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7월/7월 5일

신장(新疆) 위구르자치구 수도 우루무치 유혈사태

산풀내음 2017. 6. 2. 20:45

20097 5,

신장(新疆) 위구르자치구 수도 우루무치 유혈사태

 

20097 5일 시작된 신장(新疆) 위구르자치구(Xinjiang Uyghur Autonomous Region) 수도 우루무치의 유혈사태로 197명이 숨지고 1,70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유혈 사태는 지난달 말 중국 남부 광둥(廣東)성에서 발생한 한족과 위구르족 노동자들 간의 집단 충돌 사건이 직접적인 발단이 됐다. 광둥성 사오관(韶關)시에 있는 홍콩계 완구업체 쉬르(旭日)에서 한족 소녀 성폭행 의혹으로 한족과 위구르족 노동자들 간의 충돌이 일어났고 이로 인해 위구르 노동자 2명이 집단 구타를 당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러나 성폭행 의혹은 사실무근으로 밝혀졌으며 이에 위구르인은 억울하게 한족에게 맞아 숨진 사건에 대하여 조사해 달라며 평화롭게 행진하였지만, 중국 경찰이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공격하고 발포함에 따라 위구르인의 분노가 폭발했고 한족 이주민과 결국 충돌하게 되었다.

 

 

75일 밤 저녁 8시쯤 우루무치시 위구르족 집단 거주지역 부근의 인민광장에 모인 3000명의 시위대는 인근에 있는 도심 주요 도로로 진출해 오가는 버스와 택시, 트럭, 주차돼 있던 공안차량 등을 뒤집고 불을 질렀다. 우루무치의 시위 상황 정보는 트위터·유튜브 등을 통해 흘러나왔으며, 6일 오후 늦게 중국의 주요 검색 엔진에서 '우루무치'에 대한 검색 결과가 차단됨과 동시에 트위터나 유튜브도 차단됐다.

 

7 7일 오전 11시에 약 500명의 위구르족들이 연행자 1400명의 석방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후 오후 1시에 300여명의 한족들이 위구르족 상점들을 부수며 시위를 벌였고, 경찰이 최루탄을 발사하며 해산시켰다.

 

7 8일 오전 북부의 우루무치 사범대학 인근에 한족 700~800명이 모여 각목, , 쇠파이프 등으로 무장하고 도로를 점거한 채 시위를 벌였다. 이에 남부의 위구르족들도 한족 시위대의 습격으로부터 집과 상점을 지키기 위해 무장한 채 각 마을에 대기하고 있다. 또한 오후 12에는 30~40여명의 위구르족이 중국 정부의 편파적인 사건 처리에 항의하는 기습 시위를 벌였다. 중국 정부는 우루무치에 2만 여명이 넘는 경찰력을 동원하고 요소요소에 지프차, 트럭 등을 배치했다.

 

7 13 13 55분경에 중국 경찰이 흉기와 곤봉을 휘두르는 위구르인 3명에게 발포, 2명을 사살하고 1명은 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고 있다고 발표했다. 경찰측은 경고사격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거세게 저항하자 합법적으로 발포했다고 강조했다. 이것은 중국 정부가 처음으로 시위대를 향한 발포를 인정한 것이다. 7 18일 중국 정부는 위구르인 12명을 사살했다고 처음으로 시인했다.

 




Beijing Cracks Down on Uyghur Unrest In Xinjiang Province, Blames US for Encouraging 'Terrorists'


2009 7 7일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 우루무치에서 한족 청년들이 몽둥이와 쇠파이프 등으로 무장한 채 "조국 수호"등의 구호를 외치며 도심을 행진하고 있다. 내 나라를 내가 되찾겠다는 이들의 요구는 정당하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9 7 8일 우루무치 시내 한복판에서 8일 한족 시민들이 한 위구르 남성을 집단 폭행하는 장면이 AFP TV에 포착됐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학살당한 위구르인들

 

유라시아 대륙의 한가운데에 있는 신장은 고대에 서역이라고 불리던 지역의 일부분으로 실크로드의 중심지였다. 면적은 166만㎢로 중국 전체 면적의 6분의 1을 차지한다. 위구르는 중앙아시아와 몽골 고원 일대에서 유목과 농경으로 살아온 투르크계()의 민족을 가리킨다. 중국어로는 '웨이우얼(維吾爾)'이라고 쓴다. 유럽인들과 같은 코카서스 인종에 언어는 알타이어 계통의 독자적인 위구르어를 쓰며, 10세기경에 전파된 이슬람 수니파가 대부분이다. 생김새나 말투, 종교가 한족(漢族)과 완전히 달라 중국의 55개 소수 민족 중 가장 이질적이다.

