로 도주하다가 일본항모들을 찾아낸다. 곧바로 이정보는 16, 17 기동부대에 타전된다. 누가 먼저 항모를 발견하느냐의 경쟁에서 미군이 한발 앞서기 시작한 것이다. 간발의 차이가 운명을 결정한다.

 

6 15분경 미드웨이 상공. 매복하던 미 해병대 소속 버펄로 전투기와 와일드캣 전투기 27대가 일본군 공격대를 덮쳤으나 낡고 속력이 느린 미국 전투기로서는 일본 전투기를 막기에 역부족이었다. 미군 전투기들은 속속 격추돼, 2기 외엔 전투 불능 상태에 빠져 전멸되다시피 했다.

 

한편 미드웨이의 하늘이 일본기 차지가 됐지만 이번에는 진주만과 달랐다. 비행기들은 이미 대부분 치워진 뒤였고 미군의 지상포대는 격렬하게 저항을 했다. 이렇듯 미국 전투기들은 일본 전투기들의 공격에 많은 피해를 입었지만, 몇 차례의 미드웨이 항공대의 공격에 노출된 일 항모들 역시 회피 기동을 하느라 시간을 소비, 함상기들을 발함시킬 기회를 놓치고 있었다.

 

8 25분경 도모나가 대위가 이끄는 미드웨이 1차 공격대가 귀환한다. 이미 4시간 가량을 하늘에 떠 있었던 터라 연료가 바닥이 난 전투기들은 착함에 분초를 다투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일 항모의 갑판에는 공격용폭탄을 장착하고 출격을 기다리던 함상공격기들이 있었다. 일 항모 지휘부는 고민 끝에 전투기들을 갑판 아래 격납고로 내리곤 부랴부랴 8 37분부터 착함을 시킨다.

 

9 15분이 되어서야 간신히 전체 공격대가 갑판에 내려앉았다. 그 동안 기존의 공격기들은 육상공격용 폭탄을 제거하고 항공모함 공격을 위해서 어뢰 교체에 들어갔고 미드웨이 귀환 공격기들은 연료재공급과 재무장에 들어갔다. 일 항모의 분위기는 아수라장이었다.

 

9 45분경 엔터프라이즈의 급강하 폭격기 편대가 항모전단과 한참 떨어진 해상에서 가느다란 항적을 발견했다. 미 잠수함 노틸러스호를 쫓다가 일 항모 함대로 복귀하는 구축함 아라시가 남긴 항적이었다. 엔터프라이즈의 돈틀레스 편대는 아라시의 뒤를 따랐다. 이 급강하 편대에 의해서 제대로 된 일 항모 공격이 이루어졌으니 아라시가 죽음의 길 안내자 역할을 한 것이다.

 

한편 10시 정각에 요크타운에서 이륙한 제3뇌격기 부대가 세 번째로 일 항모 공격에 들어갔으나 역시 초계기와 대공화력 앞에 속수무책 당하고 만다. 그러나 이때 미군에겐 중요한 기회가 생긴다. 뇌격기의 잔매를 막느라 일본군은 초계를 남쪽 하늘로 옮겼고 항공모함의 위를 텅 비게 만든 것이다. 뇌격기의 잽으로 고공의 경계가 느슨해지고 항공모함에서는 출격이 늦추어진 사이에 시각은 10 20분을 넘기고 있었다.

 

마침내 10 25. 운명의 5분이 시작되었다. 엔터프라이즈 발 급강하 폭격대와 요크타운 발 급강하 폭격대가 죽음의 그림자를 싣고 아카기, 가가, 소류의 상공을 덮친 것이다. 갑판엔 출격을 기다리는 함상기들이 즐비했고 미군 파일럿의 눈엔 갑판에 빨간 일장기의 원을 그린 일 항모들이 마치 표적처럼 각인되었다.

 

덩치가 큰 가가가 확 눈에 들어왔다. 가가의 견시가 ‘급강하’를 외치고 24노트로 커다란 원을 그리며 필사적으로 회피 기동을 하였지만 돈틀레스 급강하 폭격기는 뇌격기와는 달랐다. 28대의 폭격기가 준비한 폭탄은 50발에 달했다. 공식적으로 모두 4발의 폭탄이 명중되었다지만 연료 창고에 맞아 대형 폭발을, 아일랜드가 날아가면서 지휘부가 몰살 하는 등 너무나 혼란해 최대 12발이 명중되었을 것이란 주장도 있다. 가가는 전투 불능 상태에 빠졌다.

 

그 사이에 나구모 제독이 탑승하고 있던 아카기는 돈틀레스가 투하한 450㎏ 폭탄 한 발에 숨통이 끊어진다. 소류도 자신의 머리 위에 온 죽음의 사신을 알아차린 것은 공습 불과 1분전인 10 24분이었다. 10 57분경 유일하게 살아남은 히류가 반격에 나선다. 그러나 일본 비행기들의 접근을 레이더로 알아낸 요크타운은 즉시 전투기 출격과 함께 급강하 폭격기들은 다른 배로 보내고 대공 전투를 준비했다. 요크타운에 접근하기도 전에 치열한 공중전이 벌어졌다.

 

12 45분경 이번엔 미드웨이 1차 공격대를 지휘했던 도모나가 대위의 공격대가 히류의 갑판을 차고 출격했다. 요크타운에 접근하기도 전에 요크타운과 엔터프라이즈 함재기와의 치열한 공중전에 속속 격추되면서도 어뢰 2발을 요크타운에 명중시킨다. 폭탄에 이은 어뢰 2발로 그녀는 회생불능상태에 빠졌다. 퇴함명령이 내려졌고 왼쪽으로 26도 기울어진 요크타운은 예인 작업이 시작되기 전, 일본군 잠수함의 어뢰공격으로 6 7일 아침에 침몰했다.

 

한편 도모나가 공격대가 요크타운에서 물러갈 즈음, 미군 정찰기가 히류를 발견했다. 오후 5, 미군 급강하 폭격기들이 히류에 날아들었다. 필사적으로 히류의 초계기들이 막고 나섰으나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였다. 폭탄 4발이 갑판에 명중했고, 히류는 폭발과 함께 갑판이 날아가면서 함 전체가 화염에 휩싸였다.

 

이날 소류가 오후 7 13분 제일 먼저 가라앉았고 12분 뒤 가가가 침몰한다. 유령선처럼 해상을 떠돌던 아카기는 다음날 새벽 새벽 4 55분 자침 처리되고 히류도 5 10, 같은 운명에 처한다.

 

미드웨이 해전이 벌어진 6 4~7일 사이에 미군은 항모 1척 비행기 147, 병력 307명을 잃었고 일본은 주력 항모 4척과 대형 수송선, 비행기 272대와 2,500명의 병력을 잃었다. 미국으로서는 승리의 해전이며 일본으로서는 패전의 시작이었다.

 

일본군 107,000톤 미군 25,500, 총합 133,400톤에 달하는 항공모함 5척이 수장된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군은 한발 앞선 정보와 우세한 정찰력을 무기로 훨씬 다양한 공습을 할 수 있었고 일본해군은 부정확한 정보에 의존, 멋모르고 섶 지고 불 속에 뛰어든 형국으로 해전을 치렀다. 거기다가 일본해군은 속도도 느리고 낡은 미군뇌격기들의 잽을 피하느라 고공 침투 급강하 폭격기의 한방을 대비하지 못했고 지휘관의 우왕좌왕이 겹치면서 파국을 맞았다.

 

물론 미군기들은 교전 경험이 일천해서 지휘계통의 혼선, 기체 결함 등 아찔한 상황이 속출했지만 앞선 정보와 파일럿들과 일선 지휘관들의 순간의 결정에 충실함으로써 승리를 일구어내었다. 미드웨이해전에서 미군의 승리는 우연이 아닌 어찌 보면 지피지기의 당연한 결과였고 일본에겐 필패인 동시에 악몽의 시작, 대재앙의 날이었다.

 






USS Yorktown

침몰하는 Yorktown

피격 당한 히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