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6월/6월 26일

김구, 경교장에서 암살당해

산풀내음 2017. 5. 19. 05:27

1949 6 26,

김구, 경교장에서 암살당해

 

1949 6 26일 일요일. 김구(金九 1876 8월 29 ~ 1949 6월 26)는 평소와 다름없이 새벽 5시에 일어나 중국시선을 읽고 이어 휘호를 썼다. 전국에서 이를 요청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틈틈히 써 놓기 위해서다. 이어 자신이 설립한 마포 창암학원 관계자를 접견해 학교 운영방안을 상의했다. 이때 포병소위 안두희가 경교장을 찾아와 면담을 신청했다. 오후 12 40분 면담이 이뤄졌고 곧이어 4발의 총성이 연이어 울렸다. 당시 상황을 김구의 선우진 비서는 백범선생의 점심을 마련하기 위해 지하층 식당으로 내려갔는데 갑자기 위층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들렸고 안두희가 손에 권총을 든 채 2층에서 고개를 숙이고 내려오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서울운동장으로 운구되는 김구의 장례식 행렬. 이날 서울의 모든 상가는 김구의 장례에 맞춰 철시됐다.

 

해묵은 의혹일지도 모르는 김구의 암살배후에 관심을 쏟는 이유는 그의 죽음이 여러 가지 숙제를 남겨두기 때문이다. 73세 노혁명가의 목숨을 앗아간 안두희는 손에 권총을 쥔 채로 “선생은 내가 죽였어!”라고 태연하게 말하며 검거에 순순히 응했다. 현장에서 체포된 안두희는 우발적 단독범을 주장했다. 배후는 없다는 얘기다. 범인이 확보되고 철저하게 준비된 암살이었음도 밝혀져 사건의 전모가 곧 드러날 것으로 예상됐으나 사건은 당시 배후설만 난무할 뿐 어느 것 하나 속시원히 밝혀지지 않았다.

 

가장 먼저 신병을 확보한 헌병대가 범인을 감방에 가두기는커녕 의무실에 보호조치한 점, 임정계열인 헌병사령관을 이튿날 춘천지구로 전격 발령한 점 등이 의문이었다. 특무대로 넘겨진 안씨에게 김창룡이 “안의사, 수고했소”라고 격려하며 술·담배 등을 제공한 사실은 의혹을 더욱 부채질했다. 무기징역을 언도받았으나 6·25 발발과 함께 특사조치로 석방돼 육군 중령으로 복귀한 점 역시 배후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었다.

 

이후 민주화 바람으로 이승만이 4.19 혁명으로 물러나고 제2공화국이 들어섰으나, 정치 사회적으로 매우 혼란했던 제2공화국에서 김구선생의 암살범 안두희에 대한 재 처분은 이루어지지 못했고 결국 그는 그대로 편안한 삶을 살게 될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그에게 가해진 형벌은 끝이 났어도, 도덕적 비난과 인벌(人罰)은 계속 되었다. 그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는 가시지 않았기에 여러 의인들은 그를 지속적으로 추궁하고 진실 규명을 위해 노력했으며, 일부는 그에게 폭행을 가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안두희는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 은거하며 생을 이어갔다.

 

김구 살인범, 안두희

 

그러던 중 범행 43년 만에 김구 선생의 암살배후에는 당시 특무대장이었던 김창룡이 관련돼 있다고 1992 4 12일 폭로했다. 안두희는 또 범행에 앞서 김씨 외에도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당시 미CIA 한국 담당자였던 미군 중령과 수 차례 만나 김구 선생은 없어져야 한다는 언질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 같은 사실은 권중희씨 등 3명이 4 12일 오전 11시쯤 인천시 신흥동 안씨의 집을 방문, 8시간 동안 면담하는 과정에서 밝혀졌다. 안씨는 "입당 이후 서너 차례 경교장에 드나들며 백범 암살기회를 노리던 중 1949 6 26일 우연히 경교장에 들렀을 때 김구 선생이 독서를 하고 있어 범행 적기라고 생각해 암살을 결행했으며 당시 자신은 포병장교로서 일선 중대장으로 나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권총과 실탄은 항상 휴대하고 다녔다"고 밝혔다.

 

김구 암살의 배후 김창룡과 그 배후일 가능성이 거의 확실한 이승만

 

또한 안씨는 특무대에서의 생활은 아침에 커피를 마시고 술, ·불고기, 냉면, 담배 등은 언제든지 먹을 수 있는 특별대우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안씨는 지금까지 이 같은 사실을 밝히지 않은 이유에 대해 김대장에 대한 개인적인 의리와 언론에 공개될 경우 나에게 쏟아질 보복 때문에 미뤄왔다고 밝혔다.

 

그리고 결국 안두희는 1996 10 23일 오전 1130분쯤 인천 자신의 집에서 버스운전기사로 일하는 박기서씨에 의해 처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