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7월/7월 20일

미국 아폴로 11호 암스트롱 인류최초 달 착륙

산풀내음 2017. 6. 14. 20:20

19697 20,

미국 아폴로 11호 암스트롱 인류최초 달 착륙

 

아폴로 11호가 1969 7 16일 아침(미국 동부시간 기준) 승무원 닐 암스트롱(Neil A. Armstrong), 버즈 울버린(Edwin E. 'Buzz' Aldrin, Jr.), 마이클 콜린스(Michael Collins)를 태우고 오전 9 32분에 미국 케이프 케네디 우주기지에서 발사됐다. 높이 110미터의 새턴 5형 로켓은 3000톤의 추력을 받아 점점 속도를 붙여 하늘로 날아갔다. 3분 정도 경과 후 1단이 떨어졌고 2단이 점화되었다. 다시 2단이 떨어지고 3단이 점화, 이렇게 달까지의 거리 38 4km를 나아갔다. 최고속도는 시속 약 39km였다.

 


왼쪽부터 아폴로 11호 선장 닐 암스트롱, 사령선 콜롬비아호 조종사 마이클 콜린스, 착륙선 이글호 조종사 버즈 올드린. NASA 제공

1969 716일 발사 준비를 위해 케네디우주센터 안으로 들어가고 있는 세 우주인. NASA 제공




Apollo 11 Launch Team

 

아폴로 11호는 지구궤도를 한 바퀴 반 돈 뒤, 달을 향해 날아갔다. 사흘 뒤 아폴로 11호는 달 궤도에 들어섰다. 그 다음날 암스트롱과 올드린은 드디어 달 착륙선 이글(독수리)호에 옮겨탔다. 콜린스는 모선인 콜롬비아호에 남아 110km 높이에서 달 궤도를 계속 순회하며 이들을 지켜봤다. 하지만 이글호는 착륙 지점인 고요의 바다를 조금 지나쳤고, 선장인 암스트롱은 긴급히 수동으로 우주선을 조종하며 바위가 널려 있는 곳들을 피해갔다.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이글은 마침내 7 20일 오후 4 18(한국시간 21일 새벽 5 18) 달의 `고요의 바다`에 착륙했다. 암스트롱은 지구에 첫 메시지를 보냈다. “휴스턴, 여기는 고요의 기지. 이글호는 착륙했다. (Houston, Tranquility Base here. The Eagle has landed.)” 긴장이 풀린 휴스턴 관제센터 직원들은 일제히 일어나 환호했습니다. 관제센터는 승무원들에게 말했다. “당신들이 거의 쓰러져 죽을 뻔한 한 무리의 남자들을 구했다, 우리는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 (You got a bunch of guys about to turn blue, we‘re breathing again.)”

 

아폴로 11호에서 찍은 달 사진. 달에서 18500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촬영한 것이다. 지구와 달의 거리는 384천킬로미터이다. NASA 제공

 

오후 1056(한국시간 21일 오전 1156), 착륙한 지 6시간 반이 지난 뒤 암스트롱은 달 표면에 발을 내디뎠다. 1957년 소련의 스푸트니크1호 발사와 함께 시작된 미소간의 우주개발 경쟁에서 미국이 처음으로 전세를 역전시키는 순간이었다. 소련은 그 동안 첫 유인우주선 발사, 첫 지구궤도 선회, 첫 우주유영 등에서 미국을 앞서 나갔다.

 

평소 과묵했던 암스트롱은 인류 최초로 달의 표면을 밟으며 말했다. "이 순간은 인간에게 있어서는 작은 한 발자국이지만, 인류에게 있어서는 거대한 도약이다. (That’s one small step for a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라고...

18분 뒤에 합류한 올드린은 이렇게 외쳤다. “장엄한 폐허로다!”(Magnificent desolation). 짤막하지만 강렬한 묘사였다. 최초의 달 착륙의 주인공은 닐 암스트롱이 차지했지만, 역사적인 사진의 주인공은 올드린이 차지했다. 암스트롱만이 카메라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2시간 반 동안 달 표면을 탐험하면서 토양 샘플을 수집하고 사진을 찍었다.

 

이들은 미국 성조기, 희생된 아폴로 1호 승무원들을 기리는 패치, 이글호의 명판 등을 남겨두고 지구로 출발했다. 그들이 두고 온 명판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여기 지구 행성에서 온 사람들이 처음으로 달에 발자국을 남기다. 1969 7월 우리는 모든 인류를 위해 평화로이 왔다.”

 

암스트롱과 올드린은 이글을 다시 이륙시킨 뒤 콜린스의 콜롬비아호와 도킹했다. 세 사람은 사흘 뒤 724일 태평양 하와이 인근 바다에 무사히 착수했다. 16일 발사된 이래 119시간 18분이 소요됐고 120km의 우주여행이었다.

 

닉슨 대통령은 비행사들을 직접 환영하기 위해 항공모함 호네트에 타고 있었으나 유리창 너머에서만 이들을 대면할 수 있었다. 비행사들은 엄격한 검역으로 3주간 격리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검역이 끝난 후 뉴욕과 시카고에서는 국가적인 영웅을 환영하는데 어울리는 퍼레이드를 벌였고 전 미국은 열광했다. 이후 미국은 아폴로 11호를 시작으로 1972 12 17호까지 다섯 번 달 착륙에 성공했다.

 

달 착륙선 이글호를 아폴로 11호 사령선 콜롬비아호에서 촬영한 것이다.

닐 암스트롱에 이어 착륙선 조종사인 버즈 올드린이 사다리를 타고 이글호를 내려오는 모습. NASA 제공


인류 최초로 달에 남긴 발자국


나사는 5억이 넘는 사람들이 그 역사적인 장면을 텔레비전을 지켜본 것으로 추정했다. 당시 세계 인구가 36억 명이었으니 지구촌 20명 중 3명꼴로 역사의 순간을 목격한 셈이다. 한국의 경우 달 착륙일(한국 시간 기준 7 21)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했다. 그리고 당시 아폴로는 그야말로 최고의 유행어 반열에 올라, 그 해 여름 유행한 눈병은 아폴로눈병으로 불리기도 했다.

Apollo 11 crew boarding a recovery helicopter after a successful splashdown on July 24, 1969.


귀환한 아폴로의 영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