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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똥 때문에 폭망한 나라들, 남미의 페루와 남태평양의 나우루공화국의 슬픈 이야기

산풀내음 2020. 6. 17. 15:59

베네수엘라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는 것이 '풍부한 석유 때문에 폭망한 나라'일 것입니다. 영원할 것 같았던 자원에만 의존해 누린 향락의 대가는 너무나도 큰 것이었습니다. 남미 최고의 복지 천국에서 지금은 최빈국으로 전락했습니다. 2019년 인플레이션은 무려 10,000,000%에 이르면서,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기 위해서도 지폐를 트럭으로 실어야 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국가 경제는 완전히 붕괴되었고, 결국 도둑 조차도 더이상 훔칠 것이 없는 베네수엘라를 떠난다고 하는 그런 나라가 되어버렸습니다.

자원의 풍요가 준 저주는 비단 베네수엘라의 일 만은 아닙니다. 새똥으로 한때 엄청난 부를 누렸지만 지금은 빈국으로 전락한 나라들이 있으니 오늘은 이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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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nyEAvrI5so&t=268s

18세기 중엽 영국에서 비롯된 산업혁명 이후, 유럽에서는 급격하게 인구가 증가하게 됩니다. 이와 함께 농업도 대규모의 집약적 산업으로 변화해 갔습니다.  

그러나 전통적 방식의 비료로는 대규모의 집약적 농업생산에 한계가 생기면서, 19세기 들어 구아노(Guano)라는 천연 비료가 관심을 받게 됩니다.

구아노는 가마우지나 펠리콘 등 바닷새나 박쥐 등의 배설물인데 이는 일반 가축의 배설물보다 질소가 15, 인산이 50배에 달하는 최고의 천연 비료였던 것입니다.

사실상, 구아노는 유럽인들이 천연비료로 관심을 가지기 훨씬 이전부터 남미 태평양 연안 지역에서 1500년 이상 토질개선 재료로 사용해 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잉카제국 당시에는 구아노를 국가적 차원에서 관리하였는데, 구아노가 채취되는 섬들에는 왕의 허가를 받아야만 출입이 가능했으며심지어  섬들에 서식하는 구아노를 생산하는 바다새들을 사냥하거나 괴롭히면 사형에 처해졌다고 합니다.

천연비료로서의 구아노는 인공비료를 생산하기 위한 하버-보슈공정(HaberBosch process) 1910년에 개발되기까지 절대적인 지위를 누렸습니다. 그리고 이런 구아노를 채취, 판매하여 엄청난 부를 챙긴 나라가 있었으니 바로 페루입니다.

 

농업 이외에는 별반 산업이 없었던 페루는 친차군도(Chincha Islands)에서 대규모의 구아노가 발견되면서 경제상황이 급변하게 됩니다.

친차군도는 페루의 남서해안에서 약 21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3개의 무인도로 구성된 섬입니다. 이곳은 물고기의 식량인 프랑크통이 풍부해 어족자원의 보고였습니다. 물고기가 풍부하니 이를 주식으로 삼는 가마우지와 펠리컨도 1500만 마리 이상 이곳에 서식했다고 합니다.

바닷새들의 배설물이 섬 전체에 쌓였고건조한 날씨로 배설물이 그대로 보존되면서 구아노 덩어리가 수백 미터의 산을 형성시킬 정도였습니다

페루정부는 1840년부터 이곳의 구아노를 개발하여 유럽 특히 영국에 판매해 엄청난 돈을 벌게 되었습니다사업 시작 2년 만에 모든 부채 청산하고 남미의 최대 부국으로 부상하게 된 것입니다. 유럽의 금융자본들이 페루에 투자했고 페루는 구아노의 덕으로 경제호황를 마음껏 누렸습니다.

그런 가운데당시 페루의 프라도 대통령(Mariano Ignacio Prado, 1825-1901) 구아노를 담보로 거액의 외채를 빌려이 돈으로 카리브해 연안의 사탕수수 농장에 투자했지만 가뭄과 전염병으로 투자한 사탕수수 농장은 망하면서 투자금을 날리게 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친차군도의 구아노 또한 1874년에 완전히 고갈되면서 결국 1876년에 국고가 바닥이 나서 채무불이행까지 선언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때마침 페루 남부와 볼리비아 국경지대의 아타카마 사막(Atacama Desert)에서 보다  구아노 집적지가 발견되었습니다당시 아타카마 사막은 페루와 볼리비아 국경지대에 위치한 사막으로 남북 1000km이르는 거대한 사막지형입니다. 1570년부터 1971년까지 401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을 만큼 건조한 지형이었고 바로 이곳에서 구아노 집적지가 발견된 것입니다.

한편 당시 볼리비아 정부는 칠레 기업들에게 무관세 혜택을 제시하며  지역에 들어와 개발을 촉진해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페루가 경제상황이 나빠지면서 자국의 구아노에 대한 국유화 조치를 발표하자 이에 영향을 받은 볼리비아도 이 지역에 대한 정부의 장악력을 확실히 하기 위하여 1878 자국 내에서 활동하던 칠레 기업에 거액의 세금을 부과했습니다.