 

이들은 한 때 위구르 제국을 세우고 고유의 문화를 발전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청나라 건륭제 때 중국에 편입된 이후 갈등의 역사가 이어져 왔다. 위구르족은 1944년 동투르키스탄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자치 국가를 성립하기도 했으나 5년 만인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에 병합된 뒤 1955년 신장위구르 자치구가 됐다.

 

2200만 명의 신장 인구 가운데 절반에 조금 못 미치는 1천만여 명이 위구르족이며, 한족은 중국 정부의 대규모 이동정책으로 1949 5퍼센트에 그쳤던 것이 1970년대 초반에는 거의 40퍼센트로 늘었다. 위구르인들의 분리 독립 요구가 거센 것도 한족의 대량 이주와 민족 동화정책, 경제적 장악 등이 배경이다. 어려운 경제적 여건과 억압된 사회 분위기가 위구르인의 불만과 분노를 사고 있다.

 

민족 갈등은 유혈사태와 테러 등의 형태로 나타났다. 신장에서는 1954년부터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중국 정부 통치에 반대하는 행동이 반복돼 왔다. 대규모 카자흐 난민 사태로 연결된 1962년 일리 항쟁, 1969년 말 동투르키스탄 민중혁명당의 활동, 1천 명 이상이 다친 1980년 악수 지역 소요 사태, 1985년 베이징 중앙민족대학 위구르 학생들의 시위 등등. 1990년대 들어서는 5만 명 넘게 참가한 대규모 시위도 있었고, 1995 4월에는 노동자 · 교사 · 상인 10만 명이 파업을 단행하기도 했다. 위구르족이 행동의 중심에 있었지만 카자흐족 등 이 지역의 다른 소수민족들도 중국의 통치에 항의했다.

 

2009 7월 우루무치 유혈사태 이후에도 2008년에는 베이징(北京) 올림픽을 나흘 앞두고 위구르족 독립주의자들이 신장위구르자치구 카스(喀什) 지구에서 중국 무장경찰을 향해 수류탄을 던져 16명이 사망했다.

 

최근 위구르인들의 '저항'은 신장위구르 지역을 벗어나 중국 전역을 무대로 하는 현상도 나타났다. 2013 10 28일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는 위구르인 일가족의 차량 돌진 테러로 5명이 사망했다. 29명이 숨지고 140여 명이 다친 2014 3 1일 쿤밍 철도역 사건도 신장 분리 독립운동 세력이 계획적으로 일으킨 행위라고 중국 당국은 밝혔다.

 


쿤밍 철도역 사건. 잘못된 위정자 및 욕심으로 무고한 사람들만 희생당하고 있다. 위구르인들이 자신들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무고한 시민들이 아니라 잘못된 정치인을 대상으로 하여야 할 것이다.

 

중국은 지금까지 위구르인들의 저항에 대해 강경 일변도의 대응을 이어왔다. 2014 4 27일부터 나흘 일정으로 취임 이후 처음 신장위구르 자치구를 찾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연일 테러 강경 대응 메시지를 쏟아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은 신장 위구르족이 독립하면 55개 중국 소수민족 전체에 파급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여기에다 신장은 중국에서 석유와 천연가스의 매장량이 가장 많은 지역으로 전략적 가치 측면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지역이다.

 

 

위구르의 독립운동가, 레비아 카디르

 

레비야 카디르(Rebiya Kadeer, 1947 1 21 ~)위구르족의 달라이 라마로 불리는 여성이다. 1947년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태어난 그는 뛰어난 수완으로 돈을 벌어 백만장자가 됐고, 신장위구르자치구 인민대표라는 중국의 선물도 받았다. 잘나가던 삶은 위구르 분리 독립운동가이자 남편이 된 시디크 로우지를 만나면서 극적으로 변한다.

 

위구르족의 현실에 새롭게 눈을 뜬 카디르는 중국 정부의 위구르족 탄압을 폭로하는 운동가로 변신했다. 그는 1999년 체포돼 국가기밀을 누설했다는 죄목으로 8년 형을 선고 받았다. 2005 3월 콘돌리자 라이스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 중국을 방문하기 직전, 신병치료 명목으로 가석방된 카디르는 미국 망명길에 올랐다.

 

카디르는 2006년 세계위구르협회 회장으로 선출됐고, 평화적인 방법을 통한동투르키스탄’(위구르인들이 신장을 가리키는 용어)의 독립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 중국 정부는 그를 가장 위험한 분리주의자로 낙인 찍고 있다. 중국인들이 그들의 주장에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한다면 중국인들이 위구르인들의 지배를 기꺼이 받아들이면 될 것이다.

 


Uyghur Democracy Leader Rebiya Kadeer Meets with His Holiness the Dalai La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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