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6월/6월 27일

5공비리특위 구성

산풀내음 2017. 5. 19. 18:24

1988 6 27,

5공비리특위 구성

 

1987년 민주화 항쟁을 통해 전두환 대통령의 호헌 조치를 저지하고 대통령 직선제를 이루어 냈지만 1987 12 16일에 치러진 제 13대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가 당선된다. 그리고 노태우전두환과 함께 12·12 군사 반란 주도세력의 한명이었기에 국민의 열망인 5공 청산에 소극적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19884 26일에 실시된 총선에서 여당인 민주정의당이 총 299석 중 125석만 차지함에 따라 여소야대의 상황이 벌어졌다. 여소야대 정국을 만든 평민당, 민주당, 공화당 야 3당은 국회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구성결의안’과 함께 ‘제5공화국에 있어서의 정치 권력형 비리 조사 특별위원회 구성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당시 통일민주당 부총재인 이기택을 위원장으로 한 5공특위는 산하에 4개 소위를 두고 있으며 제1소위는 정치권력에 의한 비리, 2소위는 경제비리, 3소위는 인권 및 인사비리, 4소위는 사회 및 기타 비리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7 29일 여야 간사 합의에 따라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의 각종 비리, 부정축재 의혹 중 1차 조사 대상 30건을 확정했다. 확정한 조사 대상은 비리, 의혹의 종합백화점과도 같았다.

 

헌정사상 최초로 실시된 5공비리특위 청문회 장면. 1988.11.3

한때 국정조사 청문회는 스타 정치인의 산실이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무명의 초선 의원이던 그는 청문회를 통해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사진은 1988 11월 열린 5공비리 특위의 일해재단 청문회에서 증인석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모습.


 

일해재단의 설립배경과 자금 조성이 주요 조사 대상이었다. 전씨의 재단 출연기금 205000만원의 출처 및 578억원의 기금 조성 과정에 강제성이 있었는지 등이 조사 안건이었다. 전 전 대통령 부인 이순자의 새세대육영회심장재단과 관련해선 236억원의 찬조금 조성 과정 및 성금 지출 과정의 부정축재 의혹이 도마에 올랐다. 또한 특위는 전씨 일가의 재산 해외도피 가능성도 조사키로 했다. 이 밖에 노량진수산시장 운영권 강탈비리, 전씨 부모 묘 성역화, 박정희 전 대통령 사망 직후 청와대 재산의 행방 등도 조사대상에 포함됐다. 사유화된 권력이 한국의 정치·경제·사회 등 전 부문에 무소불위의 힘을 행사한 혐의는 뚜렷해보였다.

 

조사 대상이 확정된 날 밤 민정당은 대책 마련에 부심했다. 5공특위 위원들은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전씨 측근인 안현태 전 청와대 경호실장 등과 대책을 논의했다. 전씨 측근들은 “조사 대상에 오른 사건들의 진상이 대부분 루머로 판명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증거 포착이 어렵거나 국회 차원의 조사 활동이 힘들 것이라는 전략적 판단과 기대가 깔린 것이었다.

 

특위는 112 1차 청문회를 열었다. 일해재단의 기금 조성 과정, 청와대 경호실의 개입 등을 밝혀냈다. 하지만 이후 청문회는 증인들이 ‘모르쇠’로 일관, 큰 성과가 없었다. 백담사에서 1년간 버티다 1989 1231일 청문회에 나온 전두환도 모든 의혹을 부인하고 변명만 했다. 특히 당시 특위 위원이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패 사건은 유명하다.

 

1989 12 31일 국회 5공 청문회에서 전두환 증언

 

일명 5공청문회라 불리는 이 자리에서, 전두환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대처가 정당한 자위권 발동이었다고 하며 일장 연설을 했고, 청문에 참여한 평화민주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 등 야당의 질문에 대해서는 묵비권으로 일관했다. 이에 전두환이 퇴장하자 당시 특위위원중 한명이었던 초선의원 노무현은 분을 참지 못해 명패를 집어 땅에 내팽개쳤는데, 당시 청문회가 TV로 생중계되고 있었기에 이 장면 역시 전국민에게 그대로 방송되어 국민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러나 명패 사건이라는 돌발적인 사건을 통해서 노무현이 주목받았던 것은 아니다. 청문회가 열리는 동안에 참석한 증인들에게 청문회에 참석한 의원들 중에서 날카롭고 조리있는 질문을 차분하게 던져서 일명 '청문회 스타'로 떠오른 몇몇 의원들이 있었고, 그 중에서 노무현은 그 청문회 스타들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보인 의원이었다.

 

5공 핵심인사들은 ‘5공비리 특별수사부’ 수사로 단죄받는다. 동생 전경환와 장세동 전 안기부장 등 친인척과 측근 47명이 구속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