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8월/8월 18일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산풀내음 2017. 7. 14. 17:31

19768 18,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1976 818일 오전 1045분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유엔군측 제3초소 앞에서 한국인 노무자 5명이 미루나무의 가지를 치고 있었다. 현장에는 미군장교 2명과 한국군 장교 1명을 포함, 모두 11명의 유엔군 장병들이 이들을 호위하고 있었다. 이때 후일 도끼살인마라는 별명이 붙은 박철 대좌(대령) 포함 2명의 북한군 장교와 10여명의 북한군이 다가와 “나뭇가지를 치지 말라”며 생트집을 잡았지만, 미군 장교 아서 보니파스(Arthur Bonifas) 대위는 이를 묵살하고 작업을 계속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웨스트포인트 출신으로서 1년 기한의 한국근무를 3일 남겨두고 있었다.

 

그러자 곧 20여명의 북한군이 증원됐고 “죽여라”는 북한 장교의 고함과 함께 북한군은 곡괭이와 도끼 등을 유엔군에게 사정없이 휘둘렀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유엔군은 대항할 틈조차 없었다. 미군장교 2명을 살해하고 나머지 9명에게도 중경상을 입힌 북한군은 유엔군 초소까지 부수고는 황급히 북쪽으로 도주했다.

 


 

이 뉴스가 워싱턴으로 전해졌을 때 제럴드 포드 대통령은 캔자스시티에서 대통령 후보를 뽑는 공화당 전당대회에 참석하고 있었다. 그는 로널드 레이건으로부터 공산당에 대해 너무 무르다는 비판을 받고 있었다. 대통령이 부재 중인 관계로 키신저 국무장관이 백악관 지하 상황실에서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긴급대책회의는 구체적인 보복방안을 결정하지 않고 먼저 한국으로 병력을 집결시키기로 했다.

 

북한은 자신들이 저지른 짓의 심각성에 놀라 먼저 전투준비 태세에 들어갔다. 평양에선 등화관제가 실시되고 요인들은 지하 방공호로 들어갔다. 全전선에서 북한군은 임전태세를 갖추었다. 한국군과 주한미군도 경계태세를 데프콘(Defcon) 3으로 높이고 비상경계태세에 돌입했다.

 

제럴드 포드 미국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스틸웰 주한미군 사령관은 문제의 미루나무를 베고 공동경비구역 내에 인민군이 설치한 불법 방벽(防壁; 바리게이트 등)을 제거하기 위한 폴 번연 작전(Operation Paul Bunyan: 미국 전설에 등장하는 거구의 나무꾼 버니언에서 따온 작전명)을 수립하였다. 미국은 교전 및 전면전 상황에 대비한 구체적인 전쟁 계획인 일명 '우발계획'까지 수립했다.

 

이 계획에 따르면. 폴 번연 작전 시에 교전 사태가 발생할 경우, 한국군 포병과 미군 포병이 합동으로 북한 영토인 개성의 인민군 병영과 막사를 초토화하고, 개성 위쪽의 시변까지 포격하여 경기도 북부 및 황해도 일대의 인민군 포병부대 전체를 궤멸시킨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더욱 전쟁이 확대될 경우에는 개성과 연백평야에 대한 탈환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었으며, 인민군의 전차부대가 남진할 경우 이에 대한 전술 핵의 대대적인 사용도 고려되었다. 폴 번연 작전 시에 이르러서, 유엔군은 '데프콘 2(공격준비태세)'를 발령하였다.

 

1976 821일 오전 4시쯤 美 2사단 內 RC4 체육관. 한국 공수부대원으로 구성된 특공대원 64명이 출동을 기다리고 있었다. 폴 번연 작전과 함께 북한의 도발을 유도하는 계획을 세우고, 총과 수류탄, 크레모아 등으로 중무장하였다.

 

박희도 여단장은 특공대 장교들을 불러놓고 이렇게 지시했다.

