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6월/6월 26일

두브체크, 공산당적 박탈

산풀내음 2017. 5. 19. 18:05

1970 6 26,

두브체크, 공산당적 박탈

 

1970 626, "인간의 얼굴을 지닌 사회주의"를 추구했던 알렉산드르 두브체크(Alexander Dubcek, 1921 11월 27 ~ 1992 11월 7)가 체코 공산당으로부터 당적을 박탈당함으로써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던 1968 `프라하의 봄`도 역사속에 묻히고 말았다.

 

알렉산드르 두브체크(Alexander Dubcek)

 

1968 1월에 당 노선경쟁에서 보수파 당관료를 물리치고 제1서기에 오른 두브체크는 검열제 폐지 등 이른바프라하의 봄(Prague Spring)’ 개혁을 추진하고, ‘인간의 얼굴을 지닌 사회주의를 실천시키기 위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접목시킨3의 방법을 모색했다. 2차대전 후 독일로부터 해방되고 소비에트체제가 수립된 지 20년 만에 자유의 바람이 프라하에서 불기 시작했다. 프라하의 바람은 소비에트의 정치적 선전처럼 서구제국주의자들의 선동에 의해 시작된 것이라기보다는 내부에서 자생적으로 생성된 개혁운동이었다.

 

같은 시기에 전세계는 자유의 바람이 강타하면서 혁명적인 시기를 거치고 있었다. 파리에서는 학생들의 봉기가 있었고 베트남전에 대한 반전운동이 미국을 비롯해 전세계적으로 휩쓸던 시기였다. 서구자본주의세계나 소비에트체제는 자유의 바람으로 인해 위기를 맞았던 시기였고 인류에게는 더 없는 희망의 시기였다.

 

소련이 이를 `반혁명`으로 간주한 것은 예상했던 결과였다. "자유화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경고했지만 이미 자유를 만끽해 본 체코인들의 태도는 완강했다. 소련군을 위시한 20만명이 탱크를 앞세우고 체코 국경을 넘었지만 국민들은 온 몸으로 저항했다. 그러나 세계는 냉담했고 침묵했다. 결국 `프라하의 봄`은 침략자 군화발에 짓밟혀 파국을 맞았고 소련에 연행된 두브체크는 자신의 행동이 반동적이었음을 시인해야 했다. 1969 4월에 당 제1서기에서 해임되고 잠시 터키 대사로 전출됐으나 그를 기다린 것은 고향에서의 산림노동자였다.

 





 

1989년 체코연방 대통령선거에 출마하면서 화려하게 다시 정계에 복귀했으나 하벨에게 진 뒤 상징적인 연방의회 의장으로 남게 되었다. 지난 1992년 의문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뜨면서 그의인간적 사회주의는 미완의 성공으로 그쳤지만 민주주의를 향한 구호는 지금도 슬로바키아인들의 가슴속에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