칠레는 1874년에 체결된 양국의 조약을 근거로 부당함을 주장하였지만, 오히려 볼리비아는 칠레 기업의 국유화를 선언했고, 1879년에 몰수한 재산을 경매에 부치자 결국 칠레는 볼리비아를 침공하게 됩니다. 새똥전쟁으로 잘 알려진 19세기 태평양전쟁(War of the Pacific)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칠레는 볼리비아에 비해 군사력도 열등하였고, 그것에 더하여 페루와 볼리비아는 비밀리에 군사 동맹을 맺었기에 병력 면에서는 칠레가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전쟁이었습니다. 하지만, 칠레는 믿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당시 영국과 프랑스는 물론 독일, 이탈리아 유럽 국가들은 페루와 볼리비아의 자원 국유화를 힘으로 누르고자 했습니다. 남미산 구아노를 대체할 비료를 구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수입 가격을 올려줄 생각은 더 더욱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유럽 각국의 지원 약속을 받은 칠레는 적은 병력에도 전쟁을 일으킨 것입니다.

전쟁의 양상은 일방적으로 진행됐습니다. 초전에 페루 해군이 반짝 승전을 기록했을 뿐, 페루와 볼리비아 두 나라는 연전연패의 수렁에 빠졌습니다.

5년간의 지리한 전쟁은 1883년 칠레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을 맺었습니다. 페루는 막대한 경제적 손실과 함께 국토 전체가 초토화되었고, 아타카마 사막을 포함하여 우리나라의 반이 넘는 면적을 잃게 되었습니다.

볼리비아 역시 패전으로 태평양에 접한 지역을 잃으면서 결국 내륙국가로 전락하게 되었으며, 지금도 칠레에게 잃어버린 땅을 돌려 달라고 애원하고 있습니다.

새똥 때문에 폭망한 나라가 또 있으니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나우루(Nauru) 공화국입니다. 모로코 다음으로 작은 나라고 여의도 2배 반 정도의 크기에 인구는 1만명 정도되는 초미니 공화국입니다

1981 1인당 국민소득이 미화 1 7,000 달러로 당시에는 아랍에미리트에 이어 두 번째 부자나라로 꼽혔습니다. 아시아 1위의 부자나라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이 미화 9,834달러로 1만 달러에 못 미치던 시절이었고, 당시 한국에 비해서는 10배가 넘는 국민소득 수준이었습니다.

이 나라의 부의 원천 역시 새똥이었습니다. 나우루는 앨버트로스(Albatross)라는 갈매기와 비슷하게 생긴 새의 낙원이었는데 그래서 이 섬은 앨버트로스의 배설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 섬은 새똥과 새의 죽은 시체의 뼈가 혼합되어 구아노(Guano)라는 물질로 변해 땅에 스며들어 인산염(인광석, 인산염을 함유한 돌을 인광석이라고 함) 매장 층을 형성하게 됩니다.

인산염은 비료의 주성분으로 황무지나 척박한 땅에 꼭 필요하다고 합니다. 이곳의 인산염은 순도 100% 일 정도로 최고급이었습니다.

코코넛 농사와 어업에 종사하며 평화롭게 살아가던 나우루섬은 자원의 존재가 알려지며 열강의 침략을 받게 되었습니다독일을 비롯하여 호주, 뉴질랜드, 영국 등 유럽 나라들이 나우루에서 본격적으로 인광석을 채굴하기 시작합니다. 2차 대전 때는 일본이 점령하였습니다. 전략적 위치와 함께 전시에 폭발물 제조에 꼭 필요한 인산염 때문이었습니다.

전후 호주의 신탁통치를 받던 나우루는 1968131, 독립한 뒤부터 인광석 개발을 통해 고도 성장 가도를 달렸습니다

일하지 않아도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었던 나우루 사람들의 하루하루는 항상 축제와 같았습니다. 세금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복지 혜택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교육과 유학은 말할 것 없고 전기 등 유틸리티가 전액 무료이고 의료서비스는 물론 결혼 시에는 집이 공짜로 제공되었습니다.

매년 한 가정에 10만 불(12천만원)씩 지원했습니다. 가정부는 외국인을 고용했고 섬을 한 바퀴 도는데 불과 30분 밖에 안 걸리는 작은 섬에 벤츠와 람보르기니 등 고급 승용차가 넘쳐나고 단 하나뿐인 공항에는 개인 자가용 비행기들이 들어찼습니다.

영원할 것 같았던 자원도 1990년대 들어 생산량이 급감하게 되자 그동안 정부에서 호주뉴질랜드하와이  외국에 투자한 돈을 회수하려 하지만 대부분 사기꾼에게 속아  손해를 보게 됩니다. 새로운 돌파구로 관광사업을 시도했지만 이도 여의치 않자 결국 조세피난처로 국가 수입을 올리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2001 9.11테러로 미국의 부시 행정부가 테러 자금을 숨겨 주었다는 이유로 나우루 자금을 동결하면서 이 또한   여의치 않았습니다결국 2003년에 공식적으로 자원이 완전 고갈되면서 나우루 경제는 급락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자국 내의 곳간이 바닥난 나우루 공화국은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시리아 등지에서 오는 보트피플을 수용해주는 조건으로 난민을 받아주지 않으려는 호주에게 지원을 받아 겨우 연명하고 있다고 합니다.

새똥의 저주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전국민의 80%가 비만으로 고통을 받고 있으며 당뇨병 사망율이 세계 1위의 국가가 되었습니다. 또한 인광석을 너무 파내 섬의 높이가 낮아지면서 지구 온난화로 해수면이 조금만 높아지면 나우루 섬 전체가 바다에 잠길 위기에 있다고 합니다.

2000년 초반에 비해 지금은 나라의 경제 상황이 조금 나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빈국의 상황이며, 해수면 상승에 따른 위험도 여전하다고 합니다.