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7월/7월 3일

이스라엘, 엔테베 작전 (Operation Entebbe)

산풀내음 2017. 6. 1. 20:47

19767 3,

이스라엘, 엔테베 작전 (Operation Entebbe)

 

1976 6 27 12 30분경 이스라엘의 로드(Lod) 공항을 떠나 파리로 향하던 에어 프랑스 소속 에어버스 A300 여객기 AF-139편이 중간 기착지인 아테네에 내렸다. 아테네 공항의 보안은 허술한 편이어서 금속탐지기에 모니터링 요원도 배치되어있지 않았다. 아테네에서 56명의 승객을 태운 AF-139편은 이륙 3분 만에 팔레스타인 2명과 독일 적군파 2명의 테러조직원들에 의해 피랍되었다. 승객들 가운데 테러범들이 섞여 있었던 것이다. 이 여객기에는 모두 254명의 승객이 탑승하고 있었는데, 그 중 3분의 1이 이스라엘 국민이었다.

 

여객기를 납치한 4명의 테러범은 기수를 남쪽으로 돌려 리비아의 벵가지(Benghazi)에 기착했고, 벵가지에서 7시간 반을 대기하던 피랍기는 재급유를 받고 다시 남쪽으로 향해 다음날 새벽 3시에 우간다의 엔테베(Entebbe) 공항에 내렸다. 여기서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 테러범 3명이 추가로 납치범들에 합류했다. 6 28일 월요일 정오가 되자 테러범들은 승객들을 공항 구청사의 승객 로비에 감금했다.

 

당시 우간단 엔테베 공항

여객기를 납치한 4명의 테러범. (좌측 상단으로부터 시계방향으로) 자엘 나지 알 아잠(Jael Naji Al Azam), 파예즈 압둘라힘 자베르(Fayez Abdur-Rahim Jaber), 브리기테 쿨만(Brigitte Kuhlmann, 여자 테러범), 윌프리드 보세(Wilfried Böse).

 

6 29 15 30분경, 납치범들은 이스라엘을 비롯, 서독, 프랑스, 케냐에 수감돼 있는 자신들의 동지 53명의 석방을 요구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최초 7 1 14시까지의 시한을 협상과정을 통해 7 4일까지로 연장시키고 또한 상당수의 인질들을 풀려나게 했다. 하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106명은 아직도 인질로 잡혀있었다.

 

납치 사건이 발생하자 즉시 이츠하크 라빈 수상(1995 11, 극우파 청년에게 암살 당함) 주재로 긴급 내각 회의가 열렸고 이스라엘 정보부 모사드는 조직망을 풀가동해서 인질들의 행방을 찾아낸다.

 

1976 73일 오후, 이스라엘 육군의 최정예 부대인 제35 공수여단, 골라니 코만도, 사렛트 메트칼에서 선발된 특공대원 100여명을 태운 허큘리스 C-130H 수송기 4대가 펜텀 제트기의 호위를 받으며 이스라엘을 출발했다. 목적지는 장장 3840km나 떨어진 우간다의 엔테베 공항이었다.

 



우간다의 독재자 이디 아민은 인질협상의 중재자를 자처했지만, 실은 팔레스타인 테러범을 지원하고 있었다. 사진은 인질과 대화 중인 이디 아민(Idi Amin, 모자 쓴 사람)

 

선더 볼트(Thunderbolt)’로 불린 기습공격이 시작된 시간은 740. 엔테베 공항 측에는 투옥된 테러범들을 석방해 오는 것이라고 속여 C-130의 착륙 허가를 받았다. 첫 번째 C-130이 착륙하자 화물칸에서 이디 아민의 전용차와 똑같이 보이도록 개조된 메르세데스 벤츠 1대가 나와 우간다 공군부대 쪽으로 향했는데, 여기에는 선발된 흑인 특공대원들이 타고 있었다. 우간다 경비병이 아민의 방문으로 알고 부대 게이트를 열어주자 뒤따라온 이스라엘 특공대원들이 우간다 공군부대를 제압하고 추격을 막기 위해 MiG-17 전투기 11기 및 관제시설을 파괴하였다.

 

한편 인질 구출조는 한 순간도 낭비하지 않고 곧장 공항 건물로 밀고 들어가 서독인 2명을 포함한 7명의 납치범들과 우간다 군인 20명을 사살했다. 예행연습 때는 55분이 걸렸던 작전시간이 실제 작전에는 5253분 밖에 걸리지 않은 정도로 작전은 치밀하게 전개됐다. 이스라엘 특공대원 1명과 인질 3명도 목숨을 잃었지만 완벽한 작전성공이었다. 한편 인질 중 도라 블로흐라는 75세 할머니는 건강상태가 나빠지자 우간다 대통령 아민이 선심을 써 병원에 입원 중이어서 구출되지 못했는데, 우간다군도 큰 피해를 입은 것을 알게 된 아민은 광분해 이 할머니를 끌어내 처형해버렸다. 그리하여 총 인질 사망자는 4명이 되었다.

 

One of the aircraft crews that landed at Entebbe poses with their plane after the mission.




엔테베 공항에서 억류되었다가 무사히 구출된 인질들

A crowd lifts the squadron leader of the rescue planes on their return to Israel.

 

이스라엘 특공대의 희생자는 단 한 사람, 바로 현장에서 특공대를 지휘했던 당시 서른 살의 요니 네타냐후 중령이었습니다. 이 작전의 유일한 전사자가 현장 지휘관이었다는 사실은 장교들이 앞장을 서 장교 사망률이 유달리 높은 이스라엘 군대의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요니 네타냐후 중령의 동생이 바로 훗날 이스라엘의 수상을 지낸 베냐민 네타냐후이다. 그는 아직도 정치인 네탄야후 보다는 특공대장 요니 중령의 동생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Photos of Yoni Netanyahu, brother of Israeli PM Benjamin NPhotos of Yoni Netanyahu, brother of Israeli PM Benjamin Netanyahu | Yoni was killed during the Entebbe rescue mission in 1976.

Prime Minister Binyamin Netanyahu and his wife, Sara, near the gravesite of his brother, Yoni, July 4, 2014. Benjamin Netanyahu: The knock on the door after my brother was killed was the worst moment of my life - Israel News - Jerusalem Post

 

군사적 측면에서만 보자면 엔테베 작전은 기발한 착상과 대담한 공격, 그리고 최소의 인명손실로 그 뒤에 영화로 만들어질 정도로 완벽했다. 이 작전은 최초의 원거리 구출작전으로 역사에 기록되고 있고 이후의 인질 구출 작전의 모범사례로 연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