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6월/6월 10일

프랑스 뤼미에르 형제, 칼라사진방식을 발표

산풀내음 2017. 5. 4. 16:57

1907 6 10,

프랑스 뤼미에르 형제, 칼라사진방식을 발표

 

프랑스의 화학자 뤼미에르 형제(오거스트와 루이, Auguste and Louis Lumière) 1903년에 발명한 오토크롬 건판(乾板)이라는 칼라 사진방식을 1907 6 10일 발표했다. 적색, 녹색, 청색의 3색 필터로 피사체를 분해기록하고 현상 후 3색 필터 스크린을 통하면 화상이 재현되는 것으로 1장의 건판에서 색의 분해, 합성이 모두 가능한 획기적인 방법이었다. 이는 고감도 흑백감광사진에 비해 60배정도의 노출시간이 필요하지만, 상업이나 예술에 널리 이용됐다.

 

Auguste Lumière (, 1862-1954) and Louis Lumière (, 1864-1948)

Lumière, Portraits of the Lumière brothers daughters, ca. 1910s.(L) and Lumière, A soldier offering a maiden a flower, 1910.(R)

 

뤼미에르 형제는 1895년 촬영기 겸 영사기도 개발해 `영화의 아버지`로도 알려져 있다. 1895 12 28, 프랑스 파리의 한 카페에서 뤼미에르 형제는 초()단편 영화 10편을 공개 상영했다. 이중 〈뤼미에르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 La Sortie des ouvriers de l'usine Lumière(1895)이 최초의 영화로 간주된다. 지극히 초보적인 형태의 필름들이었지만 영화 시사회라는 것에 처음 가 본 관객들은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 사람들은 화면 속 풍경을 실제 상황인 것으로 착각했다. ‘시오타 역에 도착하는 기차’라는 영화에서 열차가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는 줄 알고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뛰쳐나가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였다니….

 

이날 시사회에 모인 사람은 프랑스의 문화계 인사 30여 명. 뤼미에르 형제는 이들에게 1프랑씩의 입장료를 받았다. 그래서 이날은 세계 최초의 상업영화가 상영된 날로도 기록된다.

 

Closed and open views of the "Cinematographe camera/projector designed by Auguste and Louis Lumiere. It was first privately demonstrated in March 1895

La Sortie de l'Usine Lumière à Lyon

 

원래 영화를 처음 만든 사람은 뤼미에르 형제가 아니고 발명왕 에디슨이었다. 하지만 에디슨의 영사기는 여럿이 함께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한 사람씩 구멍 속을 들여다봐야 감상할 수 있었다. 반면 뤼미에르 형제는 처음으로 돈을 받고 관객을 상대로 시사회를 했다는 이유로 ‘영화의 시조’ 자리를 차지했다. 형제는 이후에도 무려 400여 편의 단편영화를 더 만들었다. 퇴근하는 노동자들, 일하는 대장장이, 아기에게 젖먹이는 모습 등 소재는 평범한 일상생활이었다. 하지만 뤼미에르 형제는 미래를 예측하는 데는 소질이 없었는지 다음의 한마디를 남기고 영화 제작을 중단하고 만다.

“영화는 참 미래가 암담한 발명품이란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