“일단 교전이 붙으면 누가 먼저 발포했느냐는 문제가 안 된다. 교전 결과가 중요하다. 일단 우리 편의 피해가 없어야 한다. ()의 공격이 예상되면 그 즉시 선제 기습이 이뤄지도록 특공대장 이하 간부들이 즉각 조치하라. 내가 현장에서 직접 지휘할 수 없는 상황이니까 특공대장의 판단 하에 움직여라. 결과에 대한 책임은 모두 내가 진다.”

박희도 여단장은 무기를 숨겨 가라고 지시했다. 방탄조끼를 입고 계급이 없는 철모를 쓴 특공대원들은 몽둥이(곡괭이 자루)만을 든 채 트럭 3대에 나눠 탔다. 방탄조끼 안에는 권총과 수류탄이 숨겨져 있었다. 이러한 무장은 공동경비구역內의 규정과 스틸웰 사령관의 ‘비무장 지시’와는 배치되는 것이었다.

 

오전 7시 한미호송 차량 23대가 북한 측에 사전 통보 없이 공동경비구역으로 진입했다. 미군 공병대원 16명은 전기톱과 도끼로 미루나무를 베어 내기 시작했다. 공동경비구역 안에 북한이 멋대로 설치한 두 개의 바리케이드도 철거했다. 한국군 특공대가 이 작업을 엄호했다. 하늘에는 미군 보병이 탄 20대의 범용(汎用)헬기와 7대의 코브라 공격용 헬기가 굉음을 내면서 선회 중이었다. 상공에서는 B-52 전폭기 편대가 한미 전투기의 엄호를 받으며 선회하고 있었다. 오산에는 중무장한 F-111 편대 20대가 대기 중이었다. 해상엔 미드웨이 항공모함이 중무장한 호위함 5척을 거느리고 동해를 북상하여 북한 해역으로 이동하였고, 판문점 가까운 전선에는 한미 보병, 포병이 방아쇠를 만지고 있었다.

 

 

미루나무 절단작업이 시작된 직후 유엔군 측은 당직 장교를 통해 북한 측에 메시지를 전달했다. ‘유엔사 작업반은 821 JSA(공동경비구역) 안에 들어간다. 그것은 지난 818일 당신네 경비병들의 도발로 마무리 짓지 못한 작업을 평화적으로 완료하기 위해서이다. 우리 측 작업반은 유엔사 초소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나무를 베어 낼 것이다. 작업반은 임무가 끝나는 대로 JSA에서 철수할 것이다. 이 작업반이 아무런 도발을 받지 않는 한 어떤 문제도 없을 것이다.

 

작전 중 북한은 어떠한 대응도 하지 않았다. 북한 김일성 정권의 도발을 유도하였으나, 북한은 도끼만행사건의 기세 등등했던 모습은 어디에 갔는지 멀찌감치 물러나 바라만보며, 이에 응하지 않았다.

 

폴 번연 작전 종결 후 북한은 김일성의 유감성명을 전달했다. 이것은 김일성 정권이 들어선 이후, 북한에서는 처음 나온 성명으로 그만큼 북한의 김일성이 얼마나 전면전을 두려워하고 있는 지를 잘 보여주었다. 처음에 미국은 북한의 '유감성명'이 잘못을 인정한 것이 아닌 술책에 불과하다며.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다가 당시 포드 정권의 확전 방지 지침이 내려오자 24시간 만에 태도를 바꿔 이를 수락하였다.

 

보복작전과 유감표명에도 이후 북한은 1년 반 동안이나 준전시상태를 풀지 않았고, 한국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유명한 명언인 "미친개에게는 몽둥이가 약이다"라는 발언이 유행할 정도로 북한을 강력하게 비판하는 등 사건의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 후, 사건 당사자인 미국이 한발 물러난 상태에서, 한국과 북한 간에는 군사력 증강대결이 벌어졌다. 이것이 결국 카터 행정부의 주한미군 철수 계획과 맞물리며 '자주국방'을 위해 핵개발에 박대통령이 총력을 집중하는 정책으로 이어졌다.

 

1976 08 23,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규탄 시민 궐기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