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7월/7월 5일

한국의 로빈슨 크루소 조병기 귀국

산풀내음 2017. 6. 2. 20:34

19557 5,

한국의 로빈슨 크루소 조병기 귀국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2 7월 일제에 징용당해 남태평양에 끌려갔던 조병기가 태평양전쟁이 끝난 줄도 모르고 14년간이나 남태평양 고도에서 혼자 짐승처럼 살다가 1955 7 5일 마침내 부산항으로 돌아왔다.

 

1955 7 5, 14년 만에 고국 땅을 밟은 조병기씨

 

1955 7 5일 오후 4 20. 말쑥한 양복에 파나마 모자를 쓰고 짐 보따리도 두 손에 바리바리 든 여행객 하나가 부산항에 도착했다. 기자가 지금 누가 가장 보고 싶으냐고 묻자 그는 더듬더듬 일본어로 대답했다. “아내와 아들 보형이가 보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는 일본인이 아니었다. 충청북도 단양군 가곡면에서 나고 자란 토종 한국인 조병기였다. 그는 1942년 징용에 끌려갔다가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감언이설에 속아 남양군도에 파견되는 노동자로 지원했다. 그것이 1944년의 일이었는데 그는 지독하게 운이 없는 편이었다. 그가 요즘 관광지로 유명한 팔라우 군도 중의 하나인 펠렐류(Peleliu) 섬에 도착했던 것은 미군이 그 섬을 총공격하기 몇 달 전이었던 것이다.

 

미군이 상륙하자 일본군의 저항은 치열했다. 전열이 무너지고 패잔병들은 숲 속에 숨었지만 그들은 좀체 투항하지 않았다. 펠렐류 섬에서는 전쟁이 끝난 지 2년씩이나 지나고서야 일본군 최후의 수비대가 “전쟁은 끝났다.”는 설득에 응해 무기를 버리고 숲에서 나왔을 정도였다.

 

펠렐류에 상륙하는 미 해병대()와 전투 중 인 해병대()

 

그런데 펠렐류 섬의 숲 속에는 사람들이 더 숨어 있었다. 조병기를 비롯한 한국인 노동자들 3명이었다. 그들은 “미군들은 코와 귀를 자르고 혓바닥을 빼낸다”는 일본군의 악선전을 그대로 믿었던 그들은 숲 속에 들어가 이제나저제나 일본군이 상륙해서 자신들을 해방시켜 주기를 기다리게 되는데 단양, 영월, 제천 등 엇비슷한 고장 출신들이었던 그들의 운명은 엇갈린다. 영월 출신이었던 다께노(창씨개명한 이름)는 미군에 의해 사살됐고, 제천 출신의 한 사람은 사로잡혔던 것이다. 남은 것은 조병기 하나였다.

 

그는 그야말로 로빈슨 크루소의 삶을 살게 된다. 그 섬에는 미군이 계속 주둔했었고 원주민도 2천명이나 살고 있었다. 미군들의 모래자루를 훔쳐 옷을 만들고 침구도 만들었다. 또 원주민들이 재배하는 다베오깡이라는 작물을 훔쳐 먹었고 만만한 달팽이를 잡아 구워 먹으며 아사를 면했다고 한다. 그러던 조씨가 원주민 농장에서 고추를 자주 따먹다가 1955 5 7일 마침내 원주민들에게 붙잡혔다. 다행히 원주민들이 일본어를 할 줄 알아서 조씨를 곧 미군에 인계해 이날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런데 해방되던 해 고향에는 그의 전사통보서와 유골(?)이 전달되었다. 가족들은 하늘이 무너졌다. 글 모르는 남편이 남의 손을 빌어 “난 잘 있다 돈 많이 벌어 돌아갈게.”라며 전하는 편지를 읽으며 소작조차 떨어진 살림살이를 날품을 팔며 버텨온 아내는 살아갈 힘을 잃었고 결국 두 딸 거느린 홀아비에게 재가했다. 하나 있던 외아들은 큰아버지 집에서 살며 아버지의 ‘묘’를 돌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버지이자 남편이 돌아온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찾아간 기자 앞에서 재가한 아내는 눈물만 흘렸다. “죽었다고 장사 지낸 사람이 오다니요.....” 하지만 아내는 애틋한 마음을 드러냈다. “얼른 오기만 하면..... 조씨가 나를 다시 오라고 하면 (새남편 사이에서 낳은) 젖먹이는 뗄 수 없으니 하나만이라도 언제든 데리고 돌아가겠어요.

열다섯 살 난 아들 보형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아버지가 돌아오셔서 엄마랑 셋이 살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정글에서 혼자만의 전쟁을 치렀던 일본군 이야기는 심심찮게 있었다. 그 대표적인 오노다 히로 소위는 29년 동안 필리핀인 30명을 죽였고 100여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원주민 가옥 전체를 불지르는가 하면 사람을 토막 내 죽이는 등 온갖 만행을 저질렀던 그는 99식 소총과 탄환을 29년 동안이나 보관하면서 상시 사용 가능하게 보관하고 있었다. 필리핀의 마르코스 대통령에게 반들반들하게 닦아 놓은 일본도를 전하며 항복 의식을 치른 뒤 일본으로 돌아간 그는 영웅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