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7월/7월 19일

제22회 모스크바올림픽 개막

산풀내음 2017. 6. 13. 19:55

19807 19,

22회 모스크바올림픽 개막

 

인류최대의 스포츠제전인 제22회 모스크바 올림픽대회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 미국을 위시한 세계 약 60개국이 불참한 가운데 레닌 스타디움에서 그 화려한 막을 올렸다. 브레즈네프 소련 당서기장은 올림픽에 참석한 선수들과 관람객들을 통제하기 위해 레닌 스타디움 주위를 경찰과 군인들로 벽을 쌓은 뒤 개막을 선언, 동서 냉전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 이 대회는 1896년 근대 올림픽경기가 시작된 이래 사상최초로 공산권에서 개최되는 것이었다.

 





Leonid Brezhnev greets participants and guests during the opening ceremonies.

 

1978년에 아프가니스탄에 수립된 공산정권이 이슬람 세력의 무장봉기에 궁지에 몰리자 소련에 군사개입을 요청하였고, 드디어 1979 12 27일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을 전격 침공하였다. 미국은 이에 즉각 항의하였고 1980 220일까지 소련 군대가 철수 하지 않으면 모스크바에서 개최되는 올림픽에 불참할 것을 경고하였고 끝내 소련이 이에 응하지 않자 카터 미국 대통령이 불참을 공식 선언하게 된다.

 

미국은 우방국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기대했지만 결과는 의외로 일부 이탈하는 우방이 생겼다. 우선 영국 정부는 미국의 보이코트에 적극 동참하려 하였지만, 영국올림픽위원회가 반기를 들었고 결국 참가하게 되었다. 이밖에도 프랑스, 이탈리아, 덴마크, 호주 등이 선수단을 보냈다. 그러나 이들은 입장 때 자국의 국기를 들지 않고 입장하는 방식으로 항의의 표시를 하였으며 그 수는 16개국에 이르렀다. 또한 중소국경분쟁으로 중공도 불참했다.

 

소련의 모스크바와 미국의 로스엔젤레스가 주최신청을 해온 가운데 1974 10, 국제올림픽위원회는 제22회 올림픽 개최지를 소련의 모스크바로 정했다. 800여 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옛 도시로 널리 알려진 모스크바는 소련의 수도인 동시에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으로 되고 있다.

 

소련은 1975 3월부터 올림픽 준비위원회를 세워 올림픽을 위한 적극적인 준비를 시작했다. 통계에 따르면 대형 체육장은 50여 개로부터 70여 개로 증가됐고 수영장도 30개에서 60여 개로, 체육관 역시 300여 개나 증가되는 등 경기장 건설이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도시건축과 교통운수업도 뒤질세라 발전을 다그쳤으며, 올림픽대회를 주최하기 위해 소련은 90억 달러에 달하는 거액의 자금을 투자하며 사상 최고를 기록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렇듯 소련은 최고 최대의 올림픽을 준비했지만 모스크바올림픽은 1952년 핀란드 헬싱키올림픽 이후 가장 적은 회원국 147개국 중 81개국 선수 5326명만이 출전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고 말았다. 5615명의 기자가 모인 모스크바올림픽 역시 선수보다는 기자가 많았던 한차례의 올림픽으로 기록됐다.

 

이 대회 스타는 소련의 남자체조 선수 디디아틴이었다. 그는 금메달 3, 은메달 4, 동메달 1개를 얻어 가장 많은 메달 획득 수를 기록했다. 이로써 소련은 630개의 메달 중 195, 127개의 금메달 중 80개를 따내며 1위를 차지했다.

 

이와 같은 올림픽 보이코트는 이번만이 아니었다. 1976년 캐나다 모트리올 올림픽에서는 당시 인종 차별 정책을 실시하고 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친선 럭비 경기를 한 뉴질랜드의 올림픽 참가가 허용되자 아프리카 28개국이 불참을 선언하였고, 1984년 미국 로스엔젤레스 올림픽에서는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불참에 대한 보복으로 소비에트 연방, 독일 민주 공화국(동독), 알바니아 동구권 15개국과 다른 이유로 이란, 리비아가 불참했다. 하지만 루마니아바르샤바 조약 기구 가입 국가 중 유일하게 참가하였고, 또 다른 공산주의 국가인 유고슬라비아중화인민공화국이 참가했다. 그리고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쿠바, 알바니아, 마다가스카르, 세이셸, 에티오피아, 니카라과 7개국이 